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위안부 역사관’ 5년 만에 이뤄진 할머니의 꿈
“너희들, 나 죽으면 잊을 거지?”
일제강점기 경북 경산에 살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 김순악(당시 84살)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돌아가셔도 꼭 기억할 거에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인순(51) 사무처장은 할머니가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지난 2010년 1월 대구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찬 바람이 불던 겨울날이었다. 할머니는 “대구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드는데 써달라”며 5000만원을 남겼다. 그해에만 전국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이 세상을 떠났다.
잊혀지는 것이 서러웠던 할머니의 작은 꿈이 5년여 만에 이뤄지게 됐다. 전국에서 네번째로 대구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사진)이 광복절인 8월15일에 문을 연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운동, 고 김순악 할머니를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역사관에 담긴다. 1층은 전시실과 사무실, 2층은 기획전시실과 교육관으로 꾸며진다.
대구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흐지부지되다가 지난 2009년 12월 시민사회에서 건립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고 김순악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자 대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들자며 시민 모금운동이 시작됐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는 희움팔찌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모았다. 희움이란 ‘희망을 모아 꽃피움’이라는 뜻이다. 여성가족부와 대구시가 각각 2억원을, 대구 중구가 4000만원을 내놨다.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1000만원을 보탰다. 12억5000만원은 그렇게 모였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대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1920년대 지어진 일본식 2층 상가 건물인 창신상회(대구 중구 서문로1가) 건물을 사들였다. 지난해 8월30일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애초 지난해 12월10일(세계 인권 선언의 날)과 올해 3월8일(세계 여성의 날)에 문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보수 공사에 시간이 많이 걸려 개관일은 두차례 미뤄졌다.
대구에서 문을 여는 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이름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으로 결정됐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1998년), 부산 수영구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2004년), 서울 마포구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2012년)에 이어 전국에서 네번째로 만들어지는 위안부 역사관이다.
이인순 시민모임 사무처장은 “무엇보다도 고 김순악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서 너무 좋다. 많은 시민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신 만큼 할머니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역사관을 잘 운영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는 모두 238명(6월1일 기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52명뿐이다. 올해만해도 할머니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88.8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