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드르륵 철컹.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문을 연다. 뒤편의 작은 창고를 열고 가방과 외투를 벽에 건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편의점 안을 가볍게 쓸어낸다. 휴지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하루라도 빗질을 건너뛰면 깐깐한 주인 할머니가 귀신같이 알아챈다. 빗자루를 다시 창고에 던져넣고 출입문 왼편의 수납대를 위로 올려 계산대 안으로 들어간다. 0.5평의 이 작은 공간에서 8시간을 보내야 한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잔돈을 세어본다. 만원짜리 다섯 장, 오천원짜리 다섯 장, 천원짜리 스무 장……. 동전까지 모두 세어본 후 서랍 안의 장부를 꺼내 어젯밤 할머니가 적어둔 액수와 맞는지 확인하고 다시 서랍에 넣는다. 600원짜리 1회용 원두커피를 뜯어 텀블링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커피가 잘 우러나도록 티백을 천천히 들었다 놓는다. 다시 천천히 들었다 놓는다.
첫 손님이 들어온다. 맞은편 건물 보험사에 근무하는 젊은 설계사다. 매끈하게 차려입은 곤색 수트가 오늘따라 근사하게 보인다.
“레종 블루 하나요.”
몸을 돌려 담배를 집는데 허리가 수납대 턱에 걸린다. 어젯밤에 만두를 먹고 잤더니 그새 부었나? 다시 몸을 원상태로 돌렸다가 원심력을 이용해 힘껏 뒤튼다. 손이 닿는다. 담배를 집어 남자에게 건네주는데 얼핏 웃음기가 보인다.
“2천5백원이요.”
3천원을 받고 5백원을 거슬러준다.
커피를 마신다. 가게를 열고 커피 마시는 이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텀블링을 두 손으로 감싸 온기를 느끼며 편의점을 둘러본다. 과자며 라면 음료 따위가 5평의 공간에 빼곡이 들어차 있다. 말이 편의점이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만 영업하는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슈퍼마켓이다. 주인 할머니는 어디서 들었는지 요즘 슈퍼는 다 망한다며 가게 간판을 제일편의점이라고 바꾸어놓고는 슈퍼마켓처럼 영업을 한다. 원래 이름은 제일슈퍼였다.
내부 구조는 그럴싸하다. 이 동네 토박이인 주인 할머니는 오랫동안 슈퍼를 운영하면서 주변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것을 봤다. 할머니는 간판을 바꾸면서 내부 구조도 바꿨다.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온수대를 설치하고 예전엔 없던 샌드위치며 햄버거를 들여다 놓았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어 그곳 제빵소에 전화를 하면 하루에 한 번 무료로 배달을 해준다. 가장 놀라운 것은 카드 결제가 된다는 점이다. 카드 결제가 되는 제일슈퍼 아니 제일편의점. 아침부터 밤까지만 문을 여는, 카드 결제가 되는 제일편의점. 이곳이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내 일터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편의점은 분주해진다. 맞은편의 오피스 건물에는 꽤 많은 회사가 입주해 있어 손님이 적지 않은 편이다. 여직원들은 수시로 나와 과자며 음료를 사간다. 삑삑삑삑. 바코드를 찍으며 생각한다. 이렇게 먹는데 왜 저들은 살이 찌지 않는 걸까? 슬며시 손을 내려 옆구리 살을 집어본다.
딸깍. 잠시 손님이 끊긴 틈을 타 열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화장실로 간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몸 안의 수분이 1리터는 빠져 나간 것 같다. 1리터면 몇 그램이지? 1킬로그램이 빠진 건가?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돌아오는데 문 앞에 몽쉘이가 앉아 있다. 이 동네 터줏대감 길고양이다. 온몸이 새까만 털로 덮여 있어, 내가 좋아하는 초코케잌 이름을 따 몽쉘이라 지었다. 프랑스 고양이 이름 같아 아주 마음에 든다. 몽쉘이가 노란 눈을 반짝거리며 날 바라본다. 나는 열쇠를 돌리고 들어가 창고 안쪽의 작은 냉장고에서 반쯤 남은 참치를 들고 나온다. 어제 몽쉘이가 먹다 남긴 참치다. 비닐 한 겹을 바닥에 깔고 참치를 부어준다.
배고팠니? 밥이라도 비벼 줄까? 근데 넌 가족 없니?
