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붉게 노을 진 마음에 머지 않아 밝은 별 하나 높게 뜰 것입니다
보나마나 당신이겠지요.
별 II, 서덕준
나는 미지수다 x이거나 y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잘 풀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답은 아니다 풀이과정이 맞다면 그땐 답을 의심해야 한다 세상의 답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미지수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푸는 중이다.
미지수, 이장근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합니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해당화, 한용운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나는 풀이 죽어 마음으로 너의 웃음을 불러들여 길을 밝히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구나.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늦은 밤에, 신달자
행여 들킬 세라 저만큼 떨어져서 가만가만 달님 따라가는 저 개밥바라기 별.
짝사랑 II, 강인호
아가 오늘이 성년의 날인가 뭐신가 하드라 그래서 사방이 장미꽃 받는 청년들 뿐이여
아가 35년이 지나도 가슴 속 열 여덟으로 잠든 내 아가야 미안타, 올해도 엄마는 국화꽃밖에 주지 못하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