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그동안 딸이라고 생각하고 키워왔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아이를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여태것 곁에 두고 있었지만, 한계가 오고 말았다. 더는 미룰 수 없다. 그들은 최후의 경고를 나에게 전한 셈이다. 자신의 위치에 맡게 품위 있게 이야기했지만, 협박에 가까웠다. 그동안 많은 공적을 세운 덕분에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진작에 치워버렸겠지.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신과 함께하기로 맹세할 때 죽음은 더는 두려움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 그 어떤 두려움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많은 일을 해냈다. 그 행동이 옳은 행동인지 그른 행동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했었다. 이 마을은 위험한 요소가 많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돌연변이가 많다는 소문, 국가가 개입되었다는 소문 등 다양한 소문이 퍼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는 이곳에 가서 실상을 파헤치고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했다. 어설픈 자가 갔다면 일을 망칠 뿐이다. 능력도 있어야 했고, 용기도 있어야 했다. 나는 선택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통해서 이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마을이 형성되는 이유를 들었다. 그녀의 아이는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 모습은 그동안 내가 해온 행동에 잘못이 없었는지 되묻을 만했다. 그녀와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없었으니깐. 돌연변이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믿었으니깐.
지금도 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생각이 맞는 건진 모르겠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면 아이는 악마와 같이 행동해야 맞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도저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는 너무나도 착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에 향하는 감정은 사랑스러움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님의 그림자, 돌연변이의 자식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돌연변이라는 명목으로 벌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는 돌연변이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아이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함께 사는 나뿐이다. 만약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이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호감까지도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게 되겠지. 나는 아이를 벌해야 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수년 전부터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나의 행동은 분명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떻게 행동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평화롭고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깐.
하지만 이제 이 생활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도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죽음은 나를 두렵게 할 수 없다. 내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평화를 찾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 내 죽음은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이곳을 떠나도 내가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가 벌을 받아도. 아이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건 똑같을 것이다. 그 누가 오더라도 아이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그녀를 감싸주었다는 사실도.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이 곳을 떠나기 전에 다른 곳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평범하게 자라는 사람들도 혼자서 살아남기 힘든 이 땅에서 여자로서 아직 미성숙한 몸으로, 돌연변이라는 외로움에서 맞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능력. 같은 돌연변이끼리도 미움받는 능력. 식인, 좀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