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김현태, 첫사랑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 발이 없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나희덕,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원태연, 알아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안도현, 어둠이 되어
그대가 한밤에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