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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당신이 남긴 그 허망한 비행운에 목을 매고 싶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753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이름이아파
추천 : 10
조회수 : 103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8/17 0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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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BGM : Mika Agematsu - 태어나는 시간 속에서
 
100.jpg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더라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
 
 
 
 
 
 
 
 
 
안도현, 가을 엽서
-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서덕준, 비행운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당신이 비행한다.

나는 당신이 남긴 그 허망한 비행운에
목을 매고 싶었다.
-
 
 
 
 
 
 
 
 
 
 
복효근, 안개꽃
-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
 
 
 
 
 
 
 
 
 

정호승, 산산조각
-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서덕준, 사랑하지 말 것을
-
하늘가 천장 위로
기어이 그리움으로 쏘아올린 달 하나 매달고
엉겅퀴처럼 강변에 주저앉아
달 그림자 비치는 물 위로
애꿎는 조약돌만 내던졌다.
 
사랑하지 말 것을.
-
 
 
 
 
 
 
 
 
 
 
원태연, 두려워
-
너를 예를 들어
남을 위로할때가 올까봐
나도 그런적이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하게 될까봐
-
 
 
 
 
 
 
 
 
 
 
박노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 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겨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
 
 
 
 
 
가슴에 와닿는 유려한 시 구절처럼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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