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저도 애연가로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담배에 대한 단상>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송재소
최근 담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달 22일(2010,2), 우리나라 금연운동의 ‘맹장’인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가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청원’을 발표했다. 박교수의 금연운동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는 2000년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맡은 이후 • 암센터 전 직원 금연 선언(2002년) • 대학입학 전형 때 비흡연자 우대 제안(2003년) • 담배 판매 금지 법안 입법청원(2006년)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금연운동을 펼쳐왔다.
그는 담배를 ‘독극물’로 단정했다. 이런 독극물의 판매를 허용한다면 국가가 국민에게 사기를 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담배가 마약보다 중독성이 심하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들을 담배 중독에 빠뜨려 놓고 그걸 통해 한 해 7조원의 세금 수입을 올리는 지금의 상황은 마약 장사로 떼돈을 버는 조직 폭력배가 하는 짓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번에 발표한 청원의 요지는, 정부가 10년 후인 2020년까지 담배의 제조,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담배 없는 세상 만드는 데 인생을 바칠 것”이라는 결의를 밝혔다.
앞으로 국가가 담배의 제조, 판매를 금지시키라는 그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박교수의 주장대로 담배가 독극물이라면 그 제조,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상 박교수의 지속적인 금연운동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 있다.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야만인 보듯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배라는 ‘독극물’을 들이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 이 ‘독극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길은 박교수의 계획대로 국가가 담배의 제조, 판매를 금지하는 수밖에 없다. 박교수의 소원대로 ‘담배 없는 세상’이 되면 담배가 아무리 그리워도 피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담배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오랜 벗이었던 담배와 영원히 이별할지도 모르는 이 마당에서 담배에 대한 약간의 사설(辭說)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정들었던 담배와 무덤덤하게 초초히 헤어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담배를 가장 좋아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은 담배를 ‘니코틴 부인’이라 칭하고 이 “니코틴 부인에 대한 충성을 끊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 바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약 400여 년 전인 광해군 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에서 왔다고 해서 남초(南草)라 불리다가, 신비한 약효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남령초(南靈草)로도 불렸다. 또한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한다하여 연주(煙酒)로,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시켜 준다고 해서 연다(煙茶)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다하여 상사초(相思草)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하여 망우초(忘憂草)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담배는 민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초기 애연가 중의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는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이 물건(담배)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나무꾼, 목동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라 말했다. 계곡의 담배 사랑은 각별했던 모양이다. 이덕리(李德履)의 「기연다(記煙茶)」에 이런 기록이 있다.
계곡은 담배를 몹시 즐긴 사람이었다.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 일찍이 인조 임금께 “전하께서는 장 아무개를 데려다 쓸만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신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끊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쓸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라고 아뢴 적이 있었다. 사실 계곡은 선원의 사위였다. 늘 선원의 꾸중을 듣고 담배를 끊으려 했지만 끊지를 못했다. 그래서 자기 저서에 그 사실을 적은 것이다. 비변사 청사 안에서 담뱃대를 가로 물기 시작한 것은 계곡부터라고 세상에는 전해온다.
계곡이 장인의 꾸중을 듣고도 이 ‘독극물’을 끊지 못했음인지 그는 52세로 짧은 생을 마쳤다. 계곡 이후의 애연가로는 이옥(李鈺)이 단연 돋보인다. 그는 담배를 좋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연경(煙經)』이라는 저서까지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연초의 재배에서부터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담배의 성질, 담배의 제조 공정과 사용법, 흡연 도구, 흡연의 멋과 효용 등에 이르기까지 58조에 걸쳐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다. 과연 그의 담배 사랑이 지극하다 하겠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그가 어느 정도의 애연가였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해진 지도 또한 장차 이백 년이 된다. …… 꽃에 취하고 달을 삼키듯 하니 담배에는 술의 오묘한 이치가 있으며, 푸른 것과 붉은 것을 불에 사르니 향(香)의 뜻이 서려 있고, 은으로 만든 그릇과 꽃무늬가 새겨진 통이 있으니 차(茶)의 운치가 있으며, 꽃을 재배하여 향기를 말리니 또한 진귀한 열매와 이름난 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이렇듯 “하루라도 차군(此君)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할 만큼 “담배에 벽(癖)이” 있었던 그는 55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역시 ‘독극물’을 애호했던 탓일까? 국가가 담배의 제조, 판매를 금해야 한다는 박재갑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국가가 담배를 적극 권장한 사례가 있다. 바로 정조(正祖) 임금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담배에 관해서 찬반 양론이 분분했던 모양인데 이 와중에서 정조는 결연히 담배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신하들에게 내린 책문(策問)에서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담배의 이로움을 조목조목 개진하며 “담배를 금지하자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쓰기에 유용하고 사람에게 유익하기는 차나 술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라 말했다. 그는 나아가,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풀(담배)을 내려 보냈는데 하늘을 도와 정치를 하는 임금은 마땅히 만백성들에게 담배의 혜택을 두루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한 정조도 49세에 급사(急死)했으니 이 또한 ‘독극물’의 해독 때문인가?
한편 이러한 ‘독극물’을 애용하면서도 비교적 장수한 사람도 있다. 늘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살았던 영국 수상 처칠은 92세까지 살았고, 세수할 때에도 한 손에 담배를 들었고 주례 설 때에도 담배를 피웠다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 하루에 담배 10갑을 피웠다는 그는 70세에 작고했는데 당시로서는(1963년 작고) 장수한 편에 속한다. 평생 담배를 즐긴 소설가 박경리 여사는 83세에 폐암으로 작고했고 담배의 대명사 임어당은 82세까지 살았다. 80을 넘겨 살았으면 비록 폐암으로 죽었더라도 그것을 굳이 담배라는 ‘독극물’ 때문이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요즈음처럼 담배 피운다고 코너에 몰려 구박만 받고 살다보니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쁜 것이 담배뿐만 아닐 터인데 왜 담배만 가지고 이 난리들인지. 담배 연기보다 몇 백 배나 더 해롭다는 자동차의 매연(煤煙)은 어떤가? 매연 없는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면 국가가 자동차의 제조, 판매를 금지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인체에 백해 무익하다는 백설탕이나 콜라도 마찬가지이다. 또 ‘중독성’을 놓고 보더라도 컴퓨터 게임의 중독성이 담배의 중독성에 못지않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굶겨 죽인 부부도 있고, 게임을 말린다고 어머니를 살해한 청년도 있었다. 청소년들의 심신(心身)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안다면 이 또한 제조, 판매를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사기를 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는 마약 장사로 떼돈을 버는 조직 폭력배가 하는 짓과 다름없다.”는 등의 막말을 하면서까지 “담배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그토록 애쓰는 박재갑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로는 박교수가 전생(前生)에 담배와 무슨 악연(惡緣)이라도 맺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이 글을 쓰는데에 『完譯 李鈺全集』(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휴머니스트, 2009)과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역, 휴머니스트, 2008) 두 책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한국한문학회 회장 역임
* 주요저서
다산시연구(茶山詩硏究), 창작과비평사, 1993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창작과비평사, 2001
한국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돌베개, 2005 등
http://www.itkc.or.kr/itkc/post/PostServiceDetail.jsp?clonId=POST0019&menuId=M0445&nPage=5&postUuid=uui-586c1dc8-dfdd-4c9f-a51f-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