몽쉘이는 들은 체도 안하고 국물까지 싹 먹어치우고는 자기 길을 떠난다. 저 녀석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 전후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그들은 점심을 먹고 이곳에 들러 후식을 산다. 멋지게 양장을 차려입고 들어와서 싸구려 커피를 사간다.
한 차례 분주함이 지나가면 창고 한 구석에서 후다닥 도시락을 먹는다. 한가로운 가게를 지키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한 무리의 교복이 들어온다. 과자 하나를 고르면서 연신 깔깔거리는 여학생들을 가만히 쳐다본다. 갈색 치마 아래로 매끈하게 뻗은 다리, 작고 하얀 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문득 정신을 차린다. 교복들이 왔다는 건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시계를 본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모든 지폐와 동전을 센다. 찬찬히 두 번을 센다. 처음에 센 액수와 맞으면 두 번에서 끝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너 번을 반복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두 번으로 끝이 났다. 서랍에서 장부를 꺼내 액수를 적어놓는다. 저 앞 삼거리에서 할머니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에게 편의점을 넘기고 길을 나선다. 오늘따라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도 향긋하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로 한다. 10분을 못 채우고 정류장을 찾는다.
삑삑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거실 소파에 늙은 갈색 고양이 갈치가 개처럼 누워 자고 있다. 갈치는 값비싼 캣타워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언제나 소파에 누워 잔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갈치가 누운 채로 가늘게 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 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털썩 내려놓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갈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정하게 말을 건다. 오늘 하루 종일 내가 주고받은 대화라고는 얼마예요? 2천5백원요 5백원 여깄습니다 하는 것들 뿐이다. 갈치 앞에서 나는 입 터진 아기마냥 수다를 늘어놓는다.
오늘 하루 종일 뭐했어? 잠만 잤어? 집에 있느라 답답했어? 혹시 누가 몰래 들어와서 때리고 도망가진 않았어? 혼자 집에서 외로웠어? 친구 사귀고 싶어? 혹시 너 장가가고 싶니? 여자 소개시켜 줄까? 하루 종일 누나 안 보고 싶었어? 밥은 먹었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줌은 잘 쌌어? 시원했어? 길게 쌌어? 몇 초 쌌어? 똥은?
갈치는 야옹 하며 크게 한 번 울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착한 갈치는 똥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꾹 참고 내 질문을 들어준다. 갈치 말고 누구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는 없다. 사람도, 고양이도.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수직으로 곧게 뻗었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다. 도배 일을 하는 엄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섯시에 맞춰 집에 온다. 식어빠진 김치찌개를 가스레인지에 올려 데운다. 계란 프라이를 하고 냉장고에 있던 몇 가지 나물을 식탁에 올리고 있는데 삑삑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춥다. 바람이 차졌네.”
방 안에 있던 갈치가 나와 야옹거린다.
“요 앞 도서관에 사서를 구한다더라.”
소파에 가방을 던지며 엄마가 툭 내뱉는다. 나는 말없이 밥솥에서 밥을 푼다. 엄마는 어디서인지 모르게 이런 정보를 잘도 주워온다. 올 봄에는 집 앞 주민센터에서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도 했고, 작년 겨울엔 골목 끝에 있는 작은 양말공장에서 경리를 구한다고도 했다. 엄마는 도서관이나 주민센터나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길 원한다. 하지만 나는 편의점 근무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늘 한 귀로 흘려버린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1년 동안은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다. 셀 수 없이 떨어지고 나서 다음 3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머리라고는 있어본 적이 없던 내가 될 턱이 없었다. 공부한다고 책상에 눌러앉은 3년 동안 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햇볕을 보지 못해 얼굴도 칙칙해졌다.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하나같이 면접에서 낙방했다.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낙방을 통보하는 전화에도 무감각해졌고 그저 날마다 일기 쓰듯 이력서를 써댔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흐르면서 주위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이웃들은 나와 마주치면 멈춰서서 오랜 시간 쳐다봤다. 그들의 수군거림이 귓속에 화살처럼 박혔다. 그래서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나를 두고 히키코모리라고 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말로는 은둔형 외톨이라나? 우리말 놔두고 왜 요상한 외국말을 자꾸 쓰는지 모르겠다.
