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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에 볼셰비즘은 어떻게 종교로 인식되었는가 ?
게시물ID : history_73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갈
추천 : 3
조회수 : 86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23 00:54:11

19세기말, 저명한 군중심리의 연구자인 귀스타프 르 봉(Gustav le bon)은 오늘날 전통적인 종교가 사향길에 접어드는 대신,

새로운 종교들이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종교들은 민족이나, 국가,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종교가 될것이라고 주장하죠.

르 봉의 이러한  종교에 대한 신앙지상주의적인 해석-종교의 성격상 가장 중요한것은 그 추종자들은 신앙이며, 초월자의 존재가 필수는 아니다-에 기반한 주장은 종교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이들로 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귀스타프 르 봉(Gustav le bon)>

벨기에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학자였던 앙리 드 망(Henri de Man)도 이러한 르 봉의 주장에 동의하는 인물 중 하나였죠.
드 망은 믿음에 기반한 새로운 공통의 종교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적 요구로 인해 사회주의가 새로운 종교로 부상할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또한 드 망은 "미래에 더 나은 조건의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절대선"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의 인식등으로 인해, 이새로운 종교가 기존의 종교가 사용했던 레토릭-특히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이나 천년왕국같은-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보았죠.


<앙리 드 망(Henri de Man>

물론 르 봉과 드 망은 모든 인식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드 망이 이 새로운 종교가 기독교의 레토릭을 공유하며 지속할것이라 본 반면, 르 봉은 세속종교-특히 사회주의-는 기존종교처럼 언제이뤄질지 모르는 천년왕국이나 내세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실에서의 이상향의 도래를 약속하고 있기에, 그 이상향-사회주의 국가-이 현실화 되는데로 이상향이라 믿었던 체제의 모순점들이 드러나 순식간에 붕괴될것이라고 전망했죠.

그렇다면 1917년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 볼셰비키 러시아의 성격은 어떠했을까요? 

아시다시피, 볼셰비즘, 맑스-레닌주의는 유물론과 무신론으로 대표되는 비종교, 혹은 더 나아가 반종교적인 이념이었습니다.몰론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같은 초창기의 일부 볼셰비키들은 맑시즘을 새시대의 종교로 인식하고 신앙체계를 만들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의 레닌의 조롱과 경멸을 받을 뿐이었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고자 했던 프랑스의 자코뱅들이 구체제의 상징은 가톨릭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이성의 여신"을 숭배하는 새로운 신앙을 탄생시켰듯이 자코뱅들의 먼 후배인 볼셰비키들도 이러한 사상의 종교화 문제와 분리될수 없었죠. 아니, 어떤면에서는 자코뱅들 이상으로 볼셰비키들은 정치의 종교화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볼셰비즘은 자기들의 경전을 가졌고, 추모해야 될 경정과 숭앙받은 교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사회에 이것을 뿌리 내리기 위해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탄압한 러시아 정교의 레토릭과 네러티브를 답습했죠.

<대혁명이후 프랑스에서의 이성의 여신 숭배>

그 결과, 호주의 문화학자 퓔롭 밀러(René Fülöp-Miller)나 독일의 가톨릭 언론인 프리츠 게리히(Fritz Gerlich)는 볼셰비즘을 이전부터 존재 해온 러시아의 천년왕국과 관련된 신앙운동의 새로운 형태, 혹은 천년왕국운동과 정치의 결합체로서 해석하기도 했었죠.

<프리츠 게리히(Fritz Gerlich)>

밀러나 게리히가 러시아의 천년왕국신앙의 새로운 형태로 볼셰비즘을 인식했다면 버트렌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들과 다르게 또다른 기존 종교에서 볼셰비즘과 유사한 형태를 찾았습니다. 그는 볼셰비즘을 이슬람과 유사한 것으로 인식했죠.


