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마징가 Z' '코난' 배후에 좌파 내셔널리즘 있다고?유석재 기자
[email protected]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34) 입력 : 2009.08.01 03:34 / 수정 : 2009.08.02 09:41 일본문화연구가 최석진씨, 日애니메이션 분석 "70년대 이념 세례 작가들애니메이션 흐름에 영향원시 공산주의 동경하고반미주의 노골적 표현" 1970년대에 소년시절을 보낸 한국인치고 나가이 고(永井豪) 원작의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 Z'(1972)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악당 헬 박사, 아수라 백작(원작은 남작), 브로켄 백작의 캐릭터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하지만 헬 박사의 '과거'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만화에서 그는 '나치 독일 출신 과학자'다. 그의 부하로 손에 자기 목을 들고 다니는 브로켄 백작은 독일군 장교 출신의 사이보그였다. 나치와 관련된 일본 만화의 악당들은 이뿐이 아니다. '겟타로봇 G'에는 '히드러 원수', '당가도 A'(국내 방영 제목 '스타에이스')에는 '도프라 총통'이 등장했다. 애니메이션 애호가 중 이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를 두고 "1970년대 좌경화(左傾化)의 세례를 받은 대본 작가들이 만화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02년 '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열음사)를 출간했던 일본문화연구가 최석진(崔碩津·34·사진)씨다.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새 저서 '일본 SF의 상상력―20세기의 화석과 내셔널리즘'(가제)에서 최씨는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후에 좌파(左派) 내셔널리즘의 거대한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로 생각하고 작품을 낳은 역사적 흐름을 무시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미래소년 코난'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68)는 일왕가 자제들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대 정치경제학부를 나왔습니다. '반딧불의 묘'를 감독한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74)는 도쿄(東京)대 불문과 출신이고요." 이런 '초(超)엘리트 출신 작가'들이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안보투쟁'으로 대표되는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사회의식을 함양했고 향후 애니메이션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일본 '좌파 내셔널리즘'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2차대전의 패전 이후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선 '파시즘이 민중을 저버렸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피해자로서의 민족의식이 꿈틀거렸고 이는 1970년대 반미(反美)의식으로 성장했다. ▲ (왼) 원시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의 이상을 표현한‘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오) 탄광노조 파업과 철도 민영화의 여파가 드리워진‘천공의 성 라퓨타’(1986). 정치적 '우경화'와 문화적 '좌경화'가 동시 진행됐는데 애니메이션은 후자의 영역이었다. 최씨는 "귀축미영(鬼畜米英·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미·영을 낮춰 부르던 말)이 '베이테이(米帝·미 제국주의)'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독일'은 '우파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트렌드였다고 최씨는 주장한다. 1970년대만 해도 과거의 자신들에 대한 은유였지만 전공투(全共鬪) 끝 세대인 오시이 마모루(押井守·58) 원작의 1999년작 '인랑(人狼)'에 이르면 곧바로 '미국'을 등치시키는 상징으로 바뀐다. 전후(戰後) 일본을 점령한 나라가 '독일'로 설정된 것이다. 특수촬영물 '울트라맨'도 이런 은유의 세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던 1972년의 한 시리즈에서 울트라맨은 '야풀'이라는 괴수와 싸운다. 그런데 '야풀'은 1950년대 초의 신문연재 SF소설에서 '미군 점령기 백인의 노예가 된 일본인'의 종족명이었다. 결국 당시 친미 성향의 일본 정부를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 (왼) '영어를 쓰는 침략군’이 일본에 상륙하는 설정이 등장하는‘최종병기 그녀’(1999). (오) 일본 로봇이‘미국 침략로봇’과 싸운다는 내용의‘철인 28호—백주의 잔월’(2006). 1993년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는 한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의 평화란 도대체 뭐지? 예전의 총력전과 그 패배, 미군의 점령정책, 나머지 세계에서의 무수한 전쟁에 의해 합성되고 유지돼 온 피투성이 경제번영이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속살인 것이다." 거장(巨匠)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1980년대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좌파 이상주의'가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심정좌익(心情左翼)으로 자처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1978)에 이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 원시 공산주의적인 소규모 공동체의 이상을 표현했다. 탄광촌 출신의 주인공들이 철도 노동자의 도움을 받는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1984년 영국 탄광노조 총파업과 1985년 일본 국철 민영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최씨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비(非)미국적인 대안으로서 절제, 복지, 연대(連帶) 같은 유럽식 가치를 동경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중국 또한 그런 '대안' 중의 하나였다. 최씨는 "당시 일본의 베스트셀러 대중문화작품에서는 중국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북두의 권'에서는 북두신권의 본향이 중국이었고 '드래곤 볼'은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며, '쿵후소년 친미'는 등장인물과 배경 자체가 중국이었고 '란마 1/2'은 중국식 복장에 팬더까지 등장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인랑’(1999). ‘일본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고 실업자의 대군이 슬럼을 형성한’가상의 현실에서 극좌테러가 일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1992년작 '붉은 돼지(紅の豚)'는 작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홍(紅)'으로 상징된 '개혁개방 와중에서 부패해 버린 중국 공산당'에 대한 평가절하였다는 해석이다. 최씨는 "거품경제의 몰락과 9·11, 이라크 전쟁 이후 다시금 일본의 연성(軟性) 좌파 내셔널리즘이 부활됐다"고 분석했다. 1999년에 연재가 시작된 '최종병기 그녀'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외국 침략군이 일본 열도에 상륙한다'는 설정이 등장했고 B-52기가 어촌을 무차별 폭격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2002년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3'에서는 아예 '미제타도(米帝打倒)'라는 글자가 부활했다. 2006년의 극장판 '철인 28호―백주(白晝)의 잔월(殘月)'에서는 일본 거대로봇만화의 원조격인 철인 28호가 일본을 재점령하려는 미국의 침공 로봇군단에 맞서 '반폐허탄(反廢墟彈)'을 쏘며 싸운다. 그런데 원래 작품 설정상 '철인 28호'는 옛 일본군이 결전병기(決戰兵器)로 만든 '철인 병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