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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버린 전직 모태 신앙인입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74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왕동하루키
추천 : 5
조회수 : 112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7/09 13: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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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카테고리를 찾다 종교 게시판보다는 좋은 글 게시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좋은 글 게시판에 몇 자 적습니다.
축하받고 싶어서요. 십 수년 간 알게 모르게 나를 옥죄던 소설 책에서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신보다 내 눈에 가까이 있는 삶과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현재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작년, 그러니까 2014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였어요.
아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왔고 제 영혼은 이 쓰나미 가운데서 속절 없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일을 하면 나아질까, 연애를 하면 나아질까, 하여 나 자신을 버리고 매달리기도 하여 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저는 버릇처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해 가며.. 헌금통에 헌금을 꼬박꼬박 넣으며 때론 눈물도 훔쳐가며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나 제 어떤 것도 깊은 슬픔에 잠긴 저를 끌어내지 못 했습니다. 신이라는 존재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제 자신이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더 나아가 늘 그래왔음을 깨달았어요. 동시에 제 안에 깊숙이 내재한 치명적인 열등감과 죄의식을 느꼈죠. 신이라는 이름의 악마는 제게 끊임없이 완벽해지고 나아지고, 괜찮아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몸집을 불리는 교회, 완벽한 옷에 완벽한 얼굴의 교인들.. 전도자 수를 세어보는 그들의 찢어질 듯 환하게 빛나는 미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간 곳에서 역설적으로 저는 작아졌어요.
 
그들은 삶에 대해 뒤틀린 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멋진 옷과 멋진 친구와 자신이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죽기를 바랐죠. 왜냐하면 현재 그들의 위치가 곧 천국에서 그들의 위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특히나 교회 목사님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그들의 생각에 점점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와일드>라는 영화를 만났어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이 택한 길은 교회나 다른 성공이나 노력의 길이 아니라, 단순한 고행이었어요.
그녀는 고통스러운 삶에 마주해 뒤로 돌아가는 대신, 발에 피를 내고 고통에 소리를 지르면서도 삶을 마주하는 것을 그치지 못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저는 신이라는 거대한 커튼을 제 인생에서 걷어내기로 했죠.
걷어내자 실루엣으로만 그쳤던 아름다운 세상이 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꼈어요.
 
한 번 뿐인 삶의 모든 순간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워졌고, 타인이 가진 눈부신 매력은 그만큼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선행이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도 그치지 않았어요.
지금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삶을 준비중이지만 이전처럼 절망적인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멀리 던져놓았던 인생이 제 앞에서 손짓하고 있어요.
 
저는 다음 달에 제주도로 갑니다. 몇 개월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몰라요.
다만 확실한 것은 저는 확실하게 제 인생을 순간 순간들과 모험 앞에 내던질 생각입니다.
내 이후의 삶이 없다는 자명한 사실에 때론 두려워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깰 때도 있어요. 두렵기도 해요. 사실은.
 
허나, 나를 위해 마련된 사후의 세계가 없다는 사실은 저를 깊은 부담의 구렁텅이에서 꺼냈습니다.
마치 24시간 돌아가는 CCTV에서 해방된 것처럼 하늘 위로 솟구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깊은 해방감을 저는 느꼈어요.
행복합니다. 확신해요. 앞으로도 행복할 것임을.
 
신을 떠올리지 않고 바라보는 태양은 그만큼 제게 더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시작합니다.
찬란하기 그지 없는 하루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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