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여의도 공원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열린 솔로대첩이 큰 화제를 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없는 젊은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절박함을 표출한 셈이다. SNS를 비롯한 인터넷에는 솔로들 희화하는 농담들이 오래전부터 떠돌고 있다. 예전처럼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시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연인이 없다는 것은 놀림과 자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솔로들도 지금처럼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라에서 책임지고 커플로 만들어줬다. 1478년, 성종이 예조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요즘 장마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으니 아마도 가난한 집의 처녀와 총각들이 제때 혼례를 올리지 못해서 원광(怨曠)의 한이 혹 화기(和氣)를 범한 듯하다. 한양과 지방의 관리들은 관내의 가난한 처녀와 총각들에게 혼수 감을 넉넉히 주어서 혼례를 올리게 하라.>
원광이란 홀어미를 뜻하는 원부(怨婦)와 홀아비를 뜻하는 광부(曠夫)의 줄임말이다. 성종은 계속되는 장마가 혼례를 치루지 못하거나 홀로 독수공방을 하면서 한을 품은 이들의 분노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성종 개인의 생각이 아니었다. 성종이 이런 지시를 내린지 며칠 후 관리들을 감찰하는 사헌부에서 노처녀와 노총각들을 방치한 관리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다. 오늘날처럼 기상청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기상 이변을 음양의 조화가 깨졌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처녀와 총각들의 분노가 장마와 가뭄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조치는 귀양을 간 죄인의 가족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1426년, 세종대왕은 평안도 양덕에 귀양을 간 귀화한 왜인 평도전의 딸이 가난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러자 세종대왕은 해당 지역의 수령에게 혼수 감을 줘서 시집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귀양을 간 죄인의 가족들조차 챙겨준 것이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노처녀와 노총각들의 복지나 행복을 위해서 내려진 것은 아니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IMF 사태를 맞이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날씨가 조금만 이상해도 기우제를 비롯해서 온갖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가뭄과 장마를 계기로 억울한 죄인이 있는지 살펴보고, 혼례를 올리지 못한 백성들을 돌봐주는 것은 어려울수록 소외된 사람들을 돌봐준다는 오늘날의 복지와 인권개념과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더군다나 결혼에 필요한 비용과 혼수품까지 국가에서 지급해줬다는 것은 위정자들이 이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인권을 위해 쓰는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사회가 발달할수록 소외된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깨가 축 쳐진 그들에게는 높은 빌딩과 넓은 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사회가 치러야하는 비용과 대가 역시 늘어난다. 인권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뒤쳐진 이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대신 부축해주고 잡아끌어주는 것이다. 가난과 장애에 따른 차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다. 솔로대첩이 벌어지는 현대와 노처녀와 노총각들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결혼시켜주던 조선시대를 비교해보자. 우리 조상들은 인권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몰랐지만 지금 우리들보다 더 인권의식이 더 투철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