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 꽃구경 가자시더니
벚꽃나무 머리 풀어 구름에 얹고
귀를 아프게 여네요
하염없이 떠가네요
부신 햇빛 속 벌떼들 아우성
내 귀 속이 다 타는 듯하네요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시더니
무슨 말씀이었던지
이제야 아네요
세상의 그런 말씀들은 꽃나무 아래 서면
모두 부신 헛말씀이 되는 줄도 이제야 아네요
그 무슨 헛말씀이라도 빌려
머리 떠메어져 가고 싶은 사람들
벚꽃나무 아래 서보네요
지금 이 봄 어딘가에서
꽃구경 가자고 또 누군가를 조르실 당신
여기 벚꽃나무 꽃잎들이 부서지게 웃으며
다 듣네요
헛말씀 헛마음으로 듣네요
혼자 꽃나무 아래 꽃매나 맞으려네요
달디단 쓰디쓴 그런 말씀
저기 구름이 떼메고 가네요
김재진, 새들도 슬픔이 있을까
하늘에 뿌려놓은 새의 발자국,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사람 있어
안개꽃 다발을 흔든다
지겹도록 떨어지는 링거 한 방울
병실엔 침묵이
바깥엔 채 이별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침녘에 꺼내놓는 시리고 찬 이름 하나
보낼까 말까 망설이는 편지의 모서리가
주머니 밖으로 하얗게 손가락 내밀고 있다
시린 입김 올리며
쓸쓸한 날엔 철길을 걷는다
연기 흩어진 하늘을 떼 지어 날아가는 새 떼
강을 건너가는 햇빛의 발이
꽁꽁 얼어 애처롭다
새들도 슬픔이 있을까
가갸거겨, 소리내며 흩어지는
무수한 저 글자들도 사연이 있을까
추락하는 이름 위에 앉아본다
내가 사랑에 실해하는 건 다만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최영철, 한 꽃잎이 다른 꽃잎에게
이대로 마주보고 살다가 한날 한 시
바람 부는대로 같이 길 떠나자 하고 싶지만
이 말이 당신께 짐이 될까 봐 못합니다
속절없는 약속을 지키느라
벌 나비 날아드는 좋은 시절 마다하고
스산한 바람에 서둘러 몸 떨구실까 봐 못합니다
누구 하나 먼저 가면 부리나케 뒤쫓아가
다음 세상 또 얼크러 설크러져 몸 비비자 하고 싶지만
이 말이 당신께 빚이 될까 봐 못합니다
안수환, 내 곁에 없는 사랑
신라가 망해버린 줄 알았지만
망한 것이 아니었네
지나친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니었네
토함산의 소나무와
불국사의 밤바람 소리와
불쌍한 거미줄과 차 한 잔이
모두 쓸만한 것이었네
내 곁에 없는 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