불어가는 살덩이의 무게만큼 나는 고독했고, 고독한 만큼 더 깊이 숨어들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알음알음 물어 편의점 할머니를 연결시켜 줬다. 엄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웃의 눈길을 피해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물색했다는 걸 안다. 그때부터 나는 집과 편의점을 오간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내가 편의점만 나가면 소원이 없을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도서관이며 주민센터며 공장을 들먹인다. 영어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루저라고 한다던데, 루저건 패배자건 어찌됐든 나는 지금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덜컹. 2415번 시내버스의 문이 열린다. 버스를 타고 편의점으로 간다. 15분 남짓 걸리는 버스 안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앞 건물 보험사 직원과 뒷 건물 핸드폰 대리점 직원이 함께 버스 안에 있다. 같은 정류소에서 내려 각자 자기의 일터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드르륵 철컹.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다섯 명이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온다. 삑삑삑삑삑. 컵라면 바코드를 다섯 번 찍는다. 손님들이 빠져 나간 뒤에야 청소를 한다.
오늘따라 라면 손님이 많다. 오전 내내 끊임없이 컵라면이 나간다. 귀퉁이 테이블 여기저기에 라면 찌꺼기와 국물이 범벅이다. 걸레를 빨아 테이블을 박박 닦는데, 구석에 하얀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많이 들어본 작가의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책을 집어 계산대 옆에 세워둔다. 곧 찾으러 오겠지.
오늘은 몽쉘이를 위해 갈치의 사료를 한 주먹 덜어왔다. 점심시간이 다돼가는데도 몽쉘이는 보이지 않는다. 아까부터 내 오줌보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딸깍. 열쇠로 문을 걸어잠그고 화장실로 간다.
쏴아 하는 소리가 끊어질 무렵 여학생들이 화장실로 몰려 들어오더니 바깥쪽 출입문을 철컥 걸어 잠그고는 담배를 피운다. 나는 바지를 올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변기 위에 앉아 있다.
“빨리 피우고 게임방 가자. 2시 전에는 들어가야 돼.”
학교를 땡땡이친 모양이다.
“그냥 오늘 하루 제낄까?”
“미친년. 6교시에 영어 수행평가 있잖아. 좆되고 싶냐?”
“그깟 거 한번 안한다고 인생 뭐 달라지냐?”
“암, 달라지지. 니 인생 삑삑이 된다.”
“삑삑이가 뭐야?”
“편의점 뚱땡이. 킥킥킥킥.”
아이들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서 화장실 바깥문을 빼꼼히 열어본다. 아이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고 나온다. 잠긴 편의점 유리문 앞에 몽쉘이가 앉아 있다.
“너는 왜 꼭 화장실 갈 때만 오니?”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비닐팩에 담아온 사료를 내어준다. 몽쉘이는 냄새를 한번 맡더니 혀를 살짝 대어보고는 나를 바라본다. 못마땅한 표정이다.
“그냥 먹어. 이게 니 밥이야. 이제 참치 안 줄거야.”
몽쉘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냉장고에서 참치 한 숟가락을 꺼내 사료와 섞어준다. 그제서야 몽쉘이는 고개를 숙인다.
오전엔 이상하게 손님이 몰리더니, 점심시간은 한가하다. 싸구려 커피를 마실 돈도 떨어졌나? 2시가 되어 창고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멸치 주먹밥이다. 주먹밥을 입에 넣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흐른다. 흘러내린 눈물이 손가락을 타고 주먹밥으로 스며든다. 꾸역꾸역 주먹밥을 다 먹고 다시 계산대로 간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꾸벅꾸벅 졸 준비를 마쳤는데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무료함을 이기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가게에는 컴퓨터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계산대 구석에 아까 세워둔 책이 보인다. 언제 찾으러 오려나? 책장을 후르륵 넘겨본다. 군데군데 그려진 판화톤 그림과 큼지막한 글씨가 호기심을 일으킨다. 몇 장을 읽어본다. 가족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 별 이상한 책을 다 보겠네. 책을 다시 구석에 세워두고 계산대에 엎드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왠지 마음이 울적해서 마트에 들러 돼지고기 한 근을 산다.
삑삑삑삑. 현관을 열면 라면과 과자와 음료가 가득 쌓인 5평짜리 공간이 나올 것만 같아서 몸이 움츠러든다. 소파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갈치가 보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평소보다 집안이 어둡다.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켜고 돼지고기를 식탁 위에 던진다. 갈치 앞에 앉아 오늘도 수다를 떤다.
띵띵아. 너는 만날 집에서 빈둥대며 살만 쪘으니까 띵띵이야. 갈치 띵띵이.
