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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조선일보 [태평로]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에 대한 답변
게시물ID : lovestory_75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럇으럇
추천 : 0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23 14:00:35

아버님, 제 편지를 쉬이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저도 어느새 취직하고 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고 늘 부모님께 감사히 생각합니다. 어느 날 임금피크제란 말이 들렸다. 저한테도 도움이 될까 뜯어보니 저역시나 저한테는 하등 도움될게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4대 개혁의 본질은 '세대 전쟁'에 있다고들 하더군요. 불현듯 그게 이번 정부가 저희에게 늘 그랬듯이, 아버님 세대와 저의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본질을 흐리고, 눈 돌리게 하는 아웅인가 하고 부모님 세대와 오해가 생길까 아찔했습니다.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 개혁의 첫머리에 '취업 규칙 변경'이란 게 있더군요. 점잖은 말로 포장돼 있지만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더 이상 정규직으로서의 안정성도 보장 받을수가 없으며, 노조도 회사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이더군요, 기나긴 인턴생활이 끝나가나 했더니, 제 인생 일평생이 인턴 생활의 연속이 될 듯 합니다. 그렇게 해놓고서는 정부나 회사에서는 여력이 생기면 저희 젊은 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홍보합니다. 아버님과 제 월급을 반토막 내 나눠 받는 봉급이 가계 생활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만 더 투정을 부리고자 합니다. 어린 아들의 미숙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그러니 한 발짝만 더 따져보기를 감히 부탁 드립니다. 제 동생은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앞으로도 걔들은 살아가야할 날이 저보다도 길터인데 이 험한 상황에서 쉬이 취직을 권하기가 어렵습니다. 내년 봄 제 결혼은 조금 더 미뤄볼까 합니다. 부모님께서 평생 마련한 아파트를 헐어서 진행했다가는 당장의 결혼 후 가계 유지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미래 가계까지 저 혼자 다 책임져 드리기에는 오늘날 현실이 너무 각박합니다. 지금 당장의 결혼만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외국에서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이라던데 국내에서는 '잡 스플리팅(Job splitting)인 듯합니다.  사회 정의라는 개념으로 포장된 잘못된 정책이 나오는데 어찌 한마디 말씀이 없으십니까. 그러니 제가 말하겠습니다. 아버님이 저희 나이일 때는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희 세대가 말하는 '삼포'는 아버님 시대 때의 어려움과는 스펙트럼이 조금 다른듯 합니다. 신촌에서 아버님께서 지내시던 이층 양옥의 북쪽 모퉁이 방에 철제 계단 타고 올라가는 전세방이 요새는 8000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그 전세마저도 한달을 돌아다닌 끝에 처음 찾은 전세방이었습니다. 전세 대란은 아파트에만 해당하는줄 알았더니 아니더군요. 벌레가 들끓는 헛간 같은 지하 단칸방엔 6000에 50을 달라고 하니 제 박봉에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네요. 단순히 방을 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듯합니다. 노력하면 이런 상황을 벗어나서 아버님처럼 당당한 가장이 될 수 있을까 주판알을 아무리 튕겨보아도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들 장가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어머님은 아파트를 헐어서라도 집을 해주시겠다고 하지만 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그냥 결혼은 조금 더 미루겠습니다. 

직장도 그렇습니다. 개천에서 용 날 기회였던 사법시험은 돈 먹는 하마인 로스쿨로 대체되었고 이 마저도 사시 출신들에게 무시당하여 집안에 빽 없으면 가지 말랍니다. 어떻게라도 돈벌어보겠다고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어보았더니 일주만에 몸살이 나서 한달 약값으로 또 부모님께 손을 벌립니다. 고등학교 때 체육수업 한 번 안받아보고 국영수만 공부하던 저에게 무리였나 봅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 세대와 사회는 저희에게 경쟁을 가르치고, 좋은 대학만을 바라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체능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학교보다는 국영수와 야간 자율 학습, 0교시를 권장하는 학교를 명문고라 부르며 저희를 보내왔고 어느덧 머리가 굵어보니 할 줄 아는거라곤 암기식 공부밖에 없더군요. 다양한 생각은 못하고 경쟁이라는 갇힌 프레임의 시각을 가진 저희가 막상 사회에 진출해보니 느끼는 좌절감은 생각 이상이네요. 인터넷에 날뛰는 일베애들은 어떻게 보면 부모님 세대와 현 사회에서 길러낸 수많은 군상중 한 부분 아닐가요. 어린 시절 저는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알았는데 아버님 말씀대로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사회에 없었습니다. 아버님 세대의 기득권층들에게서 매일 이점을 배우고 하나씩 포기해가고 있습니다.

힘은 합하고 고통은 나눠할 시기입니다. 저희는 길거리에 나서서, 인터넷을 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를 두고 사회 부적응자라니, 요즘 애들은 열심히 하고 개선하려는 자세가 없다고 욕하는 건 참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교수가 미쳐서 쓴 책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것은 기득권층의 달래기로 밖에 안들립니다. 저희가 원하는 책과 기성세대의 인물은 현 상황에 대한 개선책을 보여주실 분입니다.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왜곡되어 가는 동안 아버님 세대는 어떤 목소리를 내셨습니까. 물론 아닌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괜찮다라고 생각하시면서 그 상황을 용인하고, 놔두시지는 않으셨습니까. 

하루에도 세 번씩 이를 악뭅니다.  밥까지 굶었다간 힘이 다하여 더 낙오할까, 오늘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씹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아버님 세대보다 더 왜곡된 구조와 무거운 빚을 등에 업고 있고, 아버님 세대의 대학 시절보다 더 열심히 뛰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샘하는 인턴직 시급은 편의점 시급보다 못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합니다. 아버님 세대가 더 경험이 많고, 진짜 일을 안다고 하시기에 그 자리에 있는걸 늘 이해했지만 회사의 과장님과 부장님은 오늘도 인터넷 보안 체계가 왜 필요하신지를 이해하지 못하셔서 회사 결제 시스템은 액티브 X 투성이고, 엉터리 영어 이메일을 클라이언트에게 보내시면서도 이렇게 해도 다 일이 된다고 하십니다. 부모님 세대의 잘못된 경쟁에 대한 인식은 과도한 학원 교육과 조기 유학으로 내몰았으나 이는 제로섬 게임 그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의 개선이나 회사에서의 처우 개선은 아직까지 아버님이 취직하시던 시대 그대로인것 같습니다. 유학까지 다녀와서 한국의 군대식 사회조직과 저임금 속에서 고용안정성을 걱정하는 저는 오늘도 새벽에 퇴근하고 울 기운조차 없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닌 현재 나라가 까라고 깐다면 제 동생들과 자식들은 저보다 더 힘들게 살겠죠. 저희는 아버님 때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아왔지만 사회가 항상 저희에게 바라는 적응과 인내 밖에 더 있었던가요. 저희 세대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면 섭섭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 세대의 양보가 아니라 함께 화산처럼 분노하며 잘못된 구조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21/2015092103245.html
[출처] 본 글은 조선닷컴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 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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