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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비잔티움 제국사 (13) 롬 토탈 워
게시물ID : history_73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2
조회수 : 7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25 17:46:26

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막센티우스 VS 콘스탄티누스.

언젠가는 벌어져야 할 싸움이었고, 두 사람 모두 갈레리우스를 반면 교사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막센티우스가 파악하는 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콘스탄티누스의 군대가 갈레리우스 군대보다 적다.

2. 갈레리우스를 무찌른 것처럼 이번에도 더 쉽게 가능할 것이다.

3. 갈레리우스 때와는 달리 레기오나리 대군을 편성해서 훈련도 충분히 시켰고 요새 수비군은 전투 경험도 다소 쌓았다.
요새 수비군에게 콘스탄티누스가 엿먹어서 수도 줄고 기진맥진하면...

4. 그때와 달리 내가 옵션을 하나 더 붙이겠다. 그간 대군을 소집해서 야전에서 콘스탄티누스를 완전 섬멸하겠다.
아버지를 죽인 찢어죽일 원수 콘스탄티누스놈을 징벌하고, 군사 바보라는 콤플렉스도 해소하겠다. 이게 일석 이조다.

5. 콘스탄티누스, 지가 잘 싸워봤자다. 병력은 갈레리우스때보다 더 적은 정도고 , 이쪽 병력은 그때보다 훈련도 수효도
더 많다.

한편 콘스탄티누스는?

1. 막센티우스와 동일

2. 바로 그게 포인트다. 내가 적은 수효의 군대를 가지고 가야, 보급도 원할하고 막센티우스가 야전에서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야전에서 붙으면 내가 이긴다. 갈레리우스 군대가 야전에서 레기오나리들을 압도한 것은
지휘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상, 편재상, 군사경험상의 문제였다.

3. 근데 왜 갈레리우스는 못했나? 그 아저씨는 뵈는 데로 닥치는 데로 깽판쳤다. 그러니 될 일도 안된다....
차근차근 요새 공략을 하면서, 반항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줘서 되도록이면 전투없이 우회해서 가자.

4. 막센티우스, 열받아서 로마 밖으로 겨나올 것이다.
그럼 그때 게임 끝이다.

........... 그냥 생략하면 콘스탄티누스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특기할만한 일이라면 백년전 아우렐리아누스의 군대가 역시 팔미라 클리바나리우스들을 격퇴했던 장면이 이번에 또다시 반복되었다는 겁니다.

막센티우스 측 클리바나리우스들을, 콘스탄티누스 측 코메타텐세스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해있다가 속력이 떨어지면 쳐서 떨어뜨려 격퇴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역사책을 뒤져봤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에서 뛰어난 재간을 발휘한 듯 합니다.
바로 이것이 둘의 차이점이었죠.

일단 초전은 둘의 예상이 엇갈렸습니다. 북 이탈리아 요새들이 콘스탄티누스의 회유와 강공 양면책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콘스탄티누스의 전투력을 소모시키진 못했지만,

이러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막센티우스는 대군을 소집할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었습니다.

4. 콘스탄티누스.....병력이 좀 안줄었다만, 아직도 내가 우위다. 넌 이제 끝났다.

4. 자식, 롬 토탈워를 아직 못해봤구나? 넌 한번도 안해봤지만 난 평생 20년 넘게 했다.
난 로마 동서방 모든 유닛을 섭렵했고 내 별은 일곱개 이상이다.
넌 나한테 안된다.

이렇게 해서 밀비우스 다리 앞에서 회전이 벌어졌는데.... 왜 자꾸 모작가가 뻔히 있는 기록도 무시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양상은 모든 역사고금 전투와 비슷하게 벌어졌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이끄는 갈리아 기병대가 초전부터 득달같이 돌격해 들어가서, 양익의 막센티우스측 기병대들을 완파해버렸습니다.
(왜 양측 기병대가 대등한 승부를 벌이지 못했는지는 미지수인데, 제 생각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병대측이 우회하던지 기습하던지
속임수를 쓰던가 해서 막센티우스측 기병대를 불시에 들이받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덕택에 막센티우스 측은 양 옆구리가 횅~하게 비어버렸지요. 보병대 보병의 전투를 벌이기도 전부터 막센티우스 측에
슬슬 공황의 물결이 밀려듭니다. 수는 적지만 일당백 베테랑의 콘스탄티누스 측이 진격해서 막센티우스 측과 싸워 버티는
동안.....

콘스탄티누스측 기병대가 막센티우스측 보병대의 측면과 후면을 강타했습니다.
이러면, 승부야 뻔하죠. (롬 토탈워 돌려봐도 이런 식이면.... -_-)

막센티우스측 보병 전열이 무너지자 그다음부터 대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칸나이와 자마에서완 달리 막센티우스측 보병대에게는 퇴로가 열려있었지만..(아마 이것까지 계산에 넣었을 듯)

이것이 더한 재앙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다리에 공포에 질린 수많은 병력이 몰려들었고 막센티우스측은 압사하고 익사한
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죠. 막센티우스 자신도 테베레 강에서 익사하고야 맙니다.

막센티우스의 머리가 콘스탄티누스군 창에 꽂혀 로마시로 돌아오는 순간, 로마 시민들은 그 모든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로물루스까지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는 S.P.Q.R의 군대는 드디어 여기서 끝장이 났습니다.

