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무렵
- 김종래
네 살 무렵 혼자가 된 날
거두신 우리 할머니
날 낳고 일 년도 안 돼 날
버리신 우리 어머니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날만큼
자주 바뀐 새어머니들
부서진 아버지의 인생과
그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자란
내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 댁에 처음 간 날
아직도 잊지 못 할 그날 밤
엄마를 찾는 내 지저귐은
꿀밤과 회초리가 되어 날아오고
지쳐 잠든 날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우리 할머니
난 새벽녘 없던 몽유병으로 온 골목
돌아다니다 넘어지고 부딛혀 무릎에
피가 배이고
옆집 아저씨 손에 이끌려 집에 찾아오고
눈물 훔치며 꾸중하시는 할머니를
그땐 이해하지 못했죠
그렇게 몇 해가 흘렀어요.
어느새 난 할머니를 도와 생업에
보탬을 줄 수 있을만큼 커갔어요.
그때부터가 고된 내 인생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했어요.
할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어 팔고
매주를 빚어 팔고 손을 베여가며
생밤을 몇 년동안 까고
똥과자를 만들어 팔고 빈 병을 주워
슈퍼에서 생필품으로 바꾸고
내 유년시절은 그런 기억들로 가득해요.
근데 그게 시작이었음을
그땐 절대 알지 못했죠.
난 쉽게 살 팔자는 아닌가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렇게 또 몇 해가 흘러
중학교 시절 치매가 온 할머니는
내게 부모님 이상의 존재인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뜨셨어요.
평생토록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다 큰 날 한 번 안아보지도
꿀밤을 때려 보지도 못하고
떠나신 우리 할머니
볼을 깨물어 눈물을 삼켰지만
영안실에서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핏물과 눈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어요.
죄 짓지말라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말라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 나보다 남을 위해 살거라
종교는 없었어도 그 어떤 종교인 보다
훌륭한 성품을 지니신 우리 할머니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십 사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땅
네 살 무렵부터 뛰어 놀던
할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던
이 동네가 너무도 향긋하게
다가옵니다.
그때의 내음이 눈으로 느껴집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