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무서웠는지 웅크린 채 세상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소년시절.
교실 한 켠에 바위처럼 조용히 박혀있던 나를 너는 알기나 했을까.
네 앞에만 서면 나는 무엇이 그리 죄스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언제나 공상 속에서 살던 나는 너라는 현실이 다가올 때마다 비굴해졌다.
아무도 없이 단 둘이 남았던 방과 후의 교실.
책상열을 맞추며 재잘거리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왜 건성스런 대답 밖에 돌려주지 못했을까.
황혼과 함께 넘실거리는 커튼 자락에 부딪히며 겸연쩍은 듯 웃던 너를 바라보며
머릿속에서는 수 십번 멋지게 해낼 수 있었던 그 한 마디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수많은 후회를 삼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워야만 했다.
용기를 내지 못해 놓쳐버렸던 것을 통해 나는 힘겹게나마 말을 꺼낼 수 있는 법을 배웠고
비굴했던 탓에 지나쳐버린 것들을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배운 끝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부여잡던 나는
꿈속에서 너를 본 순간 그만 그 말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지 못했던 말들과 하지 못했던 것들.
아무리 배워도 지워지지 않는 현실의 후회였던 너는
이제 내 도피처였던 공상 속에서 조용히 숨쉬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웃는 얼굴을 떠올리지 못해 새겨진 그 때의 그 겸연쩍은 미소로
황혼과 함께
커튼처럼 넘실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