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세게 쥐었다
그땐
몰랐으니까
바람에
날릴까 봐
파도에
쓸릴까 봐
자두처럼
멍들었지
움켜쥐면
쥘수록
빈손
뿐이란 것을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를 보고
알았지
박장순, 사랑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푸른 밤, 나희덕
아가
오늘이 성년의 날인가 뭐신가 하드라
그래서 사방이 장미꽃 받는 청년들 뿐이여
아가
35년이 지나도 가슴 속 열 여덟으로 잠든
내 아가야
미안타, 올해도
엄마는 국화꽃밖에 주지 못하겄다.
오일팔, 서덕준
잊으라 했기에 당신을 잊으려
시간아 흘러라 빨리 흘러라 그랬지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흘러가면 잊힐 줄 알았지요
그런데 시간마저 당신을 놓아주지 않더이다
사무치도록 그리워 가슴에 담은 당신 이름 세 글자
몰래 꺼내기도 전에 눈물 먼저 흐르더이다
당신 떠나고 간신히
잊는 법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 했는데
다시 찾아온 계절은
누군가 몰래 맡기고 간 베르테르의 편지를 안겨주더이다
당신을 사랑하던 봄
지운 줄 알았던 당신의 흔적
곳곳에 문신처럼 박혀있더이다
잊으라 해서 잊힐 줄 알았던 에로티시즘
다시 찾아온 봄과 함께 전신으로 번져가더이다
가늘게 떨리듯 호흡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익숙한데
잊으려 하니 그제서야 꽃이 피는데
나 어찌합니까
잊으려 하니 꽃이 피더이다, 김정한
오늘따라 유독 허기가 졌다
황홀을 먹고 싶었다
낭만 실조에 걸린 것 같았다
날 보고, 네가 웃었다
포만감에 숨 쉬지 못했다
낭만실조, 이훤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사모곡, 감태준
겨울이었어
네가 입김을 뱉으며 나와 결혼하자 했어
갑자기 함박눈이 거꾸로 올라가
순간 입김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어
엄지발가락부터 단내가 스며
나는 그 설탕으로 빚은 거미줄에 투신했어
네게 엉키기로 했어 감전되기로 했어
네가 내 손가락에 녹지 않는 눈송이를 끼워줬어
반지였던 거야
겨울이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자 했어.
오프닝 크레딧, 서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