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럽게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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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OY님께서 질문하신 글을 보고, 또 평소에도 과학게시판에 슈뢰딩어의 고양이 관련 질문이 종종 올라오는 것 같아 여기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보려고 합니다. 좀 긴 글이 되고 정작 슈뢰딩어의 고양이 이야기는 맨 뒤에 나오지만 관심 있으신 분은 장황한 졸문이나마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1.어떤 물체가 어떤 시각에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운동방정식이라는 식에 의해 표현됩니다. 일반적으로 운동방정식은 미분방정식인데, 특정한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시각에 따른 위치와 속도 등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운동방정식은 고전역학을 기술하는 뉴턴방정식입니다. 뉴턴의 제2법칙, 즉 다시 말해 F=ma가 바로 이건데요, 시간과 위치에 따라 어떻게 힘을 받는지를 알면 가속도를 구할 수 있는 식입니다. 모든 시각에서의 가속도를 알고 있으면 이제 위에서 말한 초기조건, 즉 특정 시각에서의 위치와 속도만 알면 모든 시각에서 이 물체가 어디에 있고 어떤 속도를 가지는지를 구할 수 있지요(가속도는 위치의 이계도함수, 속도는 위치의 도함수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전자나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로 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뉴턴 역학이 적용되지 않는 거지요. 뉴턴 역학에 따르면 모든 입자의 모든 시간에서의 위치와 속도를 완벽하게 아는 것이 가능합니다만, 미시세계에서는 본질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나타납니다. 위치와 속도(운동량) 모두를 무한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원리지요. 즉 미시세계의 입자들은 뉴턴방정식을 적용할 수 없는 겁니다. 대신 이 미시세계에서의 입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것이 바로 슈뢰딩어 방정식입니다. 이것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미분방정식임은 물론입니다.
3. 많은 사람들의 혼란을 유발하는 것은 이 슈뢰딩어 방정식의 대상, 즉 슈뢰딩어 방정식의 해의 형태입니다. 기존의 뉴턴 방정식은 시간에 대한 함수로, 어떤 시각을 주면 그 시각에서의 위치와 속도가 하나의 값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슈뢰딩어 방정식에 초기값, 경계값을 넣어서 풀면 나오는 해는 보통 Ψ(Psi)로 나타내는 '파동함수'입니다. 이 파동함수는 위치와 시간에 대한 함수로,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의 각 점에 어떠한 값을 대응시키는 함수인데, 이 값은 실수가 아닌 복소수 값입니다. 따라서 이 파동함수에는 시각을 입력해도 여전히 공간상의 위치에 따라 값이 변하는 복소함수가 나오는 셈이지요.
4.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운동방정식으로 얻는 건 분명 뉴턴 방정식에서처럼 위치와 속도 등에 대한 정보여야 할 텐데, 저 '파동함수'가 어떻게 이것들과 연결되는 걸까요? 이 연결고리 역할을 해 주는 것이 확률밀도함수입니다. 확률밀도함수는 어떤 지점에 입자가 있을 확률을 나타내 주는 함수인데,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모든 구간에서 항상 양수
2)모든 구간의 확률밀도함수를 적분하면(더하면) 1이 됨
3)어떠한 구간에서 확률밀도함수를 적분한 값은 그 구간 안에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됨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셋 다 당연한 조건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슈뢰딩어 방정식의 해인 Ψ의 절대값의 제곱인 |Ψ|²가 바로 이 확률밀도함수가 됩니다(절대값의 제곱이라고 하는 이유는 복소함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파동함수가 입자의 위치와 관련되는 거지요.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동함수와 확률밀도함수를 통한 기술은 뉴턴방정식을 통해 위치를 구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직접 시간에 따른 위치가 바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어떤 위치에 존재할 '확률'만을 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양자역학이 본질적으로 통계적이라는 점은, 뉴턴 역학과는 달리 굉장히 비직관적이며, 이에 의해 많은 의문과 오해를 낳게 되었습니다.
6. 위에서 말한 확률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봐야겠군요. 입자가 어떤 지점에 존재할 확률이라고 했는데,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측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슈뢰딩어 방정식은 조건에 따라 확률을 계산하여 예측하게 해 주지만, 이와는 별개로 실제로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면 측정할 때마다 그 입자의 위치는 어느 하나의 값으로 얻어집니다. 그렇다면 확률은 무엇의 확률일까요? 이를 위해 만든 개념이 바로 앙상블(ensemble)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파동함수를 가지는 입자가 아주 많이 있고, 아주 많은 측정기가 동시에 이 입자의 위치들을 측정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때 입자의 위치는 모두 제각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뉴턴 역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 제각각으로 측정된 입자의 위치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확률밀도함수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7.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만일 같은 상태에 놓인 여러 입자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금 위치를 측정한 입자를 아주 짧은 시간 후에 다시 측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원래의 확률밀도함수에 의해 다시 다른 위치에 나타날까요? 아니면 방금 거기에 그대로 있을까요? 답은 후자입니다. 고전역학(뉴턴역학)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앙자역학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이 부분이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8. 우리가 양자역학의 대상인 미시세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슈뢰딩어 방정식과 그 해인 파동함수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뉴턴방정식과 비교해 볼 때, 파동함수는 정해진 위치가 아니라 위치의 확률밖에 주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비쳐지게 됩니다. 게다가 입자의 운동이 고전역학과는 달리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면서 방금 위치를 측정한 입자를 바로 직후에 다시 위치를 측정하면 확률밀도함수를 다르는 것이 아니라 고전역학처럼 방금 그 위치로 측정됩니다. 이러한 점은 양자역학의 태동기인 당대의 과학자들도 혼란에 빠트렸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서로 다른 가설을 시도합니다.
