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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밥...
게시물ID : lovestory_743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잡대놈
추천 : 1
조회수 : 7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9 09: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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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나고 영업 첫날입니다.

보통은 오전에는 나 혼자 가게들을 들러서 이런저런 정리를 하고 집으로 오는데,
오늘은 영업 첫날이니 부인과 같이 각 지점을 돌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내가 사는 푸미흥으로 돌아오니 
벌써 낮12시가 넘었네요.
어디를 가서 밥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짬뽕이 맛있는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중국집에 앉자마자 난 짬뽕을 시켰는데,
부인이 메뉴판을 한참을 뚫어져라 보더니,

"나 잡탕밥 먹을래"

이리 말합니다.

잡탕밥!

그 말을 들으니,
기억 한켠에 남겨진 아련한 추억이 생각납니다.

갓 결혼을 하고 첫 신혼살림을 달셋방엘 살았었는데,
말이 방이지 옥탑 다락같은 곳이었습니다.

샤워할 곳도 없고,
좁디 좁은 방과 부엌에,
한여름엔 밤 12시에 방엘 들어가도 30도를 넘기는 더위로,
참 힘든 첫 신혼살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런 우리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회사 사택 당첨"

비록 30년도 더 된 낡은 아파트에,
거실도 없는 겨우 12평 아파트였지만,
방이 두칸이나 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없는,
꿈같은 집이었지요.
무려 5년을 집 걱정 안하고 산다고 생각하니,
세상 부러울것이 없었습니다.

새로 도배를 하고,
드디어 이사를 했습니다.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단칸방에서 나온 세간이 뻔하다보니,
1톤 용달차 한대 빌려서 싣고와서,
인부 둘이서 한시간만에 아파트로 밀어넣으니 끝입니다.

도배와 장판이 반질한 새? 아파트에서,
열심히 짐들을 챙기다보니,
문득 오늘처럼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더군요.

아직 짐 정리가 다 되지않아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니,
라면조차 끓여먹기 힘든 상황이라,
중국집에서 간단히 시켜먹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복도를 기웃거리니,
힘들지 않게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발견했습니다.
전화번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메뉴들도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난,전날 친구들과 마신 술에 해장을 하는게 좋겠다 싶어서 짬뽕을,
이윽고,부인은 잡탕밥이란걸 시켰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부인은 잡탕밥이 어떤 음식인지도 잘 모르면서,
단지 국물에 밥이 따라나오거니 생각했겠지요.
나 역시도 잡탕밥이 뭔지 그날 처음 알았구요.

중국집 치고는 배달이 좀 늦습니다.
(잡탕밥이 간단한 음식이 아니라서 만드는데 시간이 걸려 늦은것도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럴수도 있겠지하고 좀 기다리니,
드디어 열어둔 문사이로 배달통이 빼꼼이 들어옵니다.
허기진 상태에서 그릇에 씌워진 랩을 벗기는것조차 마음이 급해서,
부인이 계산을 하러 일어난 동안에,
난 정말 최고의 속도로 랩을 벗기고 있었지요.
서비스라면서 군만두까지 주길래,
새로 살게된 이 동네는 인심도 참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철가방 뚜껑을 박력있게 내려꽂은 중국집 아저씨는,
힘찬 목소리로 영수증을 내밀며 말합니다.

"12,500원입니다"

엥?
내가 잘못 들었나?
무슨 밥 두그릇이 12,500원이나?

랩을 벗기던 손을 멈추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라구요?"

나와 부인은 둘이 연습이라도 한듯이 동시에
이 말을 뱉었습니다.

"잡탕밥 10,000원,짬뽕 2,500원이구요.
아~아~
군만두는 서비스라니까요"

그 시절 내 박봉으로 딸 민경이까지 키우며 사는터라,
어쩌다 큰 맘먹고 외식이라도 가서  삼겹살을 먹어봐야,
채 만원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것도,정말 아주 가끔 가야할 만큼 어렵던 시절이었지요.
삐삐(호출기) 사용료 한달 만원이 아까워,
삐삐를 팔까 생각하던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점심 밥 한그릇,
그걸 시키면서 가격표가 없다고,
고민없이 무턱대고 시킨게 이런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사 준비하느라 다행히 부인의 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이 있어서,
겉으론 태연히 그 돈을 지불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중국집에 밥 시키고,
첫날부터 외상을 달뻔 했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밥값을 건냈지만,
이런 낡은 싸구려 12평 아파트에서 만원짜리 잡탕밥을 시킬때부터,
어쩌면 이 중국집 아저씨는 우리의 실수를 눈치채고,
속으로 재미있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인과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짬뽕 한그릇,
서비스 만두와 단무지,
그리고,유난히 윤기나는 비주얼로 김을 모락모락 내는 잡탕밥이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로 묘한 침묵이 흐릅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말도 안하는게 가장 현명한 처신이라는 생각에,
나무 젓가락을 툭 쪼개서 부인에게 건냈습니다.

부인이 입을 엽니다.

"잡탕밥 당신이 먹어"

내가 다시 툭 던집니다.

"그냥 당신이 맛있게 먹어.
이미 시킨거 ...."

평소 말 하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멋떨어지게 해내는 내가,
그땐 왜 그 분위기를 바꿀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부인만큼이나 나도,
만원짜리 잡탕밥의 충격이 컸던 탓이겠지요.

잡탕밥은 결국 우리 둘의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아까워서 하나도 안남기고 다 먹었습니다.

각자의 미안함.

가격을 모르고 시킨 부인의 미안함과,
그런것 하나 맘 편히 먹일 형편도 안되는 남편으로서의 미안함에,
둘은 군만두에 단무지까지 싹싹 긁어서,
다 먹었습니다.
그때 맛은 어땠는지 지금 아무리 생각해내려해도 기억이 안나지만,
남김없이 다 먹은건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일이 20년 전입니다.

사실 요즘은 먹는걸로는 가격따위는 생각 안해도 될만큼 먹고 살만해졌는데,
왜 그동안 단 한번도 이 잡탕밥 먹을 생각을 못했을까요?
이 추억어린 맛있는 음식을 말이죠.


오늘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습니다.

짬뽕 한그릇과 잡탕밥 한그릇.
그때와 달라진 거라곤 우리가 나이를 좀 먹었다는것과,
서비스로 나오던 군만두가 없다는것 뿐입니다.
그리고,침묵 대신 기억을 더듬으며 살짝 퍼지는 미소도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다 부인이 입을 엽니다.

"당신 생각나?
그때,우리 사택으로 이사하던 날 잡탕밥 사건?"

"생각나지.
암!어찌 잊을까?
하하하"

그때는 너무 미안했노라고,
힘들때 잘 참고 나랑 살아줘서 고맙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침만 꿀꺽 삼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서,
그런말을 하면서,
눈물을 참을 자신이 없어서였습니다. 

가진것없이 시작해서,
고생하며 일군 오늘입니다.

그때를 기억하며,
더 감사하며,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출처] 잡탕밥 한그릇|작성자 파랑새농장

잡탕밥(고화질).jpg


잡탕밥이 뭔가 싶어서 검색했다가 좋은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sungsam0514/22028268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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