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즐겁게 웃고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막간에 문득 이 생각이 불유쾌하게도 뇌를 스치는 것이다. 마치 불길한 망령처럼. 또 마지막 전철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 간신히 시간에 대어 플랫폼에서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어디에서인지 몰라도 이러한 망령이 나타나서 물어 온다.
"젊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는가. 이 나이가 된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것을 하면 어떨까, 이것을 하면, 이렇게 계속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나의 인생이다."라고. 그렇다. 단,
그 기대와 욕구가 어느 정도 실현이 되었는가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자신의 일에 대해서 그다지 정열을 불태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기껏해야 싫지 않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작할 때는 마지못해서 한다. 그리고 퇴근 시간만을 이제나저제나하고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 일에 전력 투구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이것을 읽은 도시의 근로자 여러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안색이 변해서 나를 비난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런던 시티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므로 나의 의견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하면서도 9시부터 6시까지의 근무 시간이 어디까지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루'라고 간주하고 근무시간 전의 9시간과 뒤의 6시간은 단순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만, 하루에 대한 이러한 자세는 물론 나머지 15시간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하며, 그 결과 쓸데없이 낭비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소중한 시간이라고는 여기지 않게 된다. 단순한 여분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불건전하다. 하루 중의 일부의 시간에 불과한 근무 시간과 끝내거나 해치워 버리는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한 가지일만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하루의 3분의 2의 시간을, 3분의 1을 차지하는 근무 시간에 단지 추가로 붙어 있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게다가 그 3분의 1의 시간에조차 전혀 정열적으로 일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충실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할 리가 없다.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행복이라든가,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 인생이 주는 의미, 나 자신은 얼마나 이성적으로 결단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혹은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생활 신조와 실제 행동의 관계 등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지 않는다.
행복을 찾고 있는가? 당신은 도대체 그것을 발견했는가?
지갑에는 신품 24시간이 채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진실하게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몇 가지 위험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해 두려고 한다.
박식한 체 하는 인간이 되지 마라.
(...)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너무 떠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세상에서는 그것과 관계없이 매일 막대한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은 진실로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슬퍼해야 할 사실을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 편이 좋다. 어차피 사람은 각자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원래 이룰 수 잇는 것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용을 명심하라
두번째 위험은 자신이 계획한 일에 노예처럼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계획에 억지로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계획했던 일은 존중해야 되지만 맹목적으로 우러러 받들어서는 안 된다.
(...) 자신이 계획했던 일에 적절한 무게를 둘 것, 즉 지나치게 존중하지도 말고, 소홀히 하지도 말고, 중용을 명심하며 사는 일.
계획에 끌려다니지 마라
세번째 위험은 지나치제 욕심을 부린 계획을 세운 나머지 다음에 할 일에만 신경쓰느라 차분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대한 위험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계획에 착수에서부터 좌절하는 일이다. 나는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시작하자마자 좌절해 버리면 새로이 싹트기 시작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의 싹도 제대로 된 어린 나무로 성장하기 전에 말라버리고 만다.
이 욕구의 싹에 너무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처음 한 바퀴째에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느슨한 페이스로 돌도록 하자.
출처 |
Hindi Zahra, Beautiful Tango
범우문고 149
willy ronis, Ronistai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