1)입자는 고전역학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점에는 특정한 점에 존재한다. 슈뢰딩어 방정식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라 정해진 위치를 직접 알지 못하고 확률만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일 뿐이며, 우리가 더 연구하면 알 수 있을 수도 있고 원래 알 수 없을 수도 있는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가 더 있어서 그것까지 고려하면 여기에 따라 결정되는 '진짜 위치'가 존재할 것이며, 측정 직후의 재측정이 같은 결과를 낳는 것은 입자가 그 점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일이다(결정론적 해설, 숨겨진 변수 가설).
2)공간에 퍼져 있는 파동함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불완전한 것도 아니고 추가로 얻어야 할 정보 같은 것도 없다. 즉 확률분포 그 자체가 입자이다. 측정한다는 것은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값을 읽는 것이 아니라 측정이라는 행위 자체가 확률분포와 간섭해서 결과값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 때 입자의 확률분포가 원래 형태로부터 그 측정된 값 한 점에 몰린 형태로 바뀌게 된다. 측정 직후의 재측정이 같은 결과를 낳는 이유는 따라서 확률분포 자체가 그 값에 몰린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통계적 해석, 코펜하겐 해석).
3)'진짜 위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이미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은 자연의 관측을 기반으로 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관측할 수 없는 것'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과학과는 무관한 것이며 과학을 통해 알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세 입장은 각자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며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한 것이 Bell의 사고실험인데, 이를 통해 1번은 거의 부정되었으며 2번 입장인 코펜하겐 해석이 양자역학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 깊이 들어가는 내용이라 다루지 않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신 분은 Bell의 부등식과 코펜하겐 해석, EPR 패러독스에 대해 찾아서 읽어 보셔도 괜찮겠습니다.
9. 이게 이야기의 끝..입니다만 정작 슈뢰딩어의 고양이 이야기를 아직 안 했군요. 이 이야기는 아까의 세 입장이 서로 경쟁할 때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1번 입장(숨겨진 변수 가설)을 지지하던 유명한 사람 중 아인슈타인과 슈뢰딩어가 있습니다(사실 코펜하겐 해석은 너무 비직관적이기도 하고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반발을 많이 샀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위의 결정론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한 말이 바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이지요(사족이지만, 아인슈타인이 나이 들어 노망이 나서 양자역학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슈뢰딩어 방정식을 부정할 이유는 전혀 없지요. 아인슈타인이 부정한 건 어디까지나 위의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그리고 슈뢰딩어가 코펜하겐 해석을 반대하는 논거로 제시한 것이 유명한 '슈뢰딩어의 고양이' 문제입니다.
10. 슈뢰딩어의 고양이 문제의 뜻은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해서 확률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확률밀도함수 자체가 그 입자의 본질이며, 그 입자의 위치 같은 값들은 원래 존재하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건데, 그러면 그걸 그대로 거시세계로 끌고 와 보면 어떨까?'입니다. 거시세계가 미시세계의 극한값이기도 하고, 측정 자체가 입자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건 거시세계나 미시세계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미시적인 확률(동위원소 붕괴)에 의해 독약이 나오는지 여부가 결정되도록 설계한 우리에 고양이를 넣고 닫은 다음, 동위원소가 붕괴했을지 아닐지는 확률에 의해 결정되므로 고양이의 생존 여부도 마찬가지의 확률에 의해 결정되는데, 양쪽 모두의 가능성이 있는 확률 자체가 본질이라면 거시적으로도 현재 상태는 고양이가 살아 있을 가능성과 죽어 있을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하게 말이 안 되므로 코펜하겐 해석은 틀렸다는 것이 슈뢰딩어의 요지입니다. 요약하면 슈뢰딩어는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산 상태와 죽은 상태의 중첩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너희 말대로면 이렇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냐?'라고 한 것이지요.
11. 코펜하겐 해석의 지지자들은 이에 대해 '측정이라는 건 사람의 눈이 닿고 안 닿고의 문제가 아니며, 미시세계가 거시세계에 간섭하는 것 자체가 측정에 속하므로 상자는 닫혀 있더라도 독이 나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된 것 자체가 측정이 이루어진 결과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미시세계가 거시세계에 간섭'한다는 말이 애매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양자 얽힘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간단히는 열역학에서 종종 나오는 '통계적으로 비가역적인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12. 뭐 하지만 그런 건 사실 별 상관 없고 슈뢰딩어의 고양이는 알듯말듯한 경계에 위치한다는 점, 친숙한 고양이가 나온다는 점, 왠지 있어 보인다는 점, 이런저런 픽션에 대충 곡해해서 써먹기 좋다는 점 때문에 유명해진 측면이 크지요. 그래도 사람들이 이런 친숙한 예를 통해 좀 더 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황하고 중언부언인 장문의 글을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제 설명이 미흡해서 충분히 설명이 안 되었거나 더 알고 싶으신 점, 엉터리 설명에 대한 지적이 있으면 댓글 남겨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