아울러, 역설적이지만 콘스탄티누스가 S.P.Q.R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끝냈을 때, 비로소 그는 당대 로마 세계의 유일한 합법적인
아우구스투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굳이 계속 카이사르로 남으려 했던 건, 그가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4두의 인정과 로마시 원로원, 혈연적 정통성 이 세 개를 모두 갖춘, 유일한 인물. 콘스탄티누스 대제.

한편 동방에서도 리키니우스가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무너뜨리고 동방 황제가 되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딸리는 그는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는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끝내 리키니우스는 명분에서도 실력에서도 밀리는
처지가 되었지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막시미아누스와 1차 분할을 했던 때와 똑같은 상황이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 사이에 재현되었으나,
이게 얼마 못가리라는 건 누가 봐도 뻔했습니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 두 황제의 즉위로 동서 로마가 갈라졌다고 대체적으로 말은 하지만 사실 이런 식의 정의는
대단히 사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단순히 편의적인 것이죠.

제국의 동서 양대 부분이 서로 정치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완전 분할된 것은 거슬러올라가면 이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의 제국 간 경계선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앞서 내전을 벌일 때는 그래도 막센티우스는 어디까지나 찬탈자이자 대립 황제에 불과했으며, 리키니우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
가 다툰 부분은 같은 제국 동부 간의 대결이었지만.....

이때 같이 의미심장한 대립이 있던 적은 이 때가 최초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 사이의 과정이야 로마인 이야기에도 잘 나와 있으니 생략을 합니다. 한 줄로 줄이면, 리키니우스의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누스의 서로마 제국에게 완패를 당했고, 제국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이래 오래간만에 하나로 재통합되었습니다.

이후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 세계에서 늘 반복되었던 사례가 또 한차례 반복되게 됩니다.

공화정 체제부터 진행된 각계 발전을 카이사르가 일단 모아들여 수습했고, 이걸 가지고 아우구스투스가 원수정 체제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티베리우스가 손질-보완해서 원수정 체제는 완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전제정 체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틀을 만들고, 콘스탄티누스가 수정-보완해서 최종 완성을 보게 됩니다.
상당한 시스템 안정성을 자랑하는 이 체제는 기본 틀 자체는 칠백년 동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전제정 체제에서는 카이사르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긴 그것도 이유가 있는 게, 애초에 전제정 체제 자체가 원수정의 업그레이드 형태가 누적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

굳이 예로 들자면 행정-군사적인 면은 늘상 부당하게 욕얻어먹는 역할인 갈리에누스 황제의 공헌이 결정적으로 크다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은 갈리에누스 패치의 버그를 계속해서 잡아낸 클라우디우스 2세-아우렐리아누스-프로부스의 공헌이 크겠습니다. 그들이 남겨준 데이터가 있었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작업도 가능했던 것이죠.

다음 번에서는 콘스탄티누스가 완성한 체제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전제정 완성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습니다.

1. 행정-군무 완전 분리의 완성.

제가 잘못 알았는데, 여전히 "트리부누스"라는 단어는 이제는 프라이펙투스 대신 군단장 역할을 하게 된 둑스 밑의 대대장들을
이르는 단어로 쓰였다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시대에 와선 저 단어가 이젠 민정을 담당한 태수격인 프라이펙투를 보좌하는
보좌관까지도 이르는 단어로 쓰인 게 다른 점이죠.

(....말하자면 부시장이나 부구청장을 부르는 단어가 대대장하고 같았다고 보면 됩니다. 우째 그런 일이? 하겠지만,
시장이나 구청장격을 이르는 단어인 프라이펙투스 자체가 애초에 원래는 군단장을 이르는 단어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죠.

프라이펙투스를 보좌하는 게 트리부누스 역할이니까, 프라이펙투스가 시장을 한다고 해도 그걸 보좌하는 자가 트리부누스인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닙니다. 적어도 로마식 관념으로는. 어떤 의미에선 원수정의 잔재격이죠.)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백작"의 어원이 되는 Count는 원래는 둑스들을 지휘하는 코메스 둑스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둑스는 "공작"의 어원인데, 그 둑스들을 지휘하는 코메스 둑스가 백작이라....

근데 원래 애당초 둑스의 원래 역할이 프라이펙투스를 지휘하는 군총사령관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둑스의 어원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코메스"라는 호칭은 짬이 높은 행정 관리들 앞에도 수시로 붙게 됩니다. "장관"으로 번역되는데 코메스 둑스가
왜 코메스 둑스냐면, "너는 장관급이니까 짬대우해서 코메스 달아줄께" 이런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비유가 좀 이상하겠지만 한국군 사성 장군이 아마 차관급 대우인가 그럴 겁니다. 그런 의미였던 듯 합니다.

2. 행정 수도의 건립 -> 제국 동방의 항구적인 우위 달성.

그러나..가장 중요한 업적은.......


3. 소프트웨어, 즉 운영 OS의 설치였습니다.

펜티엄 4에 DOS가 잘 안먹히게 된 이상, 돈이 좀 많이 들어도 새 운영 체제를 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ps. 이번에도 모작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했지만 횟수를 좀 참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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