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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던 날
게시물ID : lovestory_758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재영
추천 : 1
조회수 : 4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17 11:21:31
이사 하던 날
 

옛날 농촌에서 좀 산다는 집 아들이던 아버지
그 많던 재산을 노름으로 다 날린 할아버지
그래서 아버지는 소작농을 했었답니다.
 

힘들고 가난했던 농촌 생활에서
아버지는 어린우리를 이끌고
살길을 찾아야 했답니다.
 

어느 날 소달구지에 이불과
무쇠 솥단지 하나 감자 한자루
그렇게 살던 고향을 떠났답니다.
 

아무 연고도 없던 아버지는 산비탈에
가마니와 볏짚을 엮어서 움집을 만들고
가족이 한동안 여기서 살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허리도 펼 수 없는
움집에서 묵묵히 몇 달을 참고 또 참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도시 건설 현장에 가서 막노동으로
어머니는 가까운 밭에서 밭일을 도우면서
가족들이 먹을 것을 구하여 왔습니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면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아버지는
달동네에 꾀나 큰 방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또 이사를 해야 했는데
이번엔 소달구지가 아닌 리어카에
이삿짐을 싫고 이사를 했습니다.
 

한참 동안 언덕을 오르고
리어카를 세운 뒤에 가족들이
이삿짐을 등에 지고 날랐습니다.
 

움집보다 방이 크고 천장도 높아 일어서도 되고
가족들이 모두 다리를 펴고 누울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가지고 온 긴 줄을 방 한 가운데
걸어놓았는데 무엇에 쓰는 것인지 나중에 알았습니다.
 

밤에 잠자기 전 늘 아버지는 천정의 긴 줄에
이불보 같은 넓고 큰 천을 걸어 두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땀 흘리면서 열심히 일했고
어머니도 역시 동네에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고 품삯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자라서 이제는 학교에 갈 무렵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학교에 가까이 있는
꾀나 큰 동네에 방 두 개가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작은 방하나는 우리 형제가 쓰고
부엌이 딸린 방은 어머니 아버지가
쓰실 장롱도 사와서 들여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다른 아이들이 가는
전자오락실에는 절대 가지 못하도록 어머니에게
감시를 시키셨고 수시로 확인하고 또 확인 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아버지는 건설회사 책임자가 되셨고
어머니는 집근처에 있는 동네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어머니의 크나큰 고생과 우리 형제 말썽 부리지 않고
자란 은혜로 이웃 동네에 있던 집들을 헐어 내고 새로 짓기 시작한
아파트 지금 부모님 살고 계시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연고도 없이 무작정 도시로 올라와서
움막집 단칸 방 월 세집 몇 년 후 전 세집에서
이제 남들 다 부러워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집안 경제 철학 아무리 큰 부자들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거나 따라 갈 수는 없다고 했답니다.
 

가진 것만 믿으며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들은 얼마 못가서
집안의 곡간이 텅 비게 된다면서 부지런히 일하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부모님 귀밑머리에 흰 것들이 보이기 시작 그동안
자식들 생각으로 일만하며 사셨는데 요즈음은 자주 힘들어 하십니다.
 

우리 형제는 다행히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부모님께 걱정을 드리지 않으며 형제가 먼저 틈나는 데로 찾아뵙습니다.
 

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부모님들의 무한한 희생으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열심히 공부만 하며 오늘에 왔습니다.
 

우리가족이 몇 차례 이사 다니면서 집을 늘리고 살아온 과정이 우리가족 뿐일까요.
지나간 힘든 시대를 살아오신 모든 이시대의 어른들이 겪고 살아온 과정일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젊은 세대들은 어르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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