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은 쌀쌀했다. 2008년 12월 11일, 초등학교 1학년 나영이(가명·당시 8세)가 등굣길에 나섰다. 오전 8시 20분쯤이었다. 교회 근처 골목에서 술 냄새 풍기는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이 교회 다니냐." 조두순(66)이었다.
조두순은 나영이의 입을 틀어막고 교회 1층 화장실로 끌고 갔다. 아이가 울면서 저항했다. 조두순이 주먹으로 퍽퍽 얼굴을 구타한 뒤,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나영이가 혼절했다. 그는 정신을 잃은 아이에게 무참한 성범죄를 저지른 뒤 달아났다.
이 일로 나영이는 성기와 항문의 80%를 잃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 화장실 바닥에서 정신이 깬 나영이는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살려주세요"라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어른들은 그제야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범인 조두순은 이틀 만에 집에서 붙잡혔다. 당시 문경연 안산 단원경찰서 강력2팀장이 검거했다. 조사 과정에서 조두순은 문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나올 테니 그때 봅시다." 경찰 강력팀장을 위협한 것이다.
잔혹한 범죄에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주취 감경’으로 감형(減刑)한 것이다. 조두순은 내후년인 2020년 12월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나영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다고 한다. 의사로 유명해지면 조두순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소일이 다가오면서 국민도 공포에 빠졌다. 교도소 측은 조두순이 특이행동을 보이진 않는다고 하지만, ‘출소 후 복수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조두순의 석방을 막아달라"는 청원에는 6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지난달 20일 같은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여기에도 26만명이 재차 동의한 상태다.
◇"운동하고 나올 것" 강력팀장 협박한 조두순
체포에 관여한 경찰들마저 조두순의 출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조두순 사건에 관여한 경찰들을 접촉했다. 이 중 3명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조두순을 직접 대면한 경찰 관계자는 "내가 조두순을 조사한 걸 어떻게 알았느냐. 끔찍한 일이었고 두렵기도 하다. 신원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경민(가명)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경사는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그는 신입 과학수사대원이었다. 당초 실명으로 인터뷰하기로 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익명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조두순의 복수가 두렵다"고 했다.
ㅡ범행 현장은 어땠나.
"경찰 생활하면서 험한 곳에 출동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 그곳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다랗고 좁은 형태의 화장실이었다. 핏자국이 너무 심했다. 화장실 안쪽에 좌변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주변이 온통 혈흔이었다. 온통 피라 어디서, 어떻게 범행이 이뤄졌는지 추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화장실 안쪽은 물론이고, 입구 바깥까지 핏자국이 길게 흘러나온 상태였다."
ㅡ조두순 신원은 어떻게 확인했나
"피는 모두 나영이의 것으로 판명됐다. 화장실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나영이 것이었다. 조두순 DNA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일한 흔적은 지문이었다. 바닥, 벽, 문, 손잡이, 타일 하나하나까지 화장실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변기 주변과 화장실 내부에 걸레로 민 듯한 흔적이 있었다. 나중에 이것은 조두순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벌인 짓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조두순 지문이 3점 나왔다. 그중에서도 화장실 출입문 쪽에서 발견된 것이 판별 가능한 크기였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1평 남짓한 화장실 안에서 꼬박 6시간 감식했다. 그야말로 참혹한 현장에서, 범인에 대해 하나라도 더 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밥도 먹지 못했다. 사실 뭔가 넘어갈 기분도 아니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집중했다. 채취한 조두순의 지문을 경찰청에 넘겼다."
ㅡ체포 소식은 어떻게 들었나
"이틀 만에 ‘용의자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조두순은 범행 장소(교회)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체포됐다. 조두순 집 옷장에서 나영이의 피가 묻은 양말, 신발이 나왔다. 그런데도 조두순은 수사 과정에서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지문, 자택에서 나온 나영이의 피가 묻은 조두순의 양말은 움직이지 않는 결정적 증거였다."
ㅡ나영이가 올해 스무 살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사회적 여파가 컸다. 특히, 피해자가 어린 여자애였으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조두순 사건은 특히나 떠올리기 싫다. 수사에 관여했던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내내 끔찍했다. 지금도 기억을 떠올리기 고통스럽다. 모두가 그 일을 떠올리면 치를 떨지 않나. "
ㅡ조두순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보자"고 협박했다고 한다.
"조두순을 대면한 적은 없다. 협박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나 또한 그가 풀려나는 게 두려운 사람이다. 기사에 얼굴이 비치지 않도록 해달라. 이름도 가명으로 써주면 좋겠다. 추가 인터뷰도 사양하겠다. 내후년이면 나온다는데."
◇조두순 감형 판사 "주취 감경 사라져야"
나영이 사건을 저지를 때 조두순은 전과 14범이었다. 성폭행으로 복역한 경험도 있었다.
검찰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정 최고형’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조두순에게 '주취(酒醉) 감경'이 적용되면서 분위기가 다르게 흘렀다. 재판부는 12년형(刑)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감형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 성폭행은 술 마시고 하라는 의미냐"는 반발 여론이 일었다.
조두순이 ‘심신미약’이라는 판단의 근거는 옷장에서 나온 나영이의 혈흔이 묻은 양말·신발이었다. 저런 결정적인 증거를 집 안에 그대로 둘 정도였다면, 판단능력을 상실한 심신미약 상태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판사는 왜 그랬을까. 조두순 1심 판결을 내린 이모(57)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와 연락이 닿았다.
ㅡ판결을 후회하나
"(기자가) 조두순 사건에 대해 물을 줄 알았다면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판사는 공복(公僕)이다. 공직자로서 국민 정서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형사 사건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었다. 이후 가정 사건 위주로 맡아왔다."
ㅡ조두순의 형량에 관해 말해달라.
"판사가 판결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12년형은) 당시 일반적인 판례보다 2~3배의 (무거운) 형량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수사 단계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됐다. 수사 단계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재판부로서는 방법이 없다."
당시 법체계에서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무조건 감형해야 했다. 지금은 성폭행 경우에만 심신미약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
무기징역을 받아야 할 피고인이 심신미약 사유로 감형 요인이 발생하면, 7년 이상~15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건 당시 양형 기준으로 권고형량은 최대 11년형(刑)이었다. 조두순이 받은 징역 12년은 이보다 다소 무거운 형량이다. 법조계 일각에서 "당시 실정법으로는 조두순에게 그 이상 형벌을 내리기 힘들었다"는 항변이 나오는 이유다.
ㅡ조두순이 심신미약이라고 보나.
"정신이 없던 사람(심신미약)이다. 보호관찰소 정신감정에 따르면 사건 당시 조두순이 만취해서 ‘정신이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법조인으로서 주취 감경은 구시대의 나쁜 유산이라 생각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음주가 잦다 보니 ‘술 마시고 사고 좀 칠 수 있다’는 의식이 관례처럼 굳어진 것이다. 주취 감경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조두순 사건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주취 감경을 양형 감경요소에서 제외했다. 또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성폭행을 저질렀을 땐 감형하지 않도록 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ruffian71/2213786504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