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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무렵
게시물ID : lovestory_75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카엘의노래
추천 : 3
조회수 : 62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27 07: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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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네 살 무렵



                           - 김종래


네 살 무렵 혼자가 된 날

거두신 우리 할머니


날 낳고 일 년도 안 돼 날

버리신 우리 어머니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날만큼

자주 바뀐 새어머니들


부서진 아버지의 인생과

그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자란

내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 댁에 처음 간 날


아직도 잊지 못 할 그날 밤

엄마를 찾는 내 지저귐은


꿀밤과 회초리가 되어 날아오고

지쳐 잠든 날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우리 할머니


난 새벽녘 없던 몽유병으로 온 골목

돌아다니다 넘어지고 부딛혀 무릎에

피가 배이고


옆집 아저씨 손에 이끌려 집에 찾아오고

눈물 훔치며 꾸중하시는 할머니를

그땐 이해하지 못했죠


그렇게 몇 해가 흘렀어요.


어느새 난 할머니를 도와 생업에

보탬을 줄 수 있을만큼 커갔어요.


그때부터가 고된 내 인생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했어요.


할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어 팔고

매주를 빚어 팔고 손을 베여가며

생밤을 몇 년동안 까고


똥과자를 만들어 팔고 빈 병을 주워

슈퍼에서 생필품으로 바꾸고


내 유년시절은 그런 기억들로 가득해요.


근데 그게 시작이었음을

그땐 절대 알지 못했죠.


난 쉽게 살 팔자는 아닌가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렇게 또 몇 해가 흘러


중학교 시절 치매가 온 할머니는

내게 부모님 이상의 존재인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뜨셨어요.


평생토록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다 큰 날 한 번 안아보지도

꿀밤을 때려 보지도 못하고

떠나신 우리 할머니


볼을 깨물어 눈물을 삼켰지만

영안실에서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핏물과 눈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어요.


죄 짓지말라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말라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 나보다 남을 위해 살거라


종교는 없었어도 그 어떤 종교인 보다

훌륭한 성품을 지니신 우리 할머니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십 사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땅


네 살 무렵부터 뛰어 놀던

할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던


이 동네가 너무도 향긋하게

다가옵니다.


그때의 내음이 눈으로 느껴집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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