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26/목(세월호772일) 망치부인의 생방송시사수다
-민생경제파탄:청년실업,노인빈곤,가계부채,노동악법
-행정안전파탄:세월호,메르스,환풍기참사,리조트참사
-외교안보파탄:개성공단폐쇄,굴욕적인 위안부협상
-교육문화파탄:북한따라 국정교과서, 무책임한 누리과정
언론은 사실이다? / 세뇌의 첫 단추.
우리 국민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받는데
국어 시간에 글의 종류를 공부한다.
문학작품으로 소설, 시, 희곡 등
논리적인 글로 주장하는 글로 논설문 / 설명하는 글로 설명문
논설문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글.
설명문은 자기의 의견을 배제하고 단순히 설명만 하는 글.
그리고 나서 배우는 것이 기사문인데
기사문은 정확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쓰인 글.
6하 원칙에 따라.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신문 기사는 진실을 얘기한다'
'뉴스 보도는 진실만 전달한다'라고 믿게 세뇌시킨 것이다.
그러니 온 국민이 뉴스를 믿은 것이다.
그랬더니 이것들이 뉴스로 거짓말 한 것.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뉴스로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한 것.
망치부인의 유아기 시절.
그런데 망치부인 같은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좀 독특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라디오를 들으셨고 그 이유가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언젠가
" 집 거실에 앉아서 세계의 소식을 다 들여다보는 시대가 올 것이다 "
어머니가 1930년생이셨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1938년이라고 한다.
그럼 1938년도에 이미 외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이 국민들에게 모두 전파될 것이란 걸 아셨던 것.
그래서 어머니에게 세상 소식에 귀 기울여야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
그래서 어머니는 망치부인이 태어났을 때 이미 라디오 뉴스를 계속 듣고 계셨고,
망치부인이 어렸을 때 하루 종일 뉴스를 듣고 계시던 것을 같이 들으면서 자랐다.
어머니가 얼리 어답터셨고 그러다 부잣집이 아니었음에도
창문처럼 여는 텔레비전이 있게 되었던 것.
그래서 망치부인이 6살 때 혼자서 광복절 기념식을 보고 있었고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갑자기 뻥 소리가 나더니 텔레비전이 치지직 하면서 생방송이 끊어졌던 것이다.
그게 박근혜 모친 육영수가 총 맞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방송이 실시간으로 생중계가 되었는데
그 육영수가 총 맞던 사건 때문에 약 2분 정도가 딜레이 되게 된다.
우리가 생중계라고 얘기하는 스포츠 같은 것들도 전부 다 2분씩 딜레이가 있게 된 것이
그 육영수 피격사건 때문이다.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총에 맞았던 사건.
망치부인은 당시 텔레비전이 끊어져 기가 막히고 충격을 먹었는데
그 뒤에 몇 시간이 안되어서 아버지가 헐레벌떡,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들어오신 것.
전쟁 날 지 모른다고. 전쟁 날까 봐 두려워하시면서
식구들 챙기느라고 집에 들어오신 것. 밖에서 일하시던 분이.
아동기 시절. 언론을 믿지 않게 된 한 소녀
그리고 1979년에 박정희 죽었을 때, 9일 동안 모든 정규방송이 폐지되었었다.
9일 동안 계속 국화꽃에 박정희 사진만 보여준 것.
그리고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 짧게 뉴스만 한 것.
11살 망치부인은 태어난 후 계속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기에 종신제인 줄 알았었고.
그날 79학번 대학생 언니가 전화를 받고 펄펄 뛰면서 우는데, 학교가 휴교령이 내려진 것.
박정희가 죽었다고 휴교령이 내려졌단 전화를 받고 막 우는 것. (공부하고 싶어서)
망치부인도 따라 울었는데 왜 국민학교는 휴교령이 내리지 않는 거냐고.
그 옆에서 같이 통곡을 했지만 어머니가 잔말 말고 학교 가라 해서
너무 정신없어서 도시락 통만 들고 학교에 갔고 가방 때문에 도로 가느라 지각했던.
유일하게 지각했던 날이 79년 10월 26일.
그리고 나서 9일 동안 서거 방송이 나올 때,
캔디가 두 주가 결방이 되어서 그때부터 반독재의 길을 걸었던 것.
아무리 왕이 죽어도 9일 동안 서거 방송은 안 된다.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서 11살 때 결심을 했고
그다음 12살에 언니가 대학생이라 당시 펜팔이란 걸 했는데
광주 출신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아서 그걸 읽고 망치부인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지금 광주에서는 군인 경찰이 처녀들을 강간하고,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있다
때려죽이고 있고, 총 쏴 죽이고 있다 이런 얘기를 언니가 자기 전에 매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일을 언론에 안 나오고 뉴스도 며칠 동안 봤는데
한 마디도 안 나왔던 것. 그것이 5.18
그래서 어머니에게 언니가 아무래도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더니 미쳤다.
