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할머니
민호는 방학을 맞아 섬마을에 홀로 지내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가기로 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섬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민호. 지금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내고 있지만, 당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부친에 의해 할머니께 잠시 맡겨지게 된 것이었다.
외동에다 또래 친구가 없던 탓에 늘 쓸쓸했던 민호는 할머니를 유독 잘 따랐었다. 학교 때문에 섬마을을 떠난 이 후로 통화만 몇번 주고받았을 뿐 좀처럼 할머니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느덧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민호는 타지로 대학을 가게되면 여러모로 시간 내기가 힘들 것 같아 모친을 설득해 어렵사리 승락을 받게 되었다. 여유 시간이 주어졌고, 그간 수능으로 찌들었던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버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릴적 뛰어놀던 섬마을과 할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운 민호였다.
전화를 통해 이번에 뵈러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드렸을때 할머니는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지만 몇일전 내린 폭설로 인해 차가 많이 밀렸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마지막 배를 타게 된 민호는 비로소 그리운 섬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외딴섬이라 그런지 섬을 향하는 사람은 민호와 검은 코트를 입은 정체모를 한 여자가 전부였다.
'누구일까?' 세련된 모습을 보아하니 섬마을 주민은 아닌 듯 했다. 굽이 높은 여자의 하이힐은 정말이지 도착지와는 매치가 되지 않아보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무표정하게 문득 민호를 바라보는 여자.
민호는 자신의 무례함을 깨닫고 얼른 여자의 시선을 피하고 만다. '누구 만나러 왔나보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민호는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 민호를 바라보며 지긋이 미소짓는 여자...
'따르르르릉-!'
얼마나 지났을까. 정적을 깨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 민호가 잠에서 깨어났다. 발신자는 할머니였다.
"아차! 전화 드리는 걸 깜빡했네"
휴대전화가 없는 할머니는 부두에서 홀로 손자를 기다리다 때가 되어도 오지 않자 다시 집으로 향하신 모양이었다. 마침 섬의 부둣가에 도착한 민호는 할머니께 거의 다 왔으니 나오지 마시라는 말을 전했다.
그럼에도 집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부두까지 굳이 다시 오시겠다는 할머니. 민호는 그런 할머니를 겨우 말리며 가는 길은 잊지 않고 있으니 혼자서 가겠다고 고집해 말씀드렸다.
조심해서 오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전해 듣고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무언가 전할 말이 있는 듯 다시 민호를 부르며 할머니가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저기 말인데 민호야..."
"네, 할머니"
"오는 길에 혹시나 누군가 길을 걷거나 말을 걸어오면 절때로 대꾸하지 말거라"
"왜요?"
"이 마을의 규칙이란다. 그러니 할머니말 명심하고 절때로 대꾸하지 말거라 알았니?"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 규칙이 있었나?" 전화를 끊고 배에서 내린 민호. 의미심장한 할머니의 말씀에 도통 영문을 몰랐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타고 왔던 배의 선장님이 민호를 다급하게 부르며 대뜸 말을 건냈다.
"어이, 학생 혼자 가는건가? 누구 데리러 온 사람 없는가?"
"네, 그런데요?"
"이거 이거.. 학생이 잘 모르나 본데 실은 이 섬 마을에는 밤만되면 요상한 것들이 나타나!"
"요상한...거요?"
"귀신 말이야 귀신!"
"귀신이요?! 그게 정말이에요?"
"참말이지 그럼!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밤에는 거의 외출을 안 한다지 아마..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선장님으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은 즉슨 이 마을에는 밤만되면 바다에 빠져죽은 끔찍한 물귀신들이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헌데 이상한 점은 이 귀신들은 희안하게도 아무말 없이 뒤에서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서 따라오거나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다고 한다. 보통은 산 사람에게 특별히 해코지 하는 일은 없지만, 말을 걸거나 말을 걸어 왔을때 반응을 보이면 그 사람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가 바다로 함께 뛰어 든다는게 선장님의 이야기였다.
