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그 화살을 주워서 나 자신에게 다시 쏘는 겁니다.”
유시민의 악플상담은 스테디셀러처럼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선명한 주장으로 많은 악플에 시달린 경험을 갖고 있는 그가 악플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내놓은 것은 ‘무플’이다.
사람들은 악플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는 경험을 한다. 무시하지 않으면 악플러의 의도에 휘말리게 된다. ‘선택적 악순환’이 시작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악플러들은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지만 ‘무플’로 대처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일까?
악플은 힘이 세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엔 더 그렇다. 기자들의 글이나 방송 프로그램도 안전하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뉘앙스(그들은 대부분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만 보여도 공격을 시작한다. 댓글은 이미 미디어 권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작가 스탠 리는 “막강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지만 익명의 숲에서 언어의 기관총을 난사하는 이들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분들이 온다”는 말은 악플러들에 대한 위트 섞인 두려움의 표현이다. 악플 때문에 누군가는 소셜 미디어를 접고 심지어 누군가는 자살을 한다.
최근에는 악플이 세력화하고 있다. 세력화된 악플러들은 상대방이 항복선언을 할 때까지 무차별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그들은 흔히 게시판으로 알려진 서식지를 뛰쳐나와 타깃의 홈페이지나 소셜 미디어 계정, 메신저 등을 덮친다.
메갈리아 티셔츠 논란 때 정의당이 홈페이지를 습격한 악플러들의 공세에 항복해 성명서를 취소한 적이 있다. 악플러들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더 큰 화력을 과시한다. 당 최고위원인 여성위원장에 입후보한 유은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손혜원 의원이 집중 공격을 당한 것.
온라인 당원들 가운데 일부가 손 의원이 문재인 영입인사인 양향자 후보가 아니라 유은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견디다 못한 손 의원은 결국 트위터 계정을 폐쇄했다. 손 의원은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같은 당의 은수미 전 의원도 유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온갖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한다. 은수미가 누구인가. 바로 그 온라인 당원들을 열광시켰던 필리버스터 스타 아닌가. 당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 뜻에 맞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적(敵)’으로 생각하는 집단적 배타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선거 결과 양향자 후보가 57.08%를 득표해 42.9% 득표에 그친 유은혜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여성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악플로 얼룩진 선거운동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의 박정아 선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팀의 4강 진출이 무산된 뒤 엄청난 악플 공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니키 잭슨 콜라코 정책총괄은 최근 내한해 악플에 대한 대응 정책을 밝혔다. 그는 “정말 무서운 것은 악플 때문에 원하는 콘텐츠를 공유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이것이 진짜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악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명시적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인스타그램은 특정 단어를 필터링하고 특정 게시물에는 아예 댓글을 달 수 없게 만드는 장치를 추가했다. 아동학대 사진은 자동으로 차단한다. 트위터에는 퀄리티 필터가 있고 유튜브 역시 사용자가 댓글을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필터링이 만병통치약일까? 과도한 필터링에 직면하지는 않을까? 유시민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 악플을 무시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원주민인 청소년과 청년들은 과연 악플에 무플로 대응할 수 있을까?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인터넷은 무시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이겠지만 디지털 세대에게 인터넷은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악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고려대 박경신 교수는 “우리가 도의적으로 계도하고 또는 법적으로 제재하고자 하는 혐오 표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일으킬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표현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차별이나 폭력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사회구조가 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지 혐오 표현만으로 윤리적,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플의 세력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 국가기관 등이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양말부대(socks puppet)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철학자 마이클 린치가 지적했듯이 “인터넷은 진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유혈이 낭자하고 지저분한 전쟁터”가 되어 가고 있다. 미디어 권력의 한 양상으로 자리 잡은 악플의 세력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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