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님도 피해의식 쩌십니다 그려. 제가 님의 아이디를 그렇게 봤을 수도 있죠. 님이 아니면 그만인 것을 일빠니 뭐니 스스로 비하하고 있으니 원...
現在の国際法慣行において、領土紛争裁定の基礎の一部(全てではない)とされる歴史的事実は、一般的にいってどちらが先に知っていたか(認知の事実)と、どちらがどれだけ継続的に利用してきたか(実効的経営の事実)の二点である。まずこの島の存在の認知の前後については、結論的にいって、現在文献を素直に読むかぎり、やはり朝鮮側の方が少し早い。
현재의 국제법 관행에 있어, 영토분쟁재정의 기초일부(전부는 아님)로 되어있는 역사적 사실은 일반적으로 어느쪽이 먼저 알았는가(인지의 사실)와 어느쪽이 어느정도 지속적으로 이용하여 왔는가(역사적 경영 사실)의 두 관점에 있다. 먼저 이 섬의 존재 인지의 전후에 대하여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문헌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는 전제 하에 역시 조선측이 약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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鬱陵島と別の島が朝鮮の史書に登場するのは、一五世紀なかばの「于山島」からで、日本の文献初出よりは約二百年早い。特に最も成立の古い「世宗実録地理志」(実質的には一四三二年、形式上は一四五四年成立)の蔚珍県の条には、「于山・武陵二島は県の正東の海中に在り。二島相去ること遠からず、風の日にして清明なれば則ち望見すべし」と二島説で首尾一貫した記述があり、前述の自然的条件にもぴったり合致している。これに対して、やゝ遅れる「高麗史」地理志(一四五一年成立)、「新増東国輿地勝覧」(一四八一~一五三一年の間に漸次成立)の記述はやゝ混乱しており、前者では鬱陵一島説を主としつつ、「一説によれば于山・武陵もと二島」と注記しているが、後者では再び二島説を主とし、一島説の方を注記する形に落着けている。
そこで、日本側は抹消作戦に出て、 于山と武(鬱)陵とはもともと鬱陵島をさす同物異名にすぎぬと主張してきた。特に川上前掲書は、形式上の成立年代を根拠に、「高麗史」を最も正確とし、これを基準にして「世宗実録地理志」を批判する論理で通しているが、それは今日の文献史学的知識によれば無茶な史料操作である。
울릉도와는 별도의 섬이 조선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15세기중반의 \"우산도\"부터로, 일본의 문헌의 최초 기록보다는 약 200년 빠르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실질적으로는 1432년, 형식상은 1454년 성립)의 울진현의 조항에는 \"우산, 무릉 두 섬은 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 있으며,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라고 이도설에 수미일관한 기록이 있어, 전술한 자연적 조건에도 정확히 합치한다. 이에 대하여 약간 늦지만 \"고려사\" 지리지(1451년 성립), \"신증동국여지승람\"(1481~1531년 사이에 점차 성립)의 기술은 약간 혼란이 있어, 전자에는 울릉일도설을 주로하여, \"일설에 의하면 우산, 무릉은 이도\"라고 주注를 달아놓았고, 후자에는 다시 이도설이 주로, 일도설을 주注로 달아 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측은 말소작전을 감행, 우산과 무(울)릉은 원래 울릉도를 가르키는 동섬이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카와카미 전게서는 형식상의 성립연대를 근거로 \"고려사\"를 가장 정확한 (사서로 보고), 이것을 기준으로 \"세종실록지리지\"를 비판하는 논리를 취하고 있으나, 이것은 현대의 문헌사학적 지식에 의하면 무차(별)적 사료조작이다.
朝鮮研究 1978.9 梶村秀樹
조선연구 1978.9 카지무라 히데키 중에서 발췌.
님처럼 현재 나와있는 자료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나, 공부를 하시고 반박을 하지 않으면 당근 일빠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18세기 이전 자료에 울릉, 우산 동명으로 봤다구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5세기 자료 있습니다. 18세기 이전엔 하나로 생각했다가 18세기 이후 독도에 우산도 이름을 붙였다는건 일본측 사료조작을 옹호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론 지도 엉망인건 알지만, 전글에 적혀 있듯이 16세기, 혹은 그 이전의 측량기술의 한계는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냉정하게 분석하자면 17세기 이전까지 독도에 많이 가 본적이 없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한국영토가 이니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일본쪽은 더욱 처참하거든요. 일본은 아예 조선땅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걸로 게임 오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