갈치가 누운 채 고개만 들어 얼굴을 턴다.
왜? 띵띵이라고 하니까 기분 나빠? 띵띵하니까 띵띵이라고 하지. 날씬하면 날씬이라고 해줄게.
오늘은 고기만 구우면 되니까 저녁 준비를 하지 않고 TV를 켠다. 30분쯤 지나자 엄마가 돌아온다.
“아이고. 초저녁부터 무슨 불을 켰니?”
엄마는 말을 시작할 때 항상 ‘아이고’를 붙이는 버릇이 있다. ‘아이고’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얼굴이 찌푸려진다. ‘아이고’ 한 마디에 엄마의 기구한 인생이 가득 묻어 있어서. 팍팍한 삶에 힘들어하는 엄마의 한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어서.
“요즘 전기세가 얼만데….”
‘아이고’ 뒤로 이어지는 엄마의 끔찍한 절약 정신이 달갑지가 않다. 엄마는 절약이 지나쳐 궁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는 TV를 끄고 주방으로 가 프라이팬을 꺼낸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면서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오랜만에 삼겹살 먹자.”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꺼진 TV의 전원 코드를 콘센트에서 뽑는다.
“냉동실에 고기 있는데 뭐하러 또 사왔니? 물어나 보고 사지.”
“그건 다음에 먹으면 되지.”
한가득 구운 고기를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접시에 덜어낸다. 깻잎과 고추, 배추김치와 쌈장, 무생채를 꺼내고 적당히 상을 차려 거실로 옮긴다. 엄마와 나는 고기를 구울 때만 거실에서 밥상을 펼친다. 소파에 누워 있던 갈치가 벌떡 일어나 뛰어내려온다. 노릇노릇한 고기 한 점을 갈치 입에 물려준다.
엄마가 부엌의 불을 끄고 온다. 나는 TV 전원 코드를 다시 콘센트에 꼽고 켠다.
“엄마, 집에 소주 없어?”
“소주는 갑자기 왜?”
“그냥…. 비 오잖아.”
“얘가 왜 늙은 홀애비처럼 소주 타령이야.”
엄마는 내게 면박을 주더니 베란다로 가서 참이슬 한 병을 가져온다. 나는 찬장에서 소주잔 두 개를 꺼내 술을 가득 채운다. 입 안이 찝찌름하고 목이 싸하다. 원래 첫 잔은 그렇다. 세 잔쯤은 되어야 소주가 달게 느껴진다. 그러니 두 잔까지는 찝찌름하고 싸한 느낌을 참아야 한다.
“이모가 아프대.” 두 번째 잔을 내려놓을 때 엄마가 말한다.
“평택 이모?”
“응. 무릎 수술을 해야 하나봐. 그래서 당분간 엄마가 가서 돌봐줘야 할 것 같아. 혼자 있을 수 있지?”
“얼마나?”
“아마 한 달이나 두 달쯤?”
옆에 앉은 갈치를 쓰다듬으며 나는 대답한다.
“그래.”
뒤늦게 한 마디 더 묻는다.
“도배는?”
“한두 달 안 나간다고 망하니? 김 씨한테 맡기면 된다.”
나는 체념하듯 대답한다.
“그래.”
덜컹. 2415번 시내버스의 열린 문을 올라타고 출근길에 나선다. 버스에 오르면 가장 먼저 앞 건물 보험사 직원을 찾게 된다. 맨 뒷자리에 앉은 그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바쁘게 손가락을 놀린다. 핸드폰이 좌우로 기우뚱하는 걸 봐서 게임을 하는 듯하다. 그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으로 몸이 나른해진다. 나는 비어있는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어제 오후부터 부슬거리기 시작한 비는 이제 세찬 줄기로 변해 버스 유리창을 요란하게 때려댄다. 비닐팩에 담긴 삼겹살이 보일까봐 가방을 가슴 깊숙이 끌어당긴다.
드르륵 철컹.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문을 연다. 눅눅한 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한다. 커피 티백이 우러나오는 동안 금전출납기의 잔고를 세고, 장부의 수치를 확인한다. 꼼꼼한 할머니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계산대 옆에 세워둔 책이 보인다. 밤까지도 안 찾아갔나보네. 나는 다시 책장을 들춰본다. 축축하고 어두운 가게의 음습한 기운에 겁을 먹은 나는 내키지 않지만 책을 읽어 내려간다. 벌레가 된 남자가 예전처럼 가족을 부양하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멸시당하다가 결국 버림받는다는 내용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든다. 창 밖의 빗소리가 벌레가 되어 나를 때리는 것 같다. 이따금씩 들어오는 손님들의 눈초리가 남자를 멸시하는 가족들 같다. 정말 찜찜하고 기분 나쁜 책이다. 책을 구석에 다시 세워둔다.