아무래도 기가 허해 보이니 약밥을 해주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째려봤던 것이 기억에 있다.
그런데 5월 말에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온다. 지금 세간에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
광주에서 남파 간첩들이 선동을 해서 소요사태가 있었지만 군인 경찰들이 다 진압을 했고
관련한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거기에 동요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망치부인은 그때부터 우리나라 뉴스를 안 믿었다.
뉴스의 영재였던 것. 12살 때부터 우리나라의 뉴스가 거짓말하는 걸 알았던 것.
청소년기. 사회 선생님을 감시하기 위해 도청을 하던 시절.
전두환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절에
망치부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정치 경제를 배우면서 질문을 했는데
공산주의는 경제체제고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인데
왜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고 가르치냐는 질문.
그랬더니 선생님이 답변은 안 하고 교과서로 부채질을 하는데 마침 종이 울렸다.
그다음 질문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 사전을 찾아보니 공산주의는 경제체제, 민주주의는 어떠어떠한 정치체제.
공산주의는 똑같이 공동생산해서 공동분배한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을 통제하기 위해서
독재체제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독재를 바탕으로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독재와 민주주의는 반대이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었다 )
종이 치고 나서 "선생님 방금 그 학생 데리고 교무실로 오십시오."
교실 앞에 있는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 당시에는 방송 사고인 줄 알았다.
51개 반에서 어느 반 선생님에게 이야기한 거냐며 낄낄 거리고 비웃었는데
사회 선생님이 잠깐 따라오라고 해서 자신인 것을 알았던 것.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것이 그거였구나 하고 알게 됐는데
갔더니 어떤 선생님이 망치부인에게 집에 대학생 있느냐? 없는데요.
그럼 교회 다니냐? 다닌다. ( 움찔. 고2 때부터 안 나가서 )
중. 고등부 학생부 예배를 드리느냐? 아니다. 난 일반 예배를 드린다.
그랬더니 마지막 질문이, 그럼 혹시 서클에 가입했냐?
당시 서클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망치부인은 소쿠리요? 그랬더니 됐다며 가라고 한 것.
다음 주임 선생님도 또 불러서 똑같은 질문을 하고 마지막에는 또 소쿠리를 물었다.
세 번째는 체육 주임 선생님이 안되겠다며 상담실로 가자는데
다른 선생님이 교회와 학교와 집 밖에 모르는 애라고 그랬더니 보내준 것.
그날 겪었던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대학 가서 뭔 일인지 알았는데
도청을 했던 것.
당시 박정희. 전두환 때 스피커가 있는 교실에 쌍방향으로 도청이 된 것.
( 중. 고등학교 자율학습할 때 떠들면 몇 학년 몇 반 조용해 방송 나올 때 )
그 반이 떠드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군부 독재 시절에 사회 선생님들이 애들을 의식화할까 봐, 민주주의를 교육할까 봐
쌍방향으로 도청을 했던 것.
그게 망치부인이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 모든 역사 현장의 순간에 존재하며.
그리고 87년에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서울대 병원을 망치부인이 매일 갔었고 그러다가
연대 병원 심장전문의가 나타나서 심혈관센터가 만들어지던 시점에
어머니가 초기 환자로 연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망치부인은 연대 병원으로 보러 다니다가 6.10항쟁이 터지게 된다.
그때 응급실 왔다 갔다 하는 길에 눈물, 콧물,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여자가
이한열 학우를 지켜달라며 경찰이 이한열 학우를 찬탈하려 오고 있다며 울고불고 했던 것.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집에 가면서 버스 안에서 최루탄 냄새를 뭔지도 모른 채 마시며
자욱한 것이 바람을 타고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데 내가 여기서 죽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최루가스를 처음 맡았고.
88년에 복학을 해서 노무현이 소리 지르는 것을 처음 봤고,
89년도 봄에 임수경이 북한을 가고.
매 순간.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자신과 똑같다고 느낄 만큼
나중에 생각해보니 모든 역사 현장의 그곳에 있었던 것.
89년도에 임종석이 망치부인의 학교에서 잡혀갔는데
잡혀가는 전날 밤에 총학생회장이 학우들 남아서 학교를 지켜달라며
이유는 묻지 말고 무조건 남아달라고 했는데
망치부인이 미쳤냐 그러면서 집에 갔던 것.
