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녀와 관련된 꿈을 꿨어. 마음에 들지 않는 꿈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꿈이었어. 꿈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랐어.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지.
우리 둘 다 고아였어.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마을에 있는 종교에 맡겨졌어. 지금 생각하면 살 떨리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들키지 않고 살아남았어. 내가 가진 능력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와 함께 도망치기로 했어. 그녀도 평소에 이곳에 남아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우리는 함께 도망쳐서 이곳에 정착했어.
그녀가 사랑에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하지만 매번 그녀의 사랑은 펼쳐보기도 전에 끝나버렸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숨길 수가 없었거든. 상대방을 속여야 한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 했어.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돌연변이라고 말할 용기도 낼 수 없었어.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에게 물어보지도 못했지.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끝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문제는 다음 날 꾸었던 꿈이었어. 이번에는 그녀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확실히 들을 수 있었어.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어. 하지만 뒤돌아 서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어. 그녀는 자신이 돌연변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었어. 너무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어. 그 남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수 없지만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분명했어. 당장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지. 아직 일하러 갈 시간이 남은 그녀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어. 그녀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어.
“일어나봐.”
그녀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봤어.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 두 눈을 비비더니 크게 기지개를 펴.
“하아아암~ 무슨 소리야?”
“너 그 녀석이랑 무슨 사이인 거야?”
“그렇게 대단한 사이는 아니야. 항상 그랬잖아?”
많은 사랑에 실패한 탓일까? 더 이상 사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 이번에도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만나고 있는 듯 했지. 내가 생각했던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에 좀 민망해졌어.
“꿈…… 꿨거든.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비밀을 말한다거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잘 못 본 거 아니야? 꿈을 꿨다고? 이해하기 힘드네.”
“모르겠어. 잘 못 본 걸까?”
“네가 놀란 것도 이해는 되네. 나도 좀 놀라운데? 일단 조심은 할게. 하지만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 이제 나 조금만 더 자도 될까? 일하러 가기 전까지는 쉬고 싶어.”
그녀는 다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으면서 잠을 잤어.
다시 일어난 그녀는 일하러 갈 준비를 했어. 걱정스러운 게 눈에 보였는지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며 나갔지. 내 능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너무 황당한 경우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어. 그리고 만약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그녀는 말할 수 없을 거야. 그동안 그래왔으니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두 눈이 빛나고 있었어. 그리고 나를 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서 끌어안았지.
“고마워!”
“대체 뭐가?”
“네 꿈!”
“그러니깐 뭐가?”
“드디어 운명을 만났나 봐!”
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 해주기를 기다렸어. 그녀는 나를 앉고 빙글빙글 돌더니 어지러웠는지 바닥에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어. 난 그녀 옆에 앉았지.
“운명이라는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이 고백했어.”
“고백? 사귀자고?”
“응.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줄래?”
“알았어. 일단 어지러운 것 좀…… 이제 됐다. 그 사람이 나한테 돌연변이라고 고백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잠깐. 그 사람이 돌연변이라고? 그걸 너한테 말했다고?”
“그래! 그 사람이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나한테 먼저 말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나를 목숨보다 더 신뢰한다는 거야. 그는 분명히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건 나를 믿고 있다는 게 분명해. 목숨을 맡길 정도로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이런데 내가 어떻게……”
“설마 너도 말했어?”
“당연하지! 내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아? 그리고 대답을 기다릴 때까지 얼마나 초조하겠어. 네가 꾼 꿈. 이걸 말하는 거였어. 고마워!”
“너! 그 사람이 돌연변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만약에 널 속인 거면 어쩔 셈이야!”
“바보야? 자신이 돌연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지만. 확인은 해봤어? 정말 돌연변이인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 하지만 어떤 능력인지가 중요한가?”
“내 말은…… 정말 돌연변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이쯤에서 그만둬. 그에 대해서는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단순한 의심으로 그를 욕보이지 마.”
“너…… 그래. 그만하자. 피곤하니깐 좀 자야겠어.”
방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났어. 피곤했거든. 온종일 이상한 꿈 덕분에 신경 쓰였는데 그게 정말 일어나다니. 내 능력이지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고, 그녀도 저렇게 좋아하니깐 괜찮다고 생각했어. 좀 피곤한 것만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