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생각
바람 사나운 거리
파랗고 긴 하늘 아래
너 참 많구나
나 참 많구나
우리 모두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있구나
김양수, 어쩌란 말이냐
바람아
이 야심한 밤에
꽃향기 내려놓고 가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최승자,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원태연, 누군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허나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다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류시화, 첫사랑의 강
그 여름 강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지
물 속에 잠긴 발이 신비롭다고 느꼈지
검은 돌들 틈에서 흰 발가락이 움직이며
은어처럼 헤엄치는 듯 했지
너에 대한 다른 것들은 잊어도
그것은 잊을 수 없지
이후에도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첫사랑의 강
물푸레나무 옆에서
너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많은 여름들이 지나고 나 혼자
그 강에 갔었지
그리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그 자리에 앉아 보았지
환영처럼 물 속에 너의 두 발이 나타났지
물에 비친 물푸레나무 검은 그림자 사이로
그 희고 작은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발을 만지려고
물 속에 손을 넣었지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알았지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한때 있던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고
떠나온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