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어. 오늘도 그녀에 관한 꿈이었어. 요 며칠 동안 연속해서 그녀에 관한 꿈을 꾸고 있어. 그녀가 많이 신경 쓰이나 봐. 이제는 내가 그럴 필요 없는데.
꿈속에서 그녀는 괴한들에게 포위당했어. 모두 복면을 쓰고 있었고, 한 명만 복면을 쓰지 않고 있었어.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이해되지 않았어. 그녀의 능력이라면 적당히 번거로운 상황을 만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을 테니깐. 하지만 관찰자로만 존재할 수 있는 나는 상황이 진행되는 걸 지켜봤어. 꿈속에서 나는 개입할 수 없거든.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어. 내 능력에 아쉬운 부분 중 하나야. 꿈이 불안정할 때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볼 수만 있지. 이 상황을 설명해줄 만한 단서가 있는지 자세히 관찰했어.
그때였어. 무언가가 내 옆을 지나갔지. 그게 뭔지 확인해보니 나였어. 꿈속의 나. 나도 관련된 미래였던 거야.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이 골목이 우리 집 근처이긴 하지만 이 시간에 내가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어. 이 꿈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꿈속의 나는 그녀에게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어.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능력을 사용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어. 잘 벗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괴한들 눈에도 보이지 않겠지.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괴한들은 척 보기에도 나에게 화살을 돌렸어.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도 못 한 일이 벌어진 거야. 꿈이 끝났어. 내 안전을 무엇보다 최선으로 여기던 능력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때 끝났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당황스러웠지만 그거 말고도 더 의문인 부분이 남았어. 지금까지 나를 노린 경우는 많았지만, 그녀를 노린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녀에 관한 것은 항상 비밀로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그녀를 노린 걸까. 그들은 그녀가 돌연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재수가 없었던 걸까? 복면을 쓰지 않은 인원도 있었어. 단순한 강도질이라면 대화가 필요했을까? 그녀는 왜 도망치지 않았지? 의문이 많이 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비밀을 나 외에 누군가가 알게 된 후에 생긴 일이라는 점이야.
그녀는 일하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일하러 가기 전에 주의를 해주는 게 먼저겠지.
“오늘도 네 꿈을 꿨어.”
어제 이야기를 중간에 끝내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어. 그녀도 눈치채고 일부로 밝게 물어봤어.
“무슨 일인데? 이번에도 좋은 꿈이야?”
“아니. 이번에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
“또 모르지. 어떤 꿈인데?”
“괴한들에게 둘러싸이는 꿈이야.”
“괴한? 내가?”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 나 역시 그러한데 그녀라면 더욱 그렇겠지. 나는 최대한 상세하게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어.
“이해가 안 되네.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깐 조심할게. 너도 괜히 이 일에 끼어들지 마. 네가 그러면 내가 맘 놓고 도망갈 수가 없으니깐. 혹시 모르지. 네가 근처에 있는 걸 알고 있어서 못 도망가고 있었던 걸지도.”
“나도 그 꿈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생각은 없어. 그리고 너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도망치고도 남겠지. 진짜 의문인 건 따로 있어. 왜 너를 노렸냐는 거야. 만약 나를 노리려고 했더라도 나와 네가 함께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왜 너를 노린 거지?”
“단순한 강도들 아닐까? 오늘은 일찍 일찍 들어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
“정말 단순 강도질이라고 생각해?”
“어제 했던 얘기의 연장선이라면 그만해줬으면 좋겠어. 일하러 가기 전부터 기운 빼고 싶지 않아.”
“너 진짜!”
“미안한데. 진짜 가야겠다. 더 지체하면 늦을 거 같아. 그리고 정말로 나서지 말고 집에 꼭꼭 숨어있어. 조심할 테니깐.”
화가 났다.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지만 제대로 풀어낸 것도 없이 끝나버렸어. 더군다나 일하러 가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 더이상 얘기하기 싫어서 피했거나 그 녀석 만나러 갔거나.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신경을 많이 썼더니 피곤함이 느껴졌어. 기분도 좋지 않아서 그동안 밀린 일을 마무리할 겸 의뢰인이 보냈던 메일을 확인하려고 로그인했지. 의뢰인에게 새 메일이 와있었어. 의뢰를 받은 직후 연속으로 그녀와 관련된 꿈을 꾸느냐고 며칠 밀린 상태였어. 그동안 일 처리가 빠르기로 유명했으니 답변이 없는 나에게 화를 낼 만도 하지.
의뢰 내용은 별로 대단할 건 없었어. 그냥 어떤 사진 속에 있는 한 여학생의 미래가 궁금한 거였어. 아마도 부모님가 걱정되는 두리뭉실한 마음으로 뭔가 해보고 싶은 거였겠지. 최대한 빨리 처리해준다고 간단하게 답장을 하려고 메일을 확인했어. 그런데 메일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 좀 달랐어.
[얼마 전에 의뢰했던 사람입니다. 빠르게 답변을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제 경우에는 소문과 좀 다른 것 같아서 연락 드립니다. 급하게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두리뭉실해서 곤란함을 겪고 계신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좀 더 의뢰를 좀 더 명확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면 혹시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 건 아닌지 싶네요. 제가 하는 일이 일인지라 관심을 두게 되네요.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인데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다면 가볍게 털어놓으시는 것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오지랖 넓은 사람이 있나 싶었겠지.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생각보다 울적한 기분이 먼저였어. 그래서 좀 감정적으로 움직였던 거 같아.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지. 내 비밀보장이 최우선이니깐. 내 정체가 드러날 만한 사적인 이야기는 하면 안 되니깐. 하지만 그때는 정보를 최대한 숨기면서 답장을 보냈어.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인 것 같다는 의심이 드네요. 이야기하면 할수록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의뢰인이 보내준 메일 속 사진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잠에 빠졌어. 꿈속에서 사진 속의 그녀가 보였어.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남자가 보였어. 둘이 하는 대화는 대단해 보이는 것이 없는 사소한 일상얘기였어. 서로 굉장히 신뢰가 두텁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어. 의뢰만큼이나 두리뭉실한 꿈이었어. 그래도 오랜만에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꿈을 볼 수 있었어.
일어나서 꿈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메일을 확인했어. 의뢰인에게 답장이 와있었어. 궁금한 마음에 의뢰 결과를 알려주는 것보다 먼저 답장을 확인했어.
[아무것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바보처럼 구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영리하게 움직이기보다는 바보 같더라도 지켜봐 주세요. 지켜보다 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확신이 설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 행동하기 위한 용기를 모아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켜보라고? 그녀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지켜보라니 답답할 노릇이야. 의뢰인은 의뢰 내용만큼이나 두리뭉실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고맙다는 말과 함께 꿈속에서 본 내용을 메일로 보내줬지.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의뢰를 받기 위해 새로운 의뢰를 모집했어. 주로 한 번에 하나씩의 의뢰만 받거든.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으므로 새로운 일거리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 하지만 오늘따라 의뢰를 맡기는 사람이 없었어.
할 일도 없어지자 그녀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졌어. 그녀는 별 탈 없는 걸까? 시간은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 되었어. 애초에 그녀랑 내가 함께 있으면 꿈이 틀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녀가 퇴근할 때 함께 집에 오면 되잖아! 당장 나갈 준비를 마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