그랬더니 임종석이 그 학교에서 잡혀갔던 것.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한총련이 만들어질 때
경희대에서 한총련 만드는 총회를 했는데, 2박 3일 혹은 3박 4일 동안
모든 단대생들을 묶어두고 안 보냈었다. 한총련에 동의해 줄 때까지.
그리고 나중에 다 동의해주고 나와서 마구 울면서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그때 처음으로 예언을 한 것. 학생운동은 3년 안에 망한다는.
그것이 93년 봄. 그리고 96년 안에 학생운동이 망했다.
그래서 망치부인은 그 모든 순간들이 다 기억에 나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더 이상 민주주의에 관심 갖지 않겠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국민들이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고 나서 김영삼 때 사람들이 엄청 죽는데.. 회개 기도를 많이 했다.
그때 교회로 돌아가게 되고 96년도에 김근태 의원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 서른일곱 혹은 서른여덟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일으키게 되는데
운전 17년간 누구를 친 적은 없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세 번이고
그날은 혼자서 고속도로에서 깜빡 졸았는데
160km로 차가 가드레일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래서 정신을 딱 차렸는데 곧 죽기 직전이었는데 너무 놀라서 핸들을 틀었더니
차가 도는데, 아주 짧은 순간 2바퀴~3바퀴를 돌면서,
그 짧은 순간에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하나님. 여기서 제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그 짧은 몇 초동안 다 지나가는데 별거 없더라.
그런데 차가 딱 멈추었는데 그곳이 고속도로에서 나가는 램프.
그때 망치부인은 결심했던 것.
오늘부터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겠다.
그리고 오늘의 망치부인이 된 것인데
월드컵에 관계되었던 것은 그때가 지방선거라 기억하고
하여튼 망치부인의 삶이 정말 좀 달랐다.
망치부인의 삶이 굉장히 일반인들의 삶과는 달랐고
자신의 나이 또래 애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애들이 거의 없었다.
85년 혹은 86년에 반장이었는데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고
천 원씩 내라는데 ( 80년대 천 원이면 지금 돈으로 만 원 가치 )
그때 망치부인이 반의 신뢰를 받아서 천 원을 다 걷었는데
딱 한 명이 안 내며 전두환 xxx 이러면서 전두환 군바리 xx가 거짓말 치는 것이라며
이거 내면 안된다고 여자애가 그러는 것이다.
애가 왜 이러나 그랬는데 마지막 날이 되었고 돈을 다 냈는데 한 명이 모자라니
선생님이 왜 한 명이 모자라냐 묻길래 친구인데 돈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걔를 불러오라고 한 것. 그래서 선생님이 부르신다고 하니 여자애가 치하며 주는 것.
그것이 평화의 댐 사건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애의 형제 중에 오빠나 언니가
86년 건대 항쟁으로 구속된 사람이었던 것. 1900몇 명 중에.
86년 건대에서 대학생들이 엄청 구속됐던 사건을 기억하는 것도 이 친구 때문에.
88년 청문회도 그렇고
하여튼 망치부인의 인생이 남달랐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기엔 그렇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뉴스의 장인으로 키우셨구나.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억들.
망치부인이 2004년에 김근태 의원의 정치연구소에 들어가게 된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문에 네티즌이 되는데 그전에는 인터넷을 몰랐었다.
컴퓨터는 워드프로세서용으로 썼고 그것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니 이게 뭔 개소리지 하며
뉴스를 읽기 위해서 네이버를 처음 들어가게 되고, 네이버에서 뉴스를 읽다 보니
노사모들이 반대한다길래 노사모 치고 들어가고, 노사모 게시판을 읽다 보니
서프라이즈가 나와서 서프라이즈에 들어가고 그다음 딴지일보 그래서 네티즌이 되는 것.
2002년에 홍삼트리오 사건으로 남편이 두 번째 구의원 나갈 때 개고생했던 것.
뉴스가 마구 거짓말하며 동교동계가 부정부패의 주범인데
이것을 홍삼트리오가 잘못했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자식들이
부정부패의 주범인 것처럼 보도했었던. 그것이 2002년이었다. 선거때라 기억한다.
2004년에 망치부인이 김근태 의원 선거운동을 하는데 정동영이 노인 폄하 발언을 했던 것. 그래서 김근태 의원이 자기 선거운동을 딱 30분밖에 못하게 된다.
전국에서 정동영 못 오게 하고 김근태 의원 보고 와서 지원 유사해 달라는 것 때문에
전국을 도느라 자기 선거운동을 30분밖에 못 했던 것.
맨 마지막 날 9시에 마이크가 꺼지는데 9시 반에 지방에서 왔던 것.