오늘은 몽쉘이를 마중하려고 평소보다 일찍 화장실에 다녀온다. 하루종일 손님이 뜸하다. 비가 이렇게 세찬 날은 대개 손님이 없는 편이다. 사람들은 담배나 우산 같은 꼭 필요한 것들만 사러 오지, 간식거리를 위해 굳이 비바람을 뚫고 편의점에 오진 않는다. 그런 이유로 무료한 하루를 보낸다. 카프카의 책 덕분에 오전은 그럭저럭 보냈지만 오후 시간은 도통 가질 않는다. 오늘따라 몽쉘이의 방문이 늦어진다. 비바람에 어디 사고라도 당한 게 아닌지 슬금슬금 걱정이 차오른다.
엄마가 없는 동안 나에게 닥칠 문제가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청소, 세탁, 식사, 쓰레기 처리, 기타 등등. 나 혼자 살림을 해나가니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리지 않아도 될지 갈등한다. 9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아 엄마에게 20만원을 드리고 나머지는 거의 저금을 한다. 목표가 있어서 저금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돈 쓸 데가 없으니 차곡차곡 쌓인다. 어차피 쓸 곳도 없는데 생활비는 평소처럼 드리기로 하고 유리창 너머 거리를 내다본다. 벌써 해가 길어지고 있다.
문득 출입문을 바라본다. 건너편 바닥에 시커먼 보따리 같은 게 놓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몽쉘이가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연다. 몽쉘이는 야옹 하고 울고는 그대로 앉아 있다. 나는 몽쉘이를 번쩍 들어올려 창고로 데려간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몽쉘이를 올려놓자 이 녀석 몸을 화르르 떤다. 털마다 빼곡하게 차 있던 물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는 냉장고에서 삼겹살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몽쉘이에게 준다. 정신없이 먹던 몽쉘이가 다시 야옹 하고 울더니 출입문 쪽으로 나간다. 나가는 뒷모습이 수상쩍다. 어딘가 균형을 잃은 모습이다. 왼쪽 앞다리를 절고 있다. 몽쉘아~ 몽쉘이는 잠깐 멈춰서 한 번 뒤돌아보더니 그대로 빗속으로 사라진다.
저녁 내내 엄마는 준비에 여념이 없다. 34살 노처녀 딸래미가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준비. 김치를 한 가득 담그고, 멸치볶음이며 깻잎무침 같은 밑반찬을 잔뜩 해서 냉장고를 채운다. 휴지는 여기 있고, 키친타올은 저기 있고, 간장은 여기에 소금은 저기에, 세탁물은 모아서 한 번에 돌리고, 쓰레기 봉투는 이쪽에 음식물 담는 위생팩은 저쪽에, 다음주부터 공과금 고지서가 날아올테니 순차적으로 납부하고, 처음엔 전기요금 그 다음 가스요금 그 다음 수도요금.
설명을 듣자니 머리가 아파온다. 나 혼자 해온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덜컥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여 엄마를 안심시킨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 마. 모르면 전화하지 뭐.”
엄마는 영 못미더운 눈치다.
“계란 프라이 해먹으면 되고, 김치찌개 데워 먹으면 되는데 뭐. 걱정 말래두.”
“아이고. 음식 하는 걸 진즉에 가르쳤어야 했는데….”
엄마는 탄식을 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 말한다.
“정 해먹을 게 없으면 시켜 먹거라.”
엄마가 떠난 집에서 나는 생애 최초의 살림을 시작한다. 계란 프라이와 함께 먹던 식어빠진 김치찌개가 바닥난 후 나는 맹물에 고추장과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계란을 몇 개 풀어 죽 같은 찌개를 끓여본다. 파를 섞은 달걀을 부쳐 달걀말이도 해보고, 배추김치에 물을 조금 섞어 소시지와 햄을 넣고 부대찌개를 끓인다. 사나흘에 한 번씩은 직접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생선 한 토막을 사다 구워본다. 프라이팬을 시커멓게 태우고 나서야 얼린 생선을 녹인 후 구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틀에 한 번씩 바닥을 물걸레로 청소하고, 사흘에 한 번씩 밀린 수건과 양말을 세탁한다. 싱크대의 닳아빠진 낡은 수세미가 거슬려 새것으로 장만한다.
