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길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갑니다
새 풀잎마다
이슬은 반짝이고
작은 길은 촉촉이 젖어
나는 맨발로
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 가도
그대에게 이르는 길
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
아침 그 길을 갑니다
오영선, 내 뿌리는 네게로 향해 있다
새벽 두 시
잠을 이루지 못한 물구나무선 하늘이 쏟아진다
비의 뿌리를 보고 생각이 턱을 괸다
나에게도 뿌리로 왔다간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잎이고 줄기가 되고 싶었다
네가 떠나버린 후, 밤은 하루를 덮어주는 안식이 아니다
나를 묻는 질문으로 뒤란에 뒹구는 나뭇잎 소리가 차고 쓸쓸하다
혼자여서 나의 밤은 온전히 나의 것
소식 없는 네게 닿지 않는 길을 열어 안부를 보낸다
슬적 너 있는 곳으로 내 뿌리를 뻗어본다
내 뿌리는 항상 네게로 향해 있다
천양희, 너에게 쓴다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자리 잎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잎 진자리 새가 앉는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이진기, 사랑 中
당신은 구름이 되고
나는 바람이 되어
코발트 빛 하늘 아름답게 수를 놓고
짙어가는 푸른 들녘 사랑으로 꽃피우며
영원을 향하여 우리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