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1167464579992496
"뭉치 빠구리." 최근 메갈 워마드릍 둘러싼 논란에 휩쓸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단어 몇 개가 생각났습니다. 1980년, 이철용의 글을 황석영이 윤문한 "어둠의 자식들"이란 소설이 '황석영 저'로 출간됐습니다. 빈민 동네의 실상을 내부자의 눈으로 보고 내부자의 언어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념비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듬해에는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깡패, 양아치, 매춘여성을 포함한 빈민동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외부자적 시선으로나마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사회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녔다고 봅니다. 이토록 강렬한 사회 고발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 광주항쟁 그 해에 출간됐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텍스트는 메시지를 압도하는 깡패와 양아치들의 '은어'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건 개비, 뭉치, 빠구리, 국가뽁 정도지만, 이 생경한 - 또는 참신한 - 단어들로 인한 충격은 메시지를 덮고도 남았습니다. 어쩌면 검열당국도 이 '은어들'에 현혹됐을지 모릅니다. 이 책에 대한 청소년들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냐면, 고3이라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독서와 담을 쌓았던 저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깡패와 양아치의 언어와 함께 그들의 도덕률도 쏟아져 들어와 교실 문화를 지배하게 됐습니다. 가치관이든 세계관이든 언어로 구축되는 것이니, 양아치의 언어와 양아치의 도덕률이 별개일 수는 없었던 거죠. 제 사적인 경험에 따르면, "어둠의 자식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른바 '범생이'들의 영역과 양아치 - 당시에는 아직 일진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 들의 영역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장벽을 허무는 데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아니 그보단 양아치의 도덕률이 학교문화를 주도하게 만들었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겁니다. 한참 뒤에 나온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담은 판타지와 리얼리티는 이 시점의 이 현상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한동안은 '어둠의 자식들'이 가르쳐준 언어와 그에 묻어 있는 '양아치성'을 가까이에 두고 살았습니다. 제가 언제부터 그 말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사회가 양아치의 기표와 도덕률을 용인하지 않았고, 저 역시 '양아치성'을 고수할 의사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이별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일베의 언어를 처음 접했을 때, 바로 '암흑가 범죄자들의 은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난 것'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강자의 편에 서서 패륜의 언어로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했습니다. 빈곤해서 양아치가 된 사람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정상 참작의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익명성이 지배하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 때문에, 그들이 범죄자의 도덕률에서 스스로 벗어날 가능성도 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태는 우려했던 대로 전개됐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베 외부에서 그들을 '암흑세계'에 가둬두려는 사회적 압력이 작동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패륜적 단어는 감염력 높은 세균과 같아서 완벽하게 격리할 수 없습니다. 일베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무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스스로 일베의 반대편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언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은 일베의 언어와 도덕률에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힘과, 이들을 '암흑 세계'에 가둬두려는 힘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라고 봅니다. 이 전선이 보수 대 진보의 전선이었다면, 일베는 진즉에 시민권을 얻었을 겁니다. 힘겹지만 아직 일베를 억누를 수 있는 건, 전선이 상식과 몰상식, 시민적 도덕성과 양아치의 패륜성 사이에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메갈 워마드가 일베를 중심으로 시민사회 일각에 퍼져있는 패륜적 언어에 분노하여 출현했든, 아니면 그저 일베 흉내가 재미 있어서 출현했든, 이들은 오히려 일베를 억눌러 왔던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시민사회가 아직 일베를 억누를 수 있는 건, 그들이 '강자의 편'이어서가 아니라 패륜적이기 때문입니다. 패륜적 언어를 복제하여 패륜적 언어에 대적하는 게 정당해지면, '패륜적 언어'가 '정당한 무기' 자격을 얻게 마련입니다. 당연히 패륜적 언어에는 패륜적 이데올로기가 담깁니다. 게다가 메갈 워마드의 언어에는 '좌좀'이나 '홍어'의 반면 복제어가 없습니다. 여성문제를 제외하면, 그들의 '언어무기'는 일베와 같은 곳을 겨눕니다.
80년대 중반 합동재개발사업을 계기로 빈민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가지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깡패와 양아치의 언어가 빈민의 언어를 대표하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빈민과 깡패, 양아치를 동일시하는 거야말로 빈민에 대해 가장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시선입니다.
게다가 빈민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빈곤 퇴치'였고, 당면 과제는 '빈민에 대한 법적 제도적 관행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었지, '깡패와 양아치의 언어와 가치관'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빈곤이 양아치를 낳는 사회적 맥락을 놓쳐선 안 됩니다. 부잣집 양아치와 가난한 집 양아치를 동렬에 놓을 수 없는 이유죠. 하지만 정상을 참작하는 것과 양아치에게 '빈민층의 대표' 자격을 부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P.S. 이 글을 읽고 "메갈 워마드를 양아치에 비유한 거 사과해라"며 펄펄 뛸 인간들에게 미리 말해 둡니다. '잡년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기꺼이 수용한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 없습니다. 잡년이나 여자 양아치나.
P.S.2. 말귀 어두운 똑똑한 멍청이들이 꽤 많아서 한가지 더. 저는 "결혼제도를 폐지하자"나 "가족제도를 해체하자" 등 기존 가치관과 윤리에 배치되는 주장 일반을 '패륜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제가 '패륜'이라고 적시하는 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리는 언행'뿐입니다. 이를테면 "가난한 것들이 경주나 갈 것이지 뭐하러 제주도로 가다가 이 사단을 빚나?"나 "한남충이 갓양남에게 죽은 건 축하할 일이다." 따위.
P.S.3. "군주의 목을 치는 것보다 더한 패륜이 어디 있나? 역사는 패륜으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던데, 군주는 귀족국가의 수괴이자 상징이죠. 전쟁터에서 적장의 목을 쳐서 그 부하들을 굴복시키는 건 상례입니다. IS가 '외국인 기자'의 목을 치는 게 '패륜'이죠. '젠더권력의 수괴이자 상징'은 누구인가요? 한남충이면 아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