공과금 고지서가 날아와 은행에 가서 수납을 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태어나서 처음 내보는 공과금에 기분이 이상하다. 집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살짝 들뜬다.
퇴근 무렵, 할머니가 테이블 위로 책을 던지듯 내민다.
“얘, 이거 아무래도 안 찾아가려나보다. 니가 가져가던지, 가다가 버리던지 하거라.”
나는 버스 안에서 이미 읽었던 그 책을 삼분의 일쯤 다시 읽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거르고 마저 읽는다. 그레고리는 왜 그토록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야 했을까? 가족들은 왜 변한 그레고리를 품어주지 못했을까? 내가 가족이라면? 어느 날 엄마가 벌레로 변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엄마를 벌어 먹여야 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엄마는 날 어떻게 대할까? 날 혐오하고 내다 버릴까? 그러면 안 되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집안의 책장을 뒤진다. 엄마가 즐겨보는 종교서적부터 각종 고전소설, 역사소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회계학이나 부동산 서적까지. 나는 신중하게 책 목록을 훑어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뽑는다.
다음날부터 일주일에 두 권씩 편의점에 책을 가져다 읽는다.
비 오던 저녁, 삼겹살을 얻어먹고 간 이후로 몽쉘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엄마가 떠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날씨가 꽤 쌀쌀해져서 이제 얇은 가을점퍼 하나만으로는 한기가 느껴진다. 점퍼를 두 개 겹쳐 입고 장을 보러 간다.
“새댁 왔어?”
과일가게 최 씨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한다. 새댁이라니. 웃음이 난다.
“어째 새댁은 점점 이뻐져?”
생선가게 박 씨 아저씨가 능글맞게 말을 건넨다. 인사치레란 걸 알면서도 웃음이 난다.
“아저씨. 싱싱한 고등어 한 손 주세요.”
“아침에 새로 들어온 거야. 고양이 주지 말고 새댁 혼자 먹어.”
“에이. 지난번엔 혼자 먹지 말고 남편 주라면서요.”
“남편 있었어? 고양이랑 둘이 산다며?”
“남편 없는 거 아시면서 여지껏 새댁이라 부른 거예요?”
박 씨 아저씨가 멋쩍은 듯 웃는다.
얼마 전 두 번째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첫 달에 비해 부쩍 늘었다. TV 전원 코드를 콘센트에서 뽑고 침대에 눕는다. 갈치가 고등어 냄새를 풍기며 훌쩍 뛰어올라 몸을 붙인다.
덜컹. 2415번 버스의 문이 열린다. 이제 사람들은 양복 위에 외투를 걸치고 있다. 언젠가부터 보험사에 다니는 젊은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두 정거장 늦게 타는 핸드폰 대리점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드르륵 철컹.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문을 연다. 날씨가 스산해지면서 셔터를 만질 때마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나는 시린 손을 비비고 청소를 시작한다. 계산대에 앉아 사라진 보험사 청년을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수시로 과자를 사러 내려오던 여직원 몇 명도 안 보인지 오래다. 뒷 건물의 핸드폰 가게는 공사중이다. 며칠 전부터 카페 오픈이라고 써진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요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아침에는 초겨울 이슬이 내리다가도 낮에는 따뜻한 볕이 내리쬐고, 다시 밤에는 쌀쌀한 공기가 엄습한다. 오후의 볕을 쬐러 잠시 편의점 밖으로 나간다. 옆 가게 치킨집이 오늘따라 일찍 영업을 준비한다. 3년만에 처음으로 치킨집 사장에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치킨집 사장이 잠깐 의아해하더니 넉살좋게 인사를 받는다.
“아따메~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것소.”
“오늘은 일찍 문 여시네요?”
“손님이 자꾸 떨어져서 큰일이요. 낮술이라도 팔아야 쓰것는디 이거야 원.”
나는 몽쉘이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새벽까지 장사하는 치킨집 사장은 몽쉘이의 행방을 알지도 모른다.
“혹시 아저씨. 까만 고양이 못 보셨어요?”
“그 시커멓고 노란 눈깔 괭이 새끼?”
