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준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미안하구나.”
보라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듯하다. 네 어머니와 한 약속,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구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보라는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라가 아기일 때 두 분 모두를 잃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가는 길에 보라를 나에게 맡겼다. 종교인의 입장으로 돌연변이를 돌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라를 맡았을 때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보라는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행동들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미소. 한 번도 나의 행동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지만 보라 앞에서 모든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지금도 보라는 알지 못하는 비밀을 품은 체 생활을 한다는 게 미안하다. 언젠가 보라가 나의 품을 떠나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가 온다면 모든 비밀을 이야기해줄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교에서 나의 거주지를 옮기길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계속 거절해왔는데 더 이상은 거절하기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나를 제거하기 위한 빌미를 만들려는 것 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아차 싶어서 다시 집어넣었지만 보라가 혹시 눈치챈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아이. 아이의 눈치를 살펴보기도 전에 보라는 내 손을 잡으며 전했다.
(괜찮아요.)
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능력이 있었다. 좀비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 혹은 말을 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가지는 능력인지 아니면 보라만의 능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전할 수 있었다.
텔레파시와 비슷하지만, 말뿐만 아니라 느낌, 상황 등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표현하자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라의 꿈속에 내가 들어가게 되는 그런 느낌.
(저는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깐 신부님께서도 꼭 건강하셔야 해요. 꼭 다시 만나야 해요.)
이미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보라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해결해왔다. 그동안 본교에서 끊임없이 이동을 요구해왔지만 거절해왔다. 나의 과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변화가 생겼다는 것 정도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수녀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것이다. 보라라면 아마 나에게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심성이라면 나에게 방해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번이고 고민했을 것이다. 나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떠나서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었을 것이다. 헤어짐을 너무 빠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언제라도 헤어질 준비를 하는 모습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