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는 분명 심각한 문제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된 2016년에 저런 반사회적 극단주의자 집단이 오래 가리라곤 생각하기 어렵지요.
아마 일베와 마찬가지로 몇 년 기승을 부리다가 점차 존재감을 잃어갈 것입니다.
정확히 몇 년이 되는지는 뭐, 언론의 보도와 네티즌의 목소리에 달려있겠구요.
허나 이번 메갈리아 사태로 인해 드러난 소위 '운동권' 계열 진보진영의 관점은 충격적입니다.
저는 그동안 진보의 가치가 인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시스템적 효율이나 이윤의 창출, 경쟁에서의 승리를 중시하는 것이 새누리 진영이라면
조금 천천히 가도 좋다. 꼭 이기지 않아도 좋다. 다만 사람이 희생되지 않게 하자.
그 누구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보의 가치이며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상적인 사회로 가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진보 언론과 정당들은 메갈리아의 편에 섰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상처입히며 사회에 증오와 혐오를 퍼트리는,
그간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워왔던 '일베'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집단을 비호하고 나섰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타협 불가능한 대의를 져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몰려드는 실망감 속에서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습니다.
어쩌면 저들은 메갈리아를 더 많은 사람을 돕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위한다'는 뜻을 버리지 않는다면 실수는 언젠가 돌이킬 수 있다. 라고.
그리고 정의당의 발표와 JTBC의 보도, 그리고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한겨레의 1면을 봤을 때
저는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실감했습니다.
메갈리아의 입에 담기 힘든 악행과 그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외면.
오직 '여성주의 투쟁'의 방법론으로서 메갈리아의 적합성 여부만을 논하는 그들을 보고
이들은 애초에 사람 따윈 안중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보의 세계에 인간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선'과 '악', '강자'와 '약자'라는 거대한 의지 뿐.
저들에게 '개인'이란 그 거대한 의지의 단말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메갈리아의 온갖 반사회적, 비인간적 행위들은 '약자'가 휘두르는 정의의 철퇴가 되고
억울한 피해자의 외침과 하소연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강자'의 추한 몸부림으로 전락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남성기의 연합' 운운하는 진중권의 논평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경오프나 정의당이 어떤 '올바른' 행동을 하든 그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재벌을 견제하든, 노동권을 외치든, 최저임금을 논하든 그것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이 지지하는 거인의 승리와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변하면 그들은 언제든 사람을 투쟁의 제물로 삼아 유린하고 짓밟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단 일말의 죄책감도 가책도 없이, '악의 거인의 수족을 잘라냈다!'는 영광의 함성을 지르며.
사람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새누리 계열의 세계관이 혐오스럽다면
사람 그 자체를 도식에서 지워버리는 자칭 '진보'의 신화적 세계관은 제게 더할나위없는 공포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들을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는 극단주의자'로 칭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수단보다도 목적이, 관점이 더욱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