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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비잔티움 제국사 (14) 콘스탄티누스 체제
게시물ID : history_7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2
조회수 : 4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25 18:00:13

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인물사 위주의 역사 서술이 주는 한계가 무엇이냐면, "왜 그랬을까"에 대한 의문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체제적인 요인이나 역사 발전적인 요인에 대한 고찰은 하나도 없어진 채, 모든 책임과 업적이 일개인에게

몰아져서 그 일개인이 가지고 있는 몇가지 특정 요인이 지나칠 정도로 부각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본좌의 박통 서술인데, 이건 뭐 애시당초 맘먹고 인물사로 들어갔으니 그렇다쳐도, 이러다보니

박통이 국민학교 다닐 때 끝에서 3등한 것까지 식민지 교육에 저항한 것으로 해석되고야 맙니다.

저 휴전선 위쪽의 나라에 조본좌 따윈 발끝에도 못미칠 영웅들이 우글거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실패한 이유도 그가 진정한 수령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한술 더뜨는 역사 해석이 그 중의 일례입니다. (장군님이 로스트 2009에 안나오셔서 실패했나?)

하지만.....대체로 읽기 쉽고 개요를 파악하기 쉬운 것은 인물사 위주의 서술이죠. 따라서 저도 어쩌는 수 없이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타겟으로 삼았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서, 제가 정말 고통스럽게 읽었던 기번과 워랜, 게오르그의

기록을 주요 소스로 삼으려 합니다. (물론 제가 까먹으면 그만큼 뻘소리도 많아지겠지만.;;)

인물에 대한 서술이 돌출하는 때는 주로 모 작가가 쓴 잘못된 편견을 언급할 때 나올 것입니다.

일단..... 콘스탄티누스 대제. 누구 말대로 그는 진정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후계자였습니다.

카이사르에게 아우구스투스가 있었다면,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는 콘스탄티누스가 있었습니다.

저도 읽다보며 깨달은 것인데,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는 애시당초 새로운 제국을 내가 세우겠다, 새 체제를 새우겠다,

새부대 어쩌구, 이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듯 합니다.

황제가 되기 전에 행보관 - 주임원사 노릇만 20년 넘게 한 그는 뭐든지 효율! 효율! 효율! 로 생각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기에 비효율적 요소만 다 쳐냈을 뿐이지요.

때문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체제는 아직 밑그림만 다 그려졌지 요소요소는 색칠이 덜 되어 있었고, 어떤 부분은 아예

안 그려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다 못그린 건 그리다가 죽었기 때문이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림이

그리다 말아진 건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거까진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즉, 비효율!) 때문입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선생께서는..... 애당초 "뽀대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셨고, 이 양반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는

정반대로 새로운 제국 체제를 세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러다보니 대외적으로 드러난 건 이 양반이

더 극적이라 디오가 아닌 이 분이 아주 오래 동안 비잔티움 제국의 시조로 생각되었지만...

여하튼 짚고 넘어갈 점. 비잔티움 제국 체제는 이미 디오클레티아누스때 주춧돌 놓고, 공구리질 다해놓은 뒤 수도,전기, 가스공사까지 완료한 상태였다는 것. 콘스탄티누스가 한 일은 거기에 지붕 얹고 내부 인테리어만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황제들이 서로 멱살부여잡고 죽여살려 했던 것도, 그 내부 인테리어에서 누가 제일 넓은 방을 차지하냐, 파티션을

네놈이 왜 이따구로 놓았느냐, 사무실 이름을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냐, 네가 뭔데 3층을 다 쓰는 거냐....등등의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콘스탄티누스께서 "나 혼자 남고 다 꺼져, 전부 다 내가 쓸거야!!!!" 로 정리하셨지만요.

오늘은 콘스탄티누스가 그 동안 어떻게 인테리어 공사를 했는지 서술하겠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때까지는 프라이펙투스들의 위치가 상당히 어정쩡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때로는 프라이펙투스들이 군대를 이끌었던 사례도 있는 것 같고, 프로콘술들 중 일부로 여전히 필요에 의해서는

병사들을 델고 다니는 얘들이 있었습니다.

위계 질서도 좀 불명확했던 것 같고. 이것이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와서 확실히 정리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황제 밑의 프라이펙투스 프라토리오들이 비카리우스 몇명을 다스리고, 비카리우스들 밑에 각 프로콘술들이 민정 총독 으로 놓여졌습니다.

한편 로마의 프라이펙투스는 각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들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건 옛날부터 그랬던 것같지만.) 일명 수도 장관으로 번역되는 이 직책의 전신은 믿기지는 않겠지만 근위 대장입니다.

(근위 대장 때하고 라틴어 명칭도 아마 똑같거나 거의 비슷했습니다. )

그리고 군정 분리는 이전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되었습니다.

(뭐 황제가 꼴리면 둑스 하던 애를 데려다가 갑자기 터억 프라이펙투스에 앉히거나, 혹은 이런 자들 중

일부가 왕년에 내가 군생활 좀 해봤어 하고 코메스 둑스 노릇이나 혹은 마기스테르의 역할도 일시 가로채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입니다. 하지만 일단 모 작가 말대로 완전히 군민 분리가 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렌스 황제 때에도 이런 사례가 발견됩니다. )

군대 지휘는 둑스들이 예전에 레기온에서 프로콘술들이나 프라이펙투스가 했던 역할을 수행했고, 이 둑스들은

코메스 둑스들이 지휘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한단계씩 내려갔다고 보면 됩니다.

그전까진 프라이펙투스 - 프로콘술 - 둑스 - 황제 였는데, 여기서 프라이펙투스와 프로콘술들이 빠져나가니

둑스가 이빠진 자리를 매우는 거고, 둑스가 하던 역할은 일명 코메스 둑스가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아마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와서 드디어 코메스 둑스 위에 마기스테르가 자주 나타났던 모양입니다.

