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는 2년 정도밖에 안 봤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작년 티나 사태 때부터지만, 디씨나 인벤, 그 외 군소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오유의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 느낀 바가 있어 정리해 봅니다.
1. 게시판 내부에서의 논의 정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시스템
오유 특유의 베스트 / 베오베 시스템은 특정 게시판 내 논의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글만을 베스트 / 베오베로 보낼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부 논의에서 조금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글은 그 내용의 합리성이나 적절성과는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베스트, 나아가서는 베오베에 노출되죠.
이것은 목소리를 낮추고 게시판 내부에서만 논의를 진행한다는 선택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함을 뜻합니다. 물론 베스트금지 / 베오베금지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오유에서의 '논의'는 오유의 광장적 성격을 이용하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해당 기능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검열에 속하기에 꺼려지게 마련이며, 더 간단한 이유로는 애초에 해당 기능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따라서 게시판을 안 본 사람들은 논의의 진행과정은 알지 못한 채 결론, 또는 결론에 가까운 글, 또는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성급하여 미완된 결론들만 볼 수 있습니다.
운영자는 오유를 광장이라 말하지만, 세미나나 학회가 정제되지 못한 결론을 대중에게 노출해야 한다면 그건 서로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겠죠(물론 오유 내 특정 게시판들이 세미나나 학회씩이나 되진 않지만 치열한 논의가 있다는 점에서의 비유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특히 그것이 오유 전체의 '암묵적인 관념'에 반대되는 여론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애초에 그런 여론은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작성되어도 사람들이 공감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허점이 있다면 더더욱 공격받기 쉽겠죠. 본 사람들은 쓴 사람의 뜻을 오해하여 기분이 상하고, 쓴 사람은 본 사람들에게 오해로 공격받아 기분이 상합니다. 누구에게도 좋은 결말은 아닌 것이죠.요약하자면, 오유의 시스템 자체가 어떤 게시판이 치열한 논의로 타오를 때 그 기저의 논리를 보지 못하고 타오른다는 사실 자체만을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타오른다는 사실'만 보고 해당 게시판을 차단하거나, 보기 싫다 하게 되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 때문에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글이 묻혀버리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오직 절대적인 숫자에만 의존한 베스트 / 베오베 이동. 그리고 그에 대한 유저들의 집착
1번의 문제를 강화시키는 부분입니다. 오유 시스템 상 게시글을 100명이 글을 읽고 그 중 10명이 추천해도 베스트에 가고, 1000명이 글을 읽고 그 중 10명이 추천해도 똑같이 베스트에 갑니다. 10명이 공감했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비율은 10%대 1%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몇몇 게시판은 운영자가 기준을 상향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합리적으로 책정된 특정한 비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해야겠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운영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기준 상향이기 때문에, 실제 게시판 상주 인원을 감안하지 못하는 주먹구구식 운영에 불과합니다.
베스트 / 베오베에 대한 집착이라는 테마는 꺼라위키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출처가 꺼라위키긴 하지만, 실제로 오유에서 베오베에 올라간다는 것은 의미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오유에 가입하지 않고 눈팅하거나, 가입은 해도 잘 로그인하지 않고 유저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게시판도 베오베죠.
> 그리고 오유의 여론 편향이 쉽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유 문화 자체에 있다.
오유 유저들은 유달리 명예의 전당(베스트/베오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이 명예의 전당(베스트)에 오르는 것은 어느 커뮤니티나 보상이지만, 조회수와 댓글이 베스트, 베오베에만 몰리다시피 한 오유에서는 더욱 각별한 보상이다. 그냥 일반 게시판에 있는 글은 반응이 정말 없다. 아바타 게임이나 네이트 판 수준의 충격적인 글들이 아닌 이상, 원래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지만, 역으로 베스트/베오베 자체가 물신성을 띄게 됐다. - 나무위키 'N프로젝트' 항목 중에서 발췌(주 : 빨간색은 역자 강조. 그 외에는 오타나 문장구조만 손봄)
3. 추천이 추천을 부르는 밴드왜건 효과, 그로 인한 여론조작의 용이성
2번의 문제와 연결되어, 오유에서 여론 왜곡 및 편향이 쉬워지는 이유입니다.
현 분쟁을 예로 들어볼까요. 군게에 여성혐오적 글이 있다는 댓글은 군게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게시글에서 많은 추천을 받지만, 실제로 군게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여성혐오적 글의 링크를 제시하지는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물론 그런 글이 군게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없진 않은' 것과 '있는' 것은 굉장히 다릅니다. '없진 않다'라고 말할 때는 가정, 감정의 영역이지만, '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사실관계 확인이 뒤따라야 할 영역이 되죠. 하지만 문제는, 어차피 군대 게시판을 차단해버리거나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이유도, 동기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댓글은 그 사람들에게는 '공감'되거든요. 결국 군게는 '군마드'라는 낙인이 찍히고 인식이 점점 나빠지게 되었죠.
비슷한 추천시스템으로 '오늘의 화제글'이 결정되는 인벤 역시 여론조작이 너무 쉬워서(특히 롤 인벤) 인벤 운영자들이 최근에 손을 봤죠.
제 기억으로는 작년 만게가 정의당 터지기 직전에 딱 이랬는데("여혐 같아요", "만게 차단합니다"), 역시 올해도 반복하고 마는군요.
4. 느리고 신뢰 없는 운영.
특정 인물이 차단되거나 차단되지 않거나 하는 중립성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말을 아끼겠습니다. 사람이란 의견이 다 다르게 마련이죠. 하지만 여기서도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시 사태 때도 그랬지만, 선공지 후차단이 아닌 선차단 후공지를 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래 이러한 즉결심판은 신속히 어그로를 진압해야 할 필요성이있는 경우에 유효합니다. 그런데 오유 군게시판이 이 문제로 파이어된 것이 며칠이나 되었죠? 어그로들이 들어온 지는 또 얼마나 되었을까요?
애초에 차단 자체가 느린데 공지를 더 늦게 하니 신뢰도 없고 신속성도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운영을 믿고 오유를 계속 이용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드는군요.
5. 결론
오유의 이러한 시스템은 유머사이트로 출발한 과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머는 물론 정말로 웃긴 것도 있지만, 대개는 밈(meme)이나 구성원 간의 공감대로 웃는 거죠. 이는 오유 유자게가 재미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밈들을 겨루는 환경에서 오유식의 추천 / 비공감 시스템은 밈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하지만 오유의 주제가 확장됨에 따라, 유머사이트에 맞춰져 만들어졌던 시스템이 자정작용을 막는 장애물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오유는 거의 매년마다 큰 사건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론에서 밀려버린 사람들은 오유를 떠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거야말로 헛된 희망입니다. 괴물이라며 배제해버린 그들도 (일베, 메갈은 빼고) 대부분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진짜 '광장'이라면, 사람을 괴물로 몰아 배제하는 행위는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적절한 시스템 개선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