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임진왜란 중반
행주산성에서 권율에게 영주급 장수 3명이나 중상을 입는 이름바 행주대패? 를 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에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에 고니시를 패퇴시키고 홍낄낄+ㅁ+!! 거리며 남하하자
총사령관 우키다는 강원도와 함경도 및 기타 주변에 있는 왜군들에게
님들 좃망요 ㅠㅠ 빠른 귀환좀 ㅠㅠ
을 외쳤고 연합군이 벽제관 쯤 왔을때 약 5만정도를 집결시켰다
왜군은 바로 역습에 들어갔고 방비없이 내려오던 명군 2만을 벽제관에서 우끼끼+ㅁ+!! 거리면서
말 그대로 썰어버렸으며 총사령관 이여송을 사로잡을 뻔 할 정도로 대패시켰다
대충 상황을 수습하고 꼴지로 도착한 기요마사를 마지막으로 대충 병력을 모은 후
병력을 점검해보니 우키다는 상황이 말이 아니라는걸 뒤늦게 알수있었다
왜냐면 자그만치 16만에 육박하던 왜군은
중간점검? 에서 그 숫자가 고작 8만밖에 되지 않았다
즉 모든 군대가 절반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으며 전사자만 7만 5천에 이른다는 말이다
여기서 유심히 볼것은
명군이랑 교전한건 벽제관을 빼면 고니시 밖에 없다는것인데
결국 고니시 병력을 제외해도 7만정도에 왜군은 전국에세 조선군에게 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말은 당시 남쪽에세 조선군에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 또한 얼마나 대등하게 싸웠는지를 의미한다
무슨
왜군 겁나게 강했쓰요 ㅠㅠ
수군 빼면 조선군 망했쓰요 ㅠㅠ
육군은 3:1로 붙어도 깨져요 ㅠㅠ
백병전 세계 최고요에요 ㅠㅠ
라는 허무맹랑한 소리에 전면으로 반박하는 이야기가된다
[출처] 임진왜
당시 조선군은 남쪽에만 정규군 10만 이상이 주둔하고있었고
특히 경상도에서 8만에 육박하는 조선군이 가장 활발하게 교전중이였으며
전라도를 평정한 전라군사들은 한성으로 북상하고 있던 상황이였다
왜군에 피해상황을 자세히 보면
가장 심하게 얻어터진 군대는 가장 멀리나간 고니시였다
부산에 꺄아>_< 이라고 상륙했을때가 18.700이였는데
이 당시 병력은 고작 6629명
64.5% 즉 12.071이라는 군사를 잃었다 부산과 동래에 조선군이 결사항정 했을때 그리고
신립 기마대와 교전을 했을 때를 합쳐 약간에 병력 손실이 있은 후
평양에서 조선군과 장기간 교전을 벌였던게 병력 손실에 가장 큰 원이이였다
당시 조선군이 얼마나 치열하게 성을 탈환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며 결정타를 +명군이 된 연합군에게
얻어터진것이다
그 다음은 서울 주둔 우키다이다(총사령관)
전체 군사 1만중 4648명을 잃었으니 피해는 46.5%였다
서울에서 지휘하던 군사가 이정도로 피해를 입은 이유는 한성을 탈환할려고 북상하는 전라도 군사를
막으려 남하했다가 독성산성+행주산성에서 리더권율을 앞세운
위대한 전라디언?(흉보는 뜻 아님ㅇ ㅅㅇ!!) 군사들에게 두번이나 대패했기 때문이며
이것 역시 조선군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3위를 차지?한것은 가토 기요마사다
가토 기요마사는 위에 두 군대처럼 큰 교전은 없었는데 야금야금 갉히다보니 결국 이지경이된것
특히 가장 큰 피해는 임진강 전투이다
필자가 올린 글에보면 계략을 이용(계략에 빠지게 했다기 보다 선조 개드립으로 인한 한응인에 원맨쑈 때문)
1만 조선군 정예군을 전멸시켰다고 언급했는데
이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조선군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본것이다
란 중반 왜군 병력 상황 (밀리터리, 군사무기 카페) |작성자 샤방탱구
1만 조선군 정예군을 전멸시켰다고 언급했는데
이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조선군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본것이다
그 후 북상하다가 의병군이 계속 꼬리를 잘라먹었는데
결정타를 날린건 조선군도 명군도 의병도 아닌 바로 날씨 때문..
