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기습적이고 불투명하고 국민 우롱한 결정
한미 양국 정부가 사드 배치 발표를 기어코 강행하고 말았다. 8일 오전 11시 "주한 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미 동맹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정세가 '사드 정국'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갈 전망이다.
남남 갈등, 남북 갈등, 동북아 갈등 등 세 차원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은 그야말로 '헬조선'의 문턱에 서게 됐다.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또다시 고조되고 중국의 경제 보복론까지 가세하면서 경제적 피해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미 당국 발표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기습적'이다. 양국 정부는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주말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둘째, 이보다 더 '불투명 할' 수가 없다. 최소한의 정보 공개와 공론화의 과정도 없었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는 프랭크 로즈 국무부 차관의 방한이 사드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보면 그의 일본-한국-중국 순방은 사드 공식 발표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 가서 '공조'를 다짐받고 한국에선 '최종 결정'을 내렸으며 중국에 가서 이를 '통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는 사드 배치 후보지를 수시로 언론에 흘리면서 여론을 떠보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면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해놓고선 사드 배치를 공식 결정했다. 과연 가장 중요한 부지 선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넷째,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책임 있는 정책 결정자라면 그 결정이 국민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숙고를 거듭하고 소통을 강화해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그 결과 사드 배치 결정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정책 결정 과정뿐만 아니라 사드 배치 자체에도 중대한 문제들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잡는 건 불가능하다.
이처럼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를 튼튼히 해주는 미국의 '선물'이 아니라 한국의 국익을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는 즉각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고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펜타곤과 록히드마틴이 준 자료만 보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