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 비잔티움 제국사(18)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
게시물ID : history_74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5
조회수 : 8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30 22:04:32

 

콘스탄티누스 1세의 3남, 콘스탄티우스 2세. 형제들 중에서도 유달리 모략에 밝고 의심이 많으며 잔혹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성품 덕택에 형제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4남, 콘스탄스 1세입니다. 둘째형인  콘스탄티누스 2세가 자신의 영토인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아퀼레이아에서 콘스탄티누스 2세를 격파, 패사시켰으나  자신도 갈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마그누스 마그넨티우스라는 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콘스탄티누스 2세는 조각상도, 옆얼굴을 새긴 주화도 찾을수가 없군요... 암튼 위에서 언급한대로  콘스탄스를 공격했다가 역관광당하고 형제들 중 첫번째로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신 분입니다.  그럼 잡설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도로 개종을 하고 죽었을 당시.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분 통치와 비슷한 개념의 분할 통치가 계획되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정 체제 확립 및 사분 통치 글을 올렸을 때, 일부 유저분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렇게 분쟁이 생길거면, 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분 통치를 했죠? 그럴거면 혼자 다하지...."

그게,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했던 겁니다.

원수정 체제와는 달리 전제정 체제는 황제가 다뤄야 할 결재량이나 그때그때 파악해야 할 사항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국을 사분해야 했던 것입니다. 애초에는 이분 통치하려다가, "야 이거 업무량이 장난 아니네" 해서 사분 통치를 헀던 겁니다. 물론 그 빌어먹을 카라우시우스가 막시미아누스의 브리타니아를 털어먹어서 이거 전담할 마크맨이 필요했었고, (콘스탄티우스가 그 마크맨이었죠. 네가 카라우시우스 수비해...골은 내가 (=막시미아누스)넣을 거니까...)

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은 일리리아와 페르샤 전선 두 개를 다 커버하려니 그게 진짜 어려워서 그랬다는 다른 이유가 있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양대 전선 부담의 역사는 비잔티움 제국이 트라키아를 오스만 투르크에게 관광당할 때까지 주욱 이어집니다. -_- ),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업무부담이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남한테 맡기면 되잖아요?

.............

이것도 원수정 시대의 단점을 여전히 고치지못한 로마 체제 특유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신기하게도 로마에는 각부 행정 장관들을 황제를 대리해서 죄다 통할하는 "재상" "총리" 라는 직책이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재상 노릇한 사람들이 있기는 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편법이었고, 대부분은 끝내 황제 노릇을 자기가 가로채거나 혹은 아예 황제를 죽여버리고 자기가 황제를 해버리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코메스 오피스 마기스테룸인가, 일명 정무 장관이라는 직책이 아주 나중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재상으로 봐주기는 좀.....

여튼 이 얘긴 나중에.

여하튼 뭐, 여기서 중요한 건 콘스탄티누스도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노인네..그러게 왜 이놈저놈한테 황제 칭호 따윌 줘서 제국을 어지럽혀? 나는 혼자 다해서 제국을 위기에서 구원해야지."

근데, 구원하기는 커녕, 이건..........

"..어..업무량이..장난이 아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정력이 짱이었던 사람으로도 이름났던지라 단독 통치를 하면서도 그 모든 결재건을 일일이 봤다지만, 결국은 탈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때문에 도처에서도 콘스탄티누스가 커버 못하는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가렴주구, 과다 징세, 세금 낭비, 뭐 이런 거죠. )

 

하지만 과연 콘스탄티누스는 뛰어난 황제였습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분 통치에 결함을 다시 판단합니다.

"....타성받이들만 따로 앉혀노니까 그런 거 아냐? 우리 콘스탄티누스 가문 착한 얘덜만 앉혀놓으면 그럴일 없을 거야."

해서 그는 죽기 전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분 통치를 업그레이한 오분 통치 모델을 가동합니다. 나름대로 아주 논리적인 귀결이었습니다.

갈리아 - 브리타니아- 아프리카 서부 약간은 그나마 가장 나이많은 큰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

이탈리아 와 북 아프리카 , 일리리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외교적인 부분만 필요한 이곳에는 콘스탄스.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는 콘스탄티누스의 장조카 달마티우스.

이집트, 시리아, 아나톨리아는 콘스탄티우스 2세.

나머지 페르시아를 방어할 아르메니아와 북부 메소포타미아는 콘스탄티누스의 두번째로 나이많은 조카 한니발리아누스에게.

게다가 각각의 조카들은 콘스탄티누스의 딸들을 아내로 붙여줘서 나머지 아들들하곤 처남 매부 사이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보면 과거에 막시미아누스와 콘스탄티우스, 갈레리우스가 맡았던 부분은 콘스탄티누스 2세와 콘스탄스, 달마티우스가 떠받치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혼자 커버했던 대 페르시아 부분은 콘스탄티우스가 백업하는 가운데 한니발리아누스가맡는 구도였습니다. 페르시아 부분만 담당 황제가 둘로 늘었습니다.

 

즉 이것을 보면 나오는 결론:

1. 콘스탄티누스는 대 페르시아 전선에 대한 근본적인 보강책을 강구했다.

2. 사분통치의 결함은 친족 끼리의 유대감 통해 해결.

좀 다른 얘기지만, 주나라식 봉건 제도의 결함을 한나라에서는 황족들만 왕자리에 앉히는 걸로 커버하려 했습니다.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방식으로 여겨집니다. 주원장 선생께서도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만, 근데....한이나 명에서나 마찬가지로, 4세기의 로마에서도 이런 방식은 뭐......이러면 가족들끼리 싸움박질하죠. (이럴바엔 차라리 남이 낫습니다. -_-; )

아니나 다를까......."뭐여.......구질구질하게.........황제가 다섯이라니, 말이 될 법한가?"라고 생각한 아들이 하나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후기 로마 제국 체제의 모순과 장점을 온몸으로 구현했다고도 볼 수 있는 특이한 유형이었는데...그래도 모 작가 묘사대로 병신같은 짓만 한 얼치기는 아니었고 나름대로 치적도 있었습니다만, (몇번 말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저 아르카디우스나 포카스에 비하면 명군입니다. )

여하튼 암군은 암군이었습니다.

 

자기 자리 보전은 잘하면서 정권 유지하고 현상 유지는 잘하는데 어째 나라는 갈수록 팍팍 썩어들어가게 해서

후임자만 줄창 골탕먹이는 얄미운 군주들이 있죠.

대표적인 인간이 국사에서는 선조. 로마사에서는 이 사람일 듯.

(모제국 분봉왕 엠비우스가 거의 거기에 접근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_-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