기요마사가 올라간건 함경도(아시죠?겁나게 추운거) 였고 특별한 준비없이
뭐.. 가서 조선군거 벗겨먹으면 되겠지라고 올라갔다가 전투가 길어지자 후방에 보급을 땡겨왔는데
그걸 조선군 의병이 죄다 갉아먹은것이다
결국 버티다 못해 남하했고 겨울철 엄청난 동사자가 나온것이니 알려지지 않은 의병군 활동이 굉장히 많았다는걸
알수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당시 함경도 쪽으로 진출한 왜군에 상황을 잘 알려주는 대목 중하나가
기요마사랑 손잡고 함경도를 같이갔던 나베시마 나오시게에 종군승으로 있던 세타구에 일기를 보면 알수있다
"콩과 콩 삶은 물만 먹었다. 하늘과 땅은 온통 빙한의 세계였다 2월 11일 함흥을 떠나 서울로 향하여 가는데
눈이 무릎까지 빠져 전진할 수가 없었다. 금강산을 지나는데 산인지 눈인지 알 수 없었고, 사람과 말이 모두 얼어죽었다"
라고 하니 그냥 상황은 그냥 좃ㅋ망ㅋ 인걸 알수있다
그 다음은 구로다 나가마사인데 11.000명 중 3700정도를 잃어 손실율은 33.4%였으며
전라도도 진격하다가 전라도 + 경상도 조선군에게 홍어+과매기 공격으로 대패했던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이름 겁내어려운..)가 15.700중 39.1%인 6148명을 조선군에게 썰리면서
5위를 차지했다
그후 이래저래 피해를 종합 서울에 주둔했던 병력이 아닌 후방에게
조선군에게 털리는 병력까지 종합해보면 아까 말한듯 당시 전사자는 7만 5천이나 되었고
이들 모두 조선 팔도 동서남북 곳곳에 백골이 진토되어 묻혀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니 전세가 크게 불리하다고 판단한 히데요시는
1차 진주성 전투를 기점으로 왜국 본국에서 병력을 증파하였고
그 숫자는 4만2천 정도였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모든 장령들이 에브리바디 모여 문어머리를 맞대고 퇴각해야함? 말아야함?
[출처] 임진왜란 중반 왜군 병력 상황 (밀리터리, 군사무기 카페)
을 고민하던중 군량을 모아놓았던 용산에 조선군이 쳐들어와 불을 싸지르고 퇴각한것..
이 화재로 일본군 전군이 2개월이나 먹을수 있는 식량이 그대로 팝콘이 되버렸다
당시 죽으로 연명하고 있던 왜군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식량을
이런 눈으로 쳐다보았고
결국 총사령관 우키다는 히데요시에게 장령 17명을 모두 모아놓고 회의한 내용을 편지로 써서 올렸다
내용은
1.서울의 군량으로 죽을 만들어 먹으면 4월 11일까지 지탱가능(며칠전 2개월짜리 식량 다 태워먹음 ㅠ_ㅠ)
->2개월 식량 잃고나니 남은 식량이라곤 죽 써도 한달 조금 넘을 양밖에 없음 ㅠ_ㅠ
2.부산에서 군량수송은 10일이 걸리지만 바다나 육지 모두 어려움 ㅠ_ㅠ
->바다는 이순신이 후방은 경상도 전라도 군에게 막혀있고 남은 길은 의병이 활기침ㅠㅠ
3.당분간 서울에 주둔한 병력으로 수만정도에 연합군은 막아낼수 있을꺼 같음;;
->10만 넘으면 못지킴;
종합해보면
식량없음 ㅠㅠ 보급 막힘 ㅠㅠ 서울 근방에 있는 연합군(당시 10만정도) 들이 닥치면 방어 어려움 ㅠㅠ
결국은 아낰ㅋㅋㅋ 우리 빠른전멸요;;
[출처] 임진왜란 중반 왜군 병력 상황 (밀리터리, 군사무기 카페) |작성자 샤방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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