더 기가 막힌 것은 왔는데 말을 못한다. 목을 다 써서 소리가 안 나는 것.
그러니 그 선거는 강원도 춘천 국회의원 후보 나온 허영과 망치부인 둘이서
선거운동을 했던 것.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광풍 속에서 선거 운동을 했고
그 선거운동하는 과정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위기에 처했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이틀 전 날 뉴스에 나온다.
청와대 뒷산에 서서 봄은 왔는데 참 봄을 느낄 수가 없네요 하며 쩝쩝거리는 모습.
그날까지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할 것 같았고 계속해서 한나라당이 앞서나가는 분위기였는데
그 뉴스가 나온 다음 날 길에서 사람들이 다 손가락 세 개를 표시하며 가는 것.
3번 찍을 거라고 전부 다 그러면서 3번이 이긴다며. 당시 열린우리당.
전철역에서 망치부인은 눈물이 벅차올랐고 지금도 기억이 난다.
2006년에 남편이 구의원 선거 세 번째 나갔는데 박근혜 칼침 사건.
남편이 두 번째 구의원할 때 서른한 살 나이에 최연소 구의회 의장이 되었는데
그러니 지방선거 역사상 삼십일세가 지방의회의 의장이 된 적이 없었던 것.
그런데 신랑이 서른한 살에 의장이 되었고 전국에서 가장 잘한 구의원이라는 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지역에서 3명 구의원 뽑는데 3등 했다. 박근혜 칼침 사건 때문에.
박근혜 칼침 사건 때문에 당한 것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러니 그때 뉴스니 뭐니 이런 것이 다 기억나는 이유가 망치부인은 현장에 있었다.
그때 망치부인은 박근혜 칼침 사건이 있을 줄 몰랐지만
" 2005년에 당신이 내년에 시의원 나가면 떨어진다.
구의원 나가면 붙고 시의원은 떨어진다. 차라리 떨어질 거면 구청장 나가서 떨어지고
시의원 후보하고 경쟁하지 마라. " 그래서 남편이 시의원을 양보하고 구의원을 나갔다.
결국은 그때 전부 다 떨어지고 구의원만 된 것. 몇 명 살아남은 한 명이 신랑이었던 것.
2008년 지방선거 때 김근태 의원이 신지호에게 800표 차이로 질 때.
그때 그 민노당 후보들에게 막 울면서 얘기했던 것.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나는 것.
2010년 지방선거 때 망치부인이 모든 언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한명숙이 17% ~ 22% 진다고 그럴 때, 거짓말이다. 박빙이다. 현장은 박빙이다.
여러분이 투표하면 이긴다. 결국 모든 여론조사 기관이 17% ~ 22% 오세훈이 이길 것이라고 개뻥을 쳤을 때, 망치부인이 거짓말이라고 얘기했고 선거 결과는 망치부인의 말이 맞았다.
그렇게 시작을 했던 것.
2012년의 망치부인의 예언들. 2014년 세월호 사건, 그리고 2016년 총선 이야기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신의 섭리였으며
이 땅의 바른 언론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신다.
이 모든 과정이
망치부인이 볼 때는
하나님이 자신을 이 길로 자신을 이렇게 쓰시려고 만드신 것 같다.
망치부인의 삶이 일반인의 삶이 아니다.
망치부인의 나이 또래의 사람 중에 망치부인 같은 삶을 산 사람이 없다.
그러니 망치부인은 시사방송을 하도록 만들어진, 키워진 인물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시사방송을 하도록 창조하신 것 같다.
망치부인이 볼 때는 그렇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얘기들을 여러 군데에서 들었겠지만
왠지 망치부인의 얘기가 생생한 이유는 무엇이냐.
다 망치부인이 겪은 것이라서.
관련된 이야기들을 신문기사로 읽거나 책에서 읽거나 그랬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들었을 때와 망치부인에게서 들었을 때 다른 이유가,
망치부인은 그 시간 시간을 직접 겪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남보다 생생한 것.
그러니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으로 배운 시사이다.
시사방송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망치부인이 다른 사람하고 다른 것은
망치부인은 삶을 통해서 시사, 특히 시사 중에서도 언론의 문제점.
그러니 망치부인과 시사의 관계는 결국은 언론의 허울을 깨는 것이 망치부인의 역할 같다.
망치부인의 사명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던가 그런 것이 아니라.
망치부인의 사명은 언론의 거짓말,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내고
바른 언론을 수립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 같다.
망치부인의 사명은 비뚤어진 이 땅의 언론 현실을,
잘못된, 왜곡된 언론 현실을 알려내고
올바른 언론상을 세워내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