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 그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백지같은
처음부터 그대는 백지였다
쳐다만 봐도 말문이 막히고
하얀 손수건처럼 자꾸만 서러워졌다
처음부터 그대는
내가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백지
김춘수, 너와 나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베르톨트 브레히트, 약점
당신은 없었다
나는 하나 있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이정하, 비
그대 소나기 같은 사람이여
슬쩍 지나쳐놓고 다른 데 가 있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몸은 흠뻑 젖었는데
그대 가랑비 같은 사람이여
오지 않는 듯 다가와 모른 척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마음까지 젖어 있는데
용혜원, 사랑의 시작
너를
만난 날부터
그리움이 생겼다
외로움 뿐이던 삶에
사랑이란 이름이
따뜻한 시선이
찾아 들어와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나의 눈동자가
너를 향하여
초점을 잡았다
혼자만으론
어이할 수 없었던
고독의 시간들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들이 되었다
넌 내 마음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나는 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