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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새벽녘 밤을 밝히는 시 - 백 열일곱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744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5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24 14:04:43
홍신선, 어느덧 아내와도 헤어지는 연습을
어느덧 아내와도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마음에서 등을 떼면
척추골 사이로 허전히 빠져나가는
애증의 물 잦는 소리
아내여
병 깊은 아내여
우리에게 지난 시간은 무엇이었는가
혹은 칠월 하늘 구름섬에 한눈 팔고
혹은 쓰린 상처 입고 서로 식은 혀로 핥아주기
아니다 야윈 등 긁고 이빨로 새치 끊어주기
그렇게 삶의 질퍽이는 갯고랑에서
긴긴 해를 인내하며 키워온
가을 푸른 햇볕 속 담홍의 핵과들로 매달린
그 지난 시간들은
도대체 이름이 무엇이었는가
성긴 빗발 뿌리다 마는
어느 두 갈래 외진 길에서
정체 모를 흉한처럼 불쑥 나타날
죽음에게
그대와 내가 겸허하게 수락해야 하는 것
그 이름은
사랑인가
어두운 성운 너머 세간 옮긴
삼십 년 긴 사글세방
또 다른 해후의 시작인가
박정만, 슬픈 일만 나에게
사랑이여,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정처를 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러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 것인가
오기로 살지 말자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 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신설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로 산천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대국도 보았다
빌어먹을, 꿈은 아직 살아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역에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 정작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황규관, 집을 나간 아내에게
당신과 내가 멀어지니 이렇게 좋군
아이들을 위해
가장 가깝게 뜨겁게 살았을 적에
세상은 얼마나 징그러웠었나
조금만 더 멀어지면
아니 이렇게 마지막을 느끼면서
가만히 어루만질 거리마저 생기고 나니
장미꽃이 유독 붉군
생각해봐 우리는 지금껏 색맹이었어
딸애의 피아노를 위해
다달이 갚아야 할 대출금 이자를 위해
혹은 (무엇보다도 하찮은) 과한 내 술욕심 때문에
함께 꽃잎 한 장 바라보지 못했다는 게
정말 말이나 되나?
이렇게 멀어지니 좋군, 참 좋아
우린 너무 가깝게 뜨겁게 살아왔어
당신이 정말 내 곁을 떠난대도
사랑이라는 거 좀 유치한 행복이라는 거 대신
그냥 웃을 수 있다는 뜻은 말야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지
늦진 않았지만
이제야 당신이 생각나고
생각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는 일
그리고 마지막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
이렇게 좋군 나마저 달라지는군
김남조, 상사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날 병든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번 만번 이상 하여라
다른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 사철 내 한평생
골수에 전화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전에 단 한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신대철, 강물이 될 때까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 간데 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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