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이건 이상하다. 인과관계라곤 어느하나 없는 상황이다. 역겨워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본다.
하지만..하지만..
나는 어제 공방일로 지쳐서 집에 오자마자 이불속에 들어가 잠들어버린거 이게 다다.
이게,,다. ..?
이게 다?
아니다, 왜, 나는 잠옷을 입고 있지? 이해가 안된다.
나는 분명히 점토로 엉망이 된 작업복 차림으로 그대로 쓰러지듯이 잠들었는데 지금의 나는 역겨운 붉은 빚깔의 잠옷차림이다.
더욱더 혼란스러워 진다.
기억의 연결점도 없고 더군다나. 이 잠옷은 "내 잠옷도 아니다"
대체, 누가.. 누가?
이것도 웃기네.
어느 누가 나같은 녀석에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친다는건가?
역한 피냄새가 스멀스멀 내몸을 타고올라 내 콧속을 비집고 들어간다. 들어간다.
더욱더 혼란스러워 지지만 이내 내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들키면 안된다" 하지만.. 들켜?
대체 무엇을?
웃기지도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 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불쾌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이 괴상하고 오해를 살만한 환경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 들키게 되면,
만일 누군가에게 이상황을 보이게 된다면.
나자신이 변명하듯이 도망친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남의 비위를 맞추면서 꼭두각시의 정신나간 춤사위 마냥
이리저리 놀아나는 삶이 다시 시작 될것 같은 기분
삶의 주도권을 앗기는 기분.
싫었다.
그를 위해서는 최대한 태연하게. 평소와 같이 행동해야만 한다. 아무도 모르고 못보면 그만이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피범벅이 된 방바닥을 닦아내고 온몸을 피가 맺히도록 닦아내며 씻었다
. 그리고 피뭍은 침구와 잠옷을 마대자루에 쑤셔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대자루를 숨겨야 했다.
물론 안성맞춤인 곳이 한 곳 있다. 돌아가야 하기는 하지만, 공방에서 멀지 않은곳, 읍으로 향하는 길목에 옆의 황무지
그곳에는 쓰지않고 허물어 지기 직전의 배수로가 있다.
그곳에 숨겨뒀다가. 일과를 마치고 밤중에 태워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길을 돌아간 나는 그것을 배수로 안에 쑤셔넣었다. 제법 묵직하지만 꽤나 깊게 들어간다.
"다행이다.."
이 말과 함께 주변을 폐자제, 수풀등으로 막고 옷에 먼지를 털어냈다.
애써 태연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이 평온한 일상에 트러블이 일어나는건 사양이다.
비틀비틀 발걸음을 재촉하며 공방으로 향한다.
그 시간 찬란한 8시의 태연함. 마치 딱딱한 업무에 임하듯이.
3.광혈
그 안은 어둡고 검은 붉은것이 낼름거리며 자기자신을 태우며 다른것을 잉태하고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타오르는지 모른다. 검게 타오르는 그속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이 절제된 고고함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 첫 울음소리는.. 마치 무저갱 속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단말마 같더라..
"허노인"
마치 타오르는 들불같은 영감
내가 일하고 있는 공방의 주인이다.
들불, 그말과 같이 엄청나게 다혈질인 성격탓에 불리는 별명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불같은 성격과 그 거친 언행 으로 인해 불리우는 별명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들불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따로있다. 자신의 일에 모든걸 바친인간 이라는 점이다.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허노인은 좋은 흙을 구하겠다고, 물에 뛰어든다던가.
전국의 산을 해집고 다닌다던가. 불의 온도를 맞추겠다며 이것저것 불태우다 화상을 입는다던가
식음을 전폐하고 일에 몰두하다. 실신한다던가.
사고로 인해 불타오르는 겁화에 처자식과 부인을 잃는다던가..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그의 고집과 열정은 어느센가 그를 명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옆에서 바라보건데 자기자신의 몸을 불사지른것과 같이 일에 몰두하는 그는
장인이자 달인이요. 광인이자 성인과 같은 모습이다.
더군다나 어릴적 나의 은인이기도 한.
그 이름 허노인.
이 시간에 그는 언제나 도자기를 빚을 흙더미가 쌓여있는 뒷마당에서 흙을 고르고 있다.
마음을 추스리고, 공방을 한바퀴 빙둘러 마당을 통해 몰래 들어가려던 찰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겨?
아뿔사, 허노인이다.
쌍노무시끼야, 지금 시간이 몆시인데 어딜 겨들어와?!
등짝에는 점토가 가득들어있는 통을 짊어진 진흙투성이 노인의 독설이 이어진다.
개,새,말,소,등등 그의 육두문자는 십이간지가 다 나오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일까?
그의 폭언 속에서 평소와 달리 가시 돋힌 느낌이 없다.
되려 입이 걸은 주정뱅이의 기분 좋은 욕지거리 같은 느낌.
이상하다.
이 노인이 이렇게 기분이 좋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이렇게 깐깐한 노인네가 기분이 좋은 일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이네 그를 기분좋게 만든 것의 정체를 알았다.
바로 그의 몸에 묻은
진흙.
그점토는 일반적인 이 지역의 점토의 색깔과 달랐다.
이 지역의 흙은 대체로 철이 많이 포함되있어 검붉은 색이 나오기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평소 점토를 만지고 나면 피부나 옷들이 붉으스름한 물이 들기 일수이다
.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 흙은
"하얗다"
정말 찰흙에 지점토를 섞어 놓은 듯한 오묘한 색을 띤흙.
분명 평소와 다른 흙이 그 까다로운 노인의 성미를 충족시켰다는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궁금해졌다.
나는 이 고장에 살며 저런 흙을 본적이 없었다.
계속되는 노인의 욕지거리를 가로막으며 물어보았다.
"그 흙은 뭐죠? 처음보는 흙이네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힌 허노인의 얼굴에 이네 당황스러운 빛이 비추더니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이 흙?
와, 봐라, 봐..
니가 개념은 없어도 흙은 볼줄 아나벼? 이렇게 좋은 흙을 십수년간 못찾은 내가 빙신이지.
뒷산에 뒤지다가. 찾았다. 이렇게 때깔좋은 흙은 내 구경도 못해봤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허노인의 자랑은 수십분째 이어진다.
그래도 그, "정체 모를 흙" 덕분에 허노인의 역정을 피할수 있기에 기분 좋게 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