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30206030106538
기사중에서
중국의 '문물보'에서 이번 고구려비의 양식을 '규형비(圭形碑)'라고 규정했다. '규형비'는 동한(東漢=후한)시대 시작됐으며 '규(圭)'는 다섯 가지 상서로움의 하나라는 설명을 단 후 『설문해자』(說文解字·고대 한자어 사전)를 인용해 "규(圭)는 서옥(瑞玉·상서로운 옥)이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각을 이룬다. 이 규를 가지고 제후에 봉한다"고 적어 놓았다. 고구려가 한나라의 제후국(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이 비석을 통해 우회적으로 주입하는 셈이다.[중앙일보 1월 17일자 2면, 31일자 23면]
이런 경향은 '문물보'의 결론에서 재확인된다. "새로 발견된 고구려비는 한자 예서체다. 이는 고구려가 한자 예서체를 정부 공식 서체로 사용해 정책과 외교관계 등을 발포했음을 알려준다"고 했다. 또 "비석의 형식은 동한 이래 상용했던 규형(圭形)으로, 고구려가 중원 문화와 연계됐음을 반영한다"고 확대 해석했다. 고구려에 대한 한나라의 문화적 지배를 은연중 부각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