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성, 그냥 외로우며 살아
사랑, 그거 하지마
그냥, 외로우며 살아
영혼이 삭아버리는 거 보다는 나아
더도, 덜도 상상하지 말아
이별과는 한 몸인 건 확실해
앞과 뒤, 그러나 보이지는 않아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긴 해
그러나, 떠나게 되어 있어
결국은, 그 자리
거지로 떠돌던 허무가 제 집인줄 알아
아니 죽어지면 그냥, 외로우며 살아
밤마다, 코박고 울수만 있어도 사치야
허무가 무언진 알아?
외로움도 증오도 못느끼는 거야, 아무것도
심성보, 너로 인해
너로 인해 내가 숨쉬다 끝나는 삶이면 좋으련만
삶은 언제나 비수 같은 얼굴로 나를 외면한다
혼자만의 삶을 살 수가 없어 무심한 하늘만 바라보았는데
그 또한 나를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절망의 끝에서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
그 차가운 그늘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오늘도 나는 너의 사랑 앞에 이렇게 두 무릎을 꿇고 있다
살아야 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칠흙같은 어둠속에 있을때
다시 나는 혼자만의 성숙한 삶을 깨우쳐 가는데
지독한 열병을 앓고 나서야 내가 비로소 인생을 알고
참지 못할 슬픔을 겪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순결한 마음 따뜻한 사랑, 그 절망의 무덤 속에서
오늘도 슬픔의 잔을 혼자 두렵게 삼켜야 한다
사랑 뒤에 오는 죄 아닌 죄
그 죄로 인해 목을 휘감는 절망
길 잃은 짐승마냥 너로 인해 내 인생은 그렇게 또 서러워라
강인한,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떨어집니다
가만히 돌 속으로 걸어가는 비의 혼
보이지 않는 얼룩 하나, 햇볕 아래
마른 돌멩이 위에서 지워진다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내 가슴 속에 젖어 물빛 반짝이다가
얼룩처럼 지워져버린 네 이름은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떨어진다
내 한 생도 세상 속으로 떨어진다
마른 돌멩이 위에서
내 삶의 한 끝이 가만히 지워진다
최승자, 일찍이 나는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임길택, 아버지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들어오시어
그냥 앉아만 계시는 아버지는
오늘처럼 술에 취해
흥겨워하시는 아버지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뭐라시며 눈 흘겨도
못 들은 척
흘러간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하십니다
옆 방 이불 속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나도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