내 시집 한 권이
어느 낯선 이의 책장에서
눌러쓴 한숨만큼의 세월을 별처럼 잠들어
어느 자유로운 노인의 헌책방 한 켠에
색깔 곱게 놓이었으면 한다
원고를 완성했던 밥상이
녹슬어 사라질 무렵의 어느 날에
문득 아물어가는 마음을 이끌어
삐그덕거리는 헌책방 문을 열어젖히곤
숨결에 사라질 듯한 내 책을 들고
그 안에 미처 마르지 못한 물방울을
나와 처음 시선을 맞추던 날처럼
그렇게 네가 마주했으면 한다
너와 나의 흉터를 매만지며
그래, 그 자리에 구멍 하나가 있었었지
하고서,
젊은 날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처럼
세월이 묻은 손으로 보듬어 쓸어주기를
그리 하여 네가 마지막 숨을 토할 때
더 이상 나를 안고 가지 않으면,
도돌이치는 숨의 순환 속에 문득 날 다시 만날 때
그리운 처음과 같이 날 마주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