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2일, 남극 테라노바 만에서는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준공식이 열렸다.
우리나라 두 번째 남극기지이자, 대륙에 지은 첫 번째 기지다. 이에 대한 기대감도 커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 관계자까지 참석했다. 장보고기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국, 뉴질랜드, 이탈리아 남극 기지 대표까지 참석해 준공식을 축하했다.
준공식 다음 날인 13일에는 미국 맥머도 기지로 이동해 기지와 바로 옆에 있는 뉴질랜드 스콧 기지를 시찰한 뒤, 미국 공군수송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국회의장단의 시찰은 버스로 이동키로 했었지만, 미국측에서 편안한 시찰을 위해 인원을 나눠 지프로 이동토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한글로 ‘환영합니다’라고 쓴 슬라이드를 준비하고, 보온병에는 한글로 ‘물’이라써 붙인 섬세함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기지 시찰 뒤 켈리 포크너 美맥머도 기지 대표가 마련한 조촐한 환영식에서 벌어졌다. 포크너 대표의 설명이 길어지고, 김예동 극지연구소장이 적절한 통역 타이밍을 찾지 못할 때, 국회의원이 앉아있는 앞줄에서 사단이 났다.
포크너 대표의 말이 길어지자 강 의장이 큰 소리로 “알아 듣지도 못하는 데 그만 일어나자”고 소리친 것이다. 김 소장과 포크너 대표는 당황했다. 김 소장은 그 때까지 내용을 간단하게 통역을 했고, 포크너 대표도 설명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소동은 끝났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외국에서 다른 나라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고 소리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미국 맥머도 기지는 하계 연구원은 1200명, 월동인원은 200명에 달하는 남극 최대 기지로, 켈리 포크너 대표는 남극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장보고과학기지가 완성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줬다. 지난해 아라온 호에서 헬기 사고가 났을 때도 긴급하게 뉴질랜드로 호송해야 하는 부상자 4명에게 각각 의료인원을 4명씩 투입해 남극 밖으로 이동할 수 있게 배려했던 사람이다.
남극의 심장부로 맥머도 기지는 남극 전역 어느 기지든 지원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당장 3월에 공사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인력들도 맥머도 기지 비행장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영식 중간에 대표의 말을 끊고 소리를 친 국회의장의 태도는 분명한 외교적 결례에 속하고, 앞으로 극지 연구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터라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는 장보고기지 홍보대사로 선발된 두 명의 장보고 주니어도 있었다. 과연 두 고등학생은 강 의장의 행동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강 의장은 전날 장보고기지 준공식 축사를 통해 “장보고과학기지는 지난 27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종기지와 함께 남극 연구 분야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한 차원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장의 축사대로 장보고기지는 훌륭하게 지어졌고, 남극에 기지를 둔 많은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강 의장의 생각없는 행동 때문에 맥머도 기지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연구에 정진해도 모자랄 연구원들이 바닥으로 떨어진 인상을 되돌리기 위해 오랫동안 고생해야 할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로 미국 대표가 한국어를 몰라 잘 못 알아 들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