보병 마기스테르, 기병 마기스테르가 있었는데 주로 기병 마기스테르가 필요하면 보병들까지 지휘했습니다.

(그러니까 보병 마기스테르가 대체로 기병 마기스테르보다 짬이 안되거나 혹은 아래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또 똑같이 됩니다. 둑스 - 코메스 둑스 - 마기스테르 - 황제.

주지할 점. 이 흐름은 제국이 망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갈수록 관직들의 힘이 약해지고 권한도 아래로 죽죽 나타나면서,

아예 하급 관직은 폐지됩니다. 그러면 다들 아래로 내려가서 맞추다보면, 결국 위에 또다른 관직이 생겨버린다는 것.

일부 관직은 "관직"이 아니라 "관등"이 되어버리고.

이것의 좋은 예가 휴전선 위쪽에 있습니다. 북한도 보면 대장 위에 차수, 차수 위에 원수, 원수위에 대원수,

이렇게 만들다보니 별 인플레가 생겨버려서 앵간한 준장은 뭐...말만 준장이고 장군이지 제대로 짬대우도 못받는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도 이후 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끝내는 카이사르와 바실레우스 호칭까지도 이 물결이 닥치게 되는데....

이건 근 천년 두고 진행된 현상이라, 아주 나중에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가 한 의미심장한 군사 조치. 그건 바로 새로운 유닛을 하나 만든 거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조차도 별다른 유닛은 만든 바 없고, 갈리에누스가 그전에 한꺼번에 몽땅 만들어놓은 유닛을 활용하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갈리에누스는 유닛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몇번이고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기번은 죽어라고 욕을 퍼부어대지만 말입니다.)

그 왜 바바리언 확장팩에 나오는, 말타고 댕기면서 큰 쇠뇌 쏘는 그 유닛...그 유닛이 바로 콘스탄티누스의 아이디어에서

창안한 유닛입니다. 고트족들이 번번히 콘스탄티누스에게 좌절을 맛본 것이 바로 그 유닛의 도움이 컸던 것이지요.

콘스탄티누스는 군제 개혁도 했습니다.

다시 설명해보면, 원수정의 옥질리아 / 레기온 체제에서 카라칼라 때 옥질리아와 레기온 자체가 레기온으로 통폐합된 뒤, 이게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코메타텐세스로 재편되고, 이후 리미네타이라는 부대가 새로 출현했습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때에 코메타텐세스에서 다시 팔라티니가 떨어져나갔던 것 같습니다.

리미네타이/코메타텐세스/팔라티니 요 팔라티니가 예전에 근위대가 했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돌고돌아 원수정 시대의 재현입니다. 아주 나중엔 이것이 또 반복되어서 또 코메타텐세스와 팔라티니가

통폐합되고 요걸 누가 또 나누고 등등등등하는 것같은데, 이건 아주 나중에. (왜 자꾸 인간은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까.)

그 다음....경제 . 쯔업. 근데..이점에선 콘스탄티누스가 디오클레티아누스만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콘스탄티누스 자신부터가 낭비벽이 심했고, 돈을 물쓰듯 쓰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국가 공무원들의 가렴주구 또한 심해질 조짐이 보였는데.....

우선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4두 정치를 구태여 했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전부 자기가 다 커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관구장을 통할하는 프라이펙투스 프라토리오를 두었던 건데, 그런데....

아무래도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자기가 오너라는 인식이 없으면 결국은 감독자가 없을 때 제배 채울 생각만 하게 됩니다.

나 혼자 전부 감독할 수 있어!!!! ---------> 불가능한 얘기.

아무리 건물주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도, 1~4층을 언제 구석구석 다 돌아본단 말이오?

각 층장놈들이 담합해서 청소일지 조작하면 그건 정말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보니 황제의 감독이 그전 4두 체제보다 훠어어얼씬 널럴해졌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애써서 회복한 제국 체제의

효율성은 점점 떨어지게 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린 자식들하고 조카가 카이사르로 세워졌다는데,

그 어린 애들은 감독은 커녕, 오히려 각부 관료들의 감독을 거꾸로 받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전혀 그전 4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통제 경제 해서 경제를 말아먹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어쨌든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바닥을 쳐대던 경제 지표가 그의 치세하에서 상당 부분 회복한 것은 유럽 지역에 있는 유적이나 저으기 아라비아에서 나오는 유물 등등등으로 봤을 때는 사실로 보입니다.

물론 통제 경제는 그의 주요한 삽질 중 하나입니다. 중산층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경제가 붕괴될 정도로 치명타였느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보면 몇백년간, 그것도 일부는 서로마 제국에 한해서만 진행된 현상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 것을 두고 그게 전부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글들을 보는데, 사실과는 다릅니다. 당연히 전제정 때에는 서민들과 중산층 생활이 원수정 때만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구 말대로 차라리 망해버렸으면 속이 시원할 그 지경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야만족 노예 생활보다는 천지 차이였고, 가렴 주구가 심할 지언정 야만족의 소박한 생활로 돌아가고파하는

제국 시민은 아무도 적을 수 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뭐...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는 낭비해도 될 여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콘스탄티누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크게 실수했던 분야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인테리어 외에 아주 중요한 점까지 했기 때문이죠.

주춧돌 놓고, 공구리질 다해놓은 뒤 수도,전기, 가스 공사까지 완료했어도....

이 모든 것에 맞먹는 중요한 조치. (지붕 얹고 내부 인테리어만 한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용도변경"이 되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로마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로마의 기독교에 대한 승리라고 볼 수 있겟습니다.

ps. 여기서 사족. 이 용도변경에는 "매우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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