믿을 수 없는 선장님의 말을 전해 들은 민호는 그제서야 전화 속 할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문득 지나가야 할 으슥한 길목을 바라보는 민호. 살짝 겁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께 다시 전화를 드릴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런 스릴있는 경험은 도시에서 흔하지 않는 일이고, 또 사실 귀신같은 초자연 현상을 믿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할머니 집을 향해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더욱이 만에하나 무언가가 나타나더라도 말을 걸거나 대꾸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얼마나 걸었을까. 어둠에 점점 눈이 익숙해지게 되었고, 걸으면서 둘러보는 섬의 경치는 옛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가 바로 옆으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와 돌담길. 주변을 보며 그렇게 추억에 젖어 있는 사이 어느새 민호는 마을을 향하는 자그마한 산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지, 여기를 지나야 마을이 나왔지..."
산길이라고는 하지만 마을의 입구와도 같은 이곳은 길이 험하거나 크게 가파르지 않았고, 꽤나 넓고 잘 정돈된 길이였다. 하지만 역시 가로등 몇개 없는 어두운 곳이라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가 없었다.
민호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이어폰을 귀에 꼿고 음악을 들으며 산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반복구가 난무하는 흔해빠진 아이돌의 노래는 비록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는 않지만 기분 전환에는 안성맞춤 이었다. 간혹 흥얼거리고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민호는 점점 경사가 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문득 정면에 시선을 둔 민호는 뜻밖에도 어두운 길 저만치 앞에 사람으로 보이는 형상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인가?"
움직임이 뚜렷한 형상은 분명 사람이었고, 휘날리는 긴 머리와 어렴풋이 보이는 옷차림을 봐서 여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순간 선장님의 말씀이 떠올라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민호. '아닐거야'를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읊조리며 용기를 내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발걸음에 속도를 높여 저만치 앞에 걸어가고 있는 여자를 따라가고 있는 민호.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여자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더욱 더 이상한 점은 민호가 걸음을 멈춰섰을때 여자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한치도 멀어지지 않고 똑같은 거리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쩌면 그렇게 느끼며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불안감에 휩싸인 민호에게 이성적인 사고를 할 겨를 따윈 없었다. 그렇게 점점 더 초초해져만 가는 민호.
민호는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춰 여자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었고, 다리가 굳어 그대로 경직되고야 말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민호가 더욱 끔찍한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가 뒤를 돌아 민호를 힐끔힐끔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여자의 얼굴은 마치 웃음을 띄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호는 너무나도 두려웠고, 도저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여자가 아직까지 말을 걸어 오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칠듯한 두려움이 들지만 이대로 할머니집까지만 도착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믿음만이 민호의 이성을 붙잡아줄 유일한 끈이자 탈출구였다.
마치 악몽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민호는 여자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영원같이 길었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민호의 눈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켜진 집들을 보는 순간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지경이었다.
그런 가운데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던 곳을 무심코 바라보게 된 민호. 다행스럽게도 그곳에 여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혹시나 영화에서 처럼 뒤에서 갑자기 나타 나지는 않을까 서둘러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 가버렸나"
언제 또 다시 여자가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었다. 민호는 재빨리 할머니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끔찍한 경험을 하고 나니 할머니가 더욱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긴장한 탓일까. 금방 숨이차 속도를 늦추고야 만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어가는 민호. 그러던 중 그제서야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아차! 그러고 보니 설마 그 여자... 혹시 같이 배를 타고 왔던.."
"역시... 너무 긴장한 탓이었나"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한 민호. 하지만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여자의 발걸음이 떠올라 웃음을 뚝 그쳐지고 만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저만치 앞에 누군가가 조용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린 민호. 가슴이 미친듯이 요동치고 숨은 더더욱 차오르며 피가 거꾸로 솓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라?' 어둠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할머니였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반갑고 그리웠던 모습. 민호는 마치 한줄기 빛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는 손자를 반기며 손을잡고 활짝 웃으셨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왜 이제 왔어"
"걱정이 돼 와봤더니 여기서 만나는구나. 별일 없었니? 배 많이 고프지?"
따뜻한 할머니의 말씀에 민호는 그만 울컥하고야 말았다. 긴장되고 무서워서 굳어있던 온 몸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 어린아이 마냥 할머니의 품으로 달려 들었다.
"할머니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어떤일을 겪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렇게나 그리웠던 할머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마는 민호. 그런 민호의 머리를 어루 만지던 할머니는 귀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너 나한테 말걸은 거 맞지?"
작가의 한마디 : 하.. 쓰다보니 방향을 잃어버려서.. 90년대 구닥다리 공포 괴담처럼 끝내고 말았네요.
그야말로 븅신 됐어요.ㅠ 주인공은 결국 물에 빠져 오징어가 되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ㅋ..ㅋ..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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