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9월 11일의 칠레에서 일어난 실화를 재현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l Pleut Sur Santiago)>라는 영화가 있다.
당시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인민연합(Unidad Popular) 세력이 집권하고 있었다. 1970년 칠레에서는 사회주의를 내세운 세력이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기대와 관심 속에 집권한 아옌데 정부는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 장군의 보수반동 쿠데타로 무너지고 만다. 이 쿠데타의 작전명이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였다.
영화의 후반부. 쿠데타군에 의해 잡혀온 수많은 사람들이 체육관 안을 빙 둘러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은 모두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로 손을 머리 뒤쪽으로 올리고 있다. 적막조차 두려워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 상황.
어디선가 송아지만큼이나 큰 눈망울을 한 남자가 인민연합 찬가인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 벤세레모스)>를 부르기 시작한다. 군인들에 의해 끌려나온 그는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벤세레모스>를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빅토르 하라, 시대를 노래하다]
1932년 9월 23일 칠레 산티아고 인근의 변두리 마을 로꾸엔에서 아버지 마누엘과 어머니 아만다 사이에 태어난 빅토르 하라.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힘겹게 가계를 꾸려갔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마누엘은 집을 나가버리고, 하라의 어머니는 홀로 남아 자식들을 키웠다. 하라는 어머니를 통해 기타와 칠레 민요를 익혔다. 그러나 그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마저 1950년 3월 세상을 떠났다.
한 때 방황을 거듭하던 하라는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칠레대학 부속 연극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칠레 전통민요를 조사하고 채집하는 활동을 벌이면서 민족음악에 대한 자각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가운데 칠레 민요운동의 선구자인 비올레따 빠라를 만나면서 1958년 '꾼꾸멘'이라는 민요그룹의 일원이 된다.
꾼꾸멘은 전통 민요와 민속춤을 채집하여 그것을 연구, 연주하는 데 주력하는 그룹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빅토르 하라는 중남미의 문화운동이자 혁명운동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에 합류하게 된다.
누에바 깐시온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음악인인 '아따우알빠 유빤끼'가 1940년대부터 미제국주의의 천박한 상업음악에 대항해 민속음악을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이같은 흐름은 1959년 쿠바 혁명과 1970년 칠레의 선거 승리 분위기를 타고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퍼져나갔다.
미제국주의 문화적 침략에 맞서 민족적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지키고 되살리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는 정체성의 투쟁이었다. 제국주의 침략하에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은 가장 민족적인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지속적인 창작을 통해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빅토르 하라는 1969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누에바 깐시온 페스티벌'에서 자작곡 <한 노동자에게 바치는 기도(Plegara a un laborador)>로 대상을 차지한다.
'누에바 깐시온'의 거대한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긴 하라는 자연스럽게 문화운동을 넘어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의 노래 <선언(Manifesto)>의 가사를 보면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잘 알 수 있다.
<선언(Manifesto)>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난 노래 부르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어
마치 성수와 같아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비올레따의 말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노래 부르며 죽기로 한 사람의
참된 진실들
내 노래에는 덧없는 칭찬이나
국제적인 명성이 필요없어
내 노래는 한 마리 종달새의 노래
이 땅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지
여기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들이 시작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
1970년 대통령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한 빅토르 하라는 노래와 연극으로 파시스트와 보수반동 후보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으며 인민연합의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드디어 그가 노래를 통해 꿈꾸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칠레의 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칠레 민중들의 투쟁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반동군인 피노체트에 의해 산산이 무너지고 만다.
1973년 9월 11일,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다음과 같은 라디오 연설을 한 이후, 혁명동지 피델 카스트로에게 선물받은 반자동소총으로 보수반동 쿠데타군과 전투를 벌이다 사망한다.
"확실히 이번이 제가 여러분들께 연설하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공군이 마가야네스 라디오의 안테나들을 폭격했습니다…(중략)…이 상황에서 제게 남은 것은 오직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의 전환점에서 저는 제 목숨을 인민들에게 충성한 대가로 치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리가 수많은 칠레인들의 양심에 뿌렸던 씨앗들이 영원히 시들어버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우리를 지배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힘으로는 구속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인민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중략)…이 나라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신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반역자들이 지배하려고 하는 이 어둡고 쓰라린 순간을 이겨낼 것입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거리가 다시 열리고, 그 길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지나갈 것임을 기억해 두십시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는 적어도 이것이 중죄와 비겁함, 반역행위를 처벌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아옌데 대통령이 전투 중에 사망한 지 며칠 후,
빅토르 하라는 한 실내체육관의 지하실에서 손목이 부서진 상태로 기관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그는 쿠데타군의 고문과 협박 속에서도 용감하게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를 불렀다고 한다.
빅토르 하라의 부인이었던 조안 하라의 저서 <끝나지 않은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빅토르 하라의 말이 나온다.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의 창조자여야 한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예술가는 게릴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비록 그는 쿠데타군의 기관총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누에바 깐시온의 정신은 빅토르 하라의 노래와 삶에 담겨서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지금의 우리와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소통을 하고 있다.
현재 칠레는 피노체트 시절 고문으로 살해당한 혁명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회당원 미첼 바첼렛이 대통령을 하고 있다.(박근혜랑 닮은듯 너무다른 여성대통령)
이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고 혁명의 힘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출처 | 출처 : 오마이뉴스 임승수 기자(reltih)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13] 빅토르 하라 '벤세레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