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힐링캠프와 후앰아이에서 강신주의 강연을 시청한 사람입니다.
먼저 분명한 것은 강신주는 자신만의 통찰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통찰이 옳냐 그르냐는 학계가 일일이 뜯어서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과연 학자중에 이만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니 10%는 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중에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라는 5권짜리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거기엔 수많은 학자들이 해당 고전에 대해 얘기하며 간간히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소개합니다.
그 책에서 어떤 학자는 넌지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문학자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자본주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자본주의에 대해서 비판하는 학자는 도대체 얼마나 되나요?
아니 강신주를 제외한 모두가 자본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왜들 그렇게 침묵을 하고 있을까요?
학자적 양심보다 쿠데타와 군사정권시절을 침묵으로 버텨온 이기적 습성에 굴복한 것일까요?
강신주는 당당하게 얘기합니다.
'좋아하는걸 해라' 단, 그리하여 가난해지는 것은 받아들여라...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알아주는걸 바라고 공부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즐겁다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학자중에 제가 아는 그나마 자기 할 말 하는 학자는 강신주와 김용옥 밖에 없습니다.
물론 유명하지는 않지만 자기 할 말 하는 학자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많은 인문학자들중에 정권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외치는 학자는 보질 못했네요...
또하나
강신주의 상담기법은 사실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모든 정신 상담의 기본은 문제가 된 그 부분을 '직시'하는데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담사가 아주 오랜기간동안 상담하는 이유는 별거 아닙니다. 대상자를 자극하지 않고, 서서히 그 문제의 본질로 유도하는 시도입니다.
반면 강신주는 오랜시간을 두고 상담할 시간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잇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은 아버지를 귀찮아해', '당신은 아버지와 낯선관계야'라고 말 할때...
이건 대단히 위험한 방식입니다.
의사와 상담자의 '라포' 즉 상호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상담자는 오히려 거기에 반발하고 더 깊은 장벽을 쌓을 수 잇습니다.
강신주는 이 부분도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얻은 사회적 명성을 이런 라포형성에 잘 이용합니다. 그게 나쁩니까?
반대로 세상에 침묵하며 얻은 명성이 더 나쁘지 않나요?
그는 김제동의 사자인형에서 '영원'이라는 기호를 즉각적으로 캐치할 정도로 충분히 정신분석에도 능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신병원에서 이런 상담 안합니다.
우울증때문에 정신병원 가보십시요... 대상자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의사 봤습니까?
눼눼~~ 우울증약 처방해 드릴게요...사실 이건 폭력입니다.
충분히 자존감을 높이고 환경을 바꾸면 되는 것을 약으로 처방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은 원시 폭력적입니다.
우울증약은 사람의 성격도 바꿉니다.
그 대표적 부작용으로 '열정'을 사라지게 합니다.
즉, '나'가 사라집니다. 잘나고 못나고아프고 병들고 찌그러진 본래의 내 자아... 그 민낯을 드러내보이고 그 것 자체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요...
의사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않고, 시민들은 약먹으면 되는 감기같은 거다 하면서 정신질환을 감기같은 걸로 가볍게 보는 자신을 보면서 쿨하다고 느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사회엔 강신주같이 상대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사회적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하다못해 의사도 약처방만 하는 시대니까요...
그러니까 힐링책만 넘쳐나고, 우울증약만 불티나게 팔립니다.그렇다고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증가만 합니다.
이 시대에 강신주는 단비같은 존재입니다.
두편의 방송을 보면서...저는 그의 발언에 숨겨진 철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의 발언에 숨어있는 정신분석학적, 진화론적 근거는 수없이 느꼈습니다.
단지 거침없이 말하는게 아니라, 통찰을 가진이만이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강신주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왜 이시대에 침묵하는 다른이들을 비판하지 않는지 그게 더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