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설 연휴를 행복하게 보내야 할 전남 여수시 신덕마을은 기름 유출 사고로 악몽의 날을 보냈습니다. 1월 31일 싱가포르 선적 16만 톤급 유조선이 오전 10시 여수시 낙포동 원유부두로 입항하다가 송유관과 충돌, 원유 10㎘가 (해수부 주장) 바다에 유출됐기 때문입니다.
여수시 신덕마을 주민들은 기름 유출로 설날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도 못하고, 황급히 나와 기름 제거 작업을 했습니다.
정부는 2월 1일 해양수산부 윤진숙 장관이 신덕마을을 방문했지만, 주민들 앞에서 냄새난다고 코를 막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주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름 유출 현장에서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은 모습도 문제이지만, 아직 해양수산부와 정부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담당 해수부 장관, 하루가 지나서야 오다니'
신덕마을 주민들은 단순히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름 유출 사고로 악취가 나서 코를 막은 행위 그 자체를 비난하거나 항의를 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덕마을 주민들이 제일 분통이 터졌던 것은 바다 기름 유출 사고의 직접적인 관리 감독 기관인 해수부 장관이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 만 하루가 지나서야 왔기 때문입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1월 31일 사고 직후, 윤진숙 해수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 원유 유출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힘써 달라'며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습니다.
국무총리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윤진숙 해수부 장관은 다음 날 12시에나 신덕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알다시피 원유 유출 사고는 신속한 방제 작업이 관건입니다. 물론 해양수산부가 방제 작업에 돌입은 했지만, 총리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담당 해수부 장관이 사고 난 다음 날에서야 현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입니다.
' 심각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믿은 해양전문가?'
기름 유출 사고가 나고 하루가 지난 뒤에 나타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을텐 데, 기름에 불을 끼얹는 발언을 했습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신덕마을 주민들이 늦장 방문에 대해 항의를 하자,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었는데'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주민들은 심각하지 않다는 윤 장관의 발언에 더 화가 났고, 해양수산부는 '1차 방제가 마무리됐다고 보고를 받은 상황에서 현장을 방문했더니 현장은 심각해서 위로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변명을 했습니다.
해수부 장관은 심각하지 않다고 보고를 받았고, 현장은 심각하다면 도대체 무슨 보고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고 관련 해수부 보고 내용
○ 1월 31일 오전 10:05 유출 사고 오전 10:30 송유관 밸브 차단 오전 11:00 해양수산부 여수청 사고수습 대책본부 설치 오일펜스 설치 (5km),해경정 등 선박 74척 동원, 해상 방제 70% 완료. 마을 주민 등 230명 동원 해안부착유 제거 작업 완료
○ 2월 1일 해경정, 관공선 등 선박 70척 동원 해상 응급 방제 작업 실시 여수시청, 항만청 직원 200여명 여수,남해안 일대 해안가 부착유 방제작업 실시.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에도 정확한 사건 관련 보고 내용이 없기 때문에 해수부 페이스북을 토대로 대략적인 보고 내용을 구성해봤습니다.
해수부에 따르면 여수 원유 유출 사고가 난 1월 31일 방제가 이미 70% 완료됐고, 신덕 마을 해안부착유 작업도 이날 완료가 됐다고 나왔습니다.
<문제점의 시작: 도대체 언론과 해수부가 주장하는 원유 유출량이 제각기입니다. 어떤 언론은 10만 킬로리터, 어떤 언론은 800리터이고, 해수부는 10킬로리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고 자체가 엉터리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수부와 해경은 방제 작업이 70% 완료됐으며 기름 부착포 작업도 대부분 완료됐다고 하지만 실제 기름띠는 광양만으로 한려해상공원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보고를 엉터리로 했다는 의혹이 드는 대목입니다. 또한, 문제는 해양 전문가라는 윤진숙 장관의 안일한 태도입니다.
16년 동안 해양연구에 매진했다는 해양 전문가라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그대로 믿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벌어진 노무현의 분노'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앞바다에 허베이 스피릿호와 삼성 1호가 충돌하여 원유가 유출되는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유조선 탱크에 있던 12,547㎘의 원유가 태안 지역 인근 바다와 해안가를 오염시켰고, 자원봉사 100만여 명이 태안을 방문하여 추운 날씨에 기름 제거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12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태안 기름 유출 현장을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분노한 이유는 당시 상황실에서 이루어진 해양경찰청장의 상황보고 때문이었습니다.
기름 확산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청장은 날씨가 문제라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답답한 듯 몇 차례 얘기를 한 뒤 '어떤 악조건에서도 확산을 막는다'고 목표를 가지라고 합니다.
이어진 방제 작업 관련한 부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합니다.
▷해양경찰청장: 소형 선박 많이 필요하지만 보험사 비용 문제 때문에 힘듭니다. ▶노무현 대통령: 그런게 어딨어요? 물론 걱정해야죠.(청장이)비용을 혼자서 좌지우지 할 수 없기 때문에 보고가 상당히 조심스러운데,그러면 안 됩니다. 나중에 비용을 받고 못 받고는 재판에 맡길 일이고, 지금 당장은 필요한 만큼은 다 동원해야 합니다.
남북으로 확산되는 걸 막으라 하니까 대답을 머뭇 거리는데...예? 펜스가 시원찮으면 두 벌치고, 세 벌 치고, 네 벌 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확산 막는 것) 기준으로 해서 자원을 총동원 하라는 것입니다. 방제 펜스 성능 좋은 것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중국이든, 일본이든 가서 빌려 오든, 사오든, 불가항력이라는 말 나오지 않도록 총동원하세요.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그리 만족할만한 보상과 해결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날씨 탓', '비용 탓'을 하는 정부 관계자에게 그런 변명보다 확실하게 기름 유출 확산을 막으라고 강력하게 지시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관계자에게 요구한 것은 그저 말뿐인 '최선을 다하겠다'는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8개월간의 짧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통해 기름 유출이 얼마나 어민과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든 국민의 피해를 막겠다는 절박함에 따른 현실적인 대책을 기름 유출 사흘 만에 담당 공무원에게 요구했었습니다.
신덕마을은 1995년 씨프린스호 원유 유출 사고가 난 지역이었고, 당시 해역의 밑바닥에서는 10년이 지난 2005년에도 기름띠가 발견됐습니다.
즉, 원유 유출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16년 경력의 해양 전문가라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모르고 '심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서 펜스를 두 벌, 세 벌, 네 벌 치라고 요구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조건에서라도 기름 유출을 막지 못하면 '이젠 국민이 용서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름 유출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악취가 난다고 코를 막는 장관이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을 돌보겠다는 말보다, 돈 걱정하지 말고 어서 빨리 기름 유출을 막으라는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