“네. 이 동네 사는 길고양이 같던데 요즘 통 안보이네요.”
“그 도둑괭이 새끼.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전에 우리 집 닭 뼈다귀 뒤지고 있길래 냅다 걷어차 줬소. 아무튼 도둑괭이 새끼들은 몽둥이가 약이랑께. 또 찾아오거들랑 나한테 오쇼. 이번엔 다리 몽댕이를 아주 분질러 버릴랑께.”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 나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다. 비가 세차게 오던 저녁, 다리를 절던 몽쉘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몽쉘이가 가여워 왈칵 눈물이 치솟는다.
삑삑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갈치는 소파 위 한결같은 자세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갈치 앞에 앉아 오랜만에 수다를 떤다.
몽쉘이가 사라졌어. 어디로 갔을까? 많이 아팠을까? 사람들을 원망하겠지? 굶고 있지는 않을까? 설마 어디서 죽은 건 아니겠지?
식욕을 잃은 나는 어두운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청소를 시작한다. 거실이며 주방이며 욕실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고 내친 김에 유리창과 창틀과 베란다 바닥까지 말끔히 청소한다. 사흘 전에 돌린 세탁기는 아직 절반도 차 있지 않아 그냥 내버려둔다. 이제 세탁물은 모아서 일주일에 한 번만 돌린다.
집안일을 마치고 책장을 살핀다. 종교서적과 부동산, 회계학 같은 책들을 빼면 이제 어지간한 문학 장르의 책들은 거의 다 읽은 듯하다. 할 일을 잃은 나는 상실감에 빠진다. 소파에 앉아 허공을 바라본다. 벽에 걸린 거울 속으로 텅 빈 눈을 한 여자가 보인다.
물 속 같은 무거운 적막이 두려워진 나는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리저리 서핑을 해보지만 30분도 못가 싫증을 내고 전원 스위치를 내린다. 콘센트의 코드도 뽑는다. 갈치를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뒤척이던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설풋 잠이 든다. 꿈에서 다리를 절뚝이는 몽쉘이가 나타나 한없이 운다.
드르륵 철컹.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문을 연다.
드르륵 철컹.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채운다.
하루 종일 나는 몽쉘이를 찾아 헤맨다. 갈색 고양이, 하얀 고양이, 얼룩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요동친다. 얼마 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의 호시노 청년이 떠오른다. 고양이와 대화하는 호시노 청년이 현실에서 이리 필요하게 될 줄이야. 저 고양이들은 분명 몽쉘이의 행방을 알고 있을텐데….
모든 가게를 일일이 들러 까만 고양이의 행방을 물은 결과,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 단서를 잡는다. 편의점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설렁탕집 주위를 밤마다 배회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진다는 것이다. 설렁탕집 주인은 가게 앞을 너무 어지럽힌다며 고양이 좀 제발 잡아가라고 성화다. 나는 밤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얼른 편의점에 뛰어가 문을 열고 할머니를 기다린다.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지만 반응이 싸늘하다. 죄송합니다 넙죽 인사를 하고 밖으로 냅다 뛰어간다.
삑삑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간다. 소파에 누워 자던 갈치가 벌떡 일어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갈치의 파란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내 품에는 바싹 마른 몽쉘이가 안겨 있다.
몽쉘이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설렁탕집 앞앞앞에 있는 순대국집에서 떨어진 돼지 창자를 주워 먹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쇠 쓰레받이로 얻어 터지는 소란이 내 눈길을 끌었다. 눈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그 소란이 없었으면 몽쉘이는 찾지 못할 뻔했다.
날이 밝자 몽쉘이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편의점으로 간다. 할머니에게서는 찬바람이 쌩 하고 분다. 다시 한번 넙죽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빠져나온다. 치료를 마친 몽쉘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젯밤에는 털을 쭈뼛쭈뼛 세우던 갈치도 이제는 스스럼 없이 다가가 몸을 부비고 벌러덩 눕는다. 몽쉘이는 얼른 캣타워 위로 도망간다. 갈치도 뒤따라 올라간다. 갈치가 캣타워에 오르는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본다.
읽을 책도, 출근할 직장도 없어진 나는 도서관으로 간다.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 덕에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간다. 3층 대여실에서 마음에 드는 책 세 권을 골라 대여한다. 1층 출입구로 내려오는 길에 도서관사무국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나는 거침없이 다가가 문을 연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묻는다.
“사서 구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