<버트렌드 러셀(Bertrand Russell)>
볼셰비즘이라는 사회현상은 평범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종교로 인식되어야 한다...나는 교리와 삶의 방식을 지배, 모순된 근거들에 대한 무시. 지성이 아닌 감성과 권위의 수단에 의해 심어지는 믿음을 종교로 정의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볼셰비즘은 종교다...종교들중에서도, 볼셰비즘은 기독교나 불교가 아닌 이슬람교에 닮아있다. 기독교와 불교는 개인을 중시하는 종교로 신비주의적인 교리와 명상을 사랑하는 종교다. 이슬람과 볼셰비즘은 현실적, 사회적, 세속적으로, 땅위에 제국을 세우는데 관심을 지닌다. 이들의 교조들은 광야에서 세번째 유혹에 저항하지 않았다. 아랍에서 이슬람이 했던것을 볼셰비즘은 러시아에서 행하고 있다. 알리가 정치인이 되기전에 그의 성취이후 예언자로서 물러났던 것처럼,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대중(Bolsheviks)들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

소련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영국 노동당의 활동가인 해롤드 라스키(Harold Laski) 역시 볼셰비즘을 단순한 정치, 사회 운동이 아닌 종교로 인식했습니다. 2차대전중이던 1943년, 라스키는 볼셰비즘의 정신을 1600년대 크롬웰의 청교도 민병대에 비교하면서 이 둘 사이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죠.


<해롤드 라스키(Harold Laski) >
볼셰비키 의회가 운영되는 모습을 본 그 누구라도, 초기 (청교도)운동이 보인 역사적 희망이 그곳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적에 대한 관용은 볼셰비키들에게 불가능하다. 마치 청교도가 로마교회가 타협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그들에겐 진리가 있고, 진리를 전파하는것을 그만두느니, 죽음을 택할것이다.

라스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2차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에게 어떤 도덕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립서비스라는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군요.

볼셰비즘은 이와같이 동시대에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종교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공유되는 인식이였죠. 더군다나 소련에서 스탈린의 집권,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숭배는 볼셰비즘의 정치 종교화를 더욱 그 절정으로 몰아갔습니다. 

1930년대에 이르게 되면 기톨릭교회에게 있어서 소련은 신을 부정하고 교회와 신도를 탄압해서 뿐만 아니라, 무신론과 유물론이라는 이름의 교의하에 교세를 확장하는 우상숭배자들이며, 배교자, 이교도 였기에 그들의 적이었습니다. 이시기 가톨릭언론들은 소련과 볼셰비즘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격에 대해 강조하며, 가톨릭 신자로서 볼셰비즘에 접근하는것에 대해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넌지시 경고합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상황이 복잡했죠. 특히 영국의 개신교 사회주의자들은 오랫동안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을 지켜왔기에,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적을 어떻게 인식해야 되는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케임브릿지의 찰스. E. 레이븐(Charles E. Raven)교수와 같은 이들은 볼셰비즘을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연대할 동맹으로 바라보았죠. 레이븐 교수 같은 이들에게는 무신론과 유물론같은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볼셰비즘은 자본주의와의 마지막투쟁에서 끝까지 함께 할 동료였습니다. 레이븐 교수는 1935년, 개신교사회주의자들의 언론인 "기독교와 사회 혁명(Christianity and social revolution)"에 기고한 글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는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수, 인민의 신"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주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레이븐 교수의 입장에 모든 개신교인들이 동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935년도에 발행된 "기독교와 사회혁명"의 다른 지면에서 미국의 라인홀트 니부어 (Reinhold Niebuhr)는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정복하고 이 산업문명의 지배적인 종교가 될 수"있으며 그 본성이 광신성과 잔혹성에 기반했기 때문에 결국 "서구문명을 파괴해 야만상태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라인홀트 니부어 (Reinhold Niebuhr)>


이러한 기독교와 볼셰비즘간의 종교 대 종교로서의 대립을 완화시킨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른 정치종교, 나치의 등장이었습니다. 물론 정권 초창기 기독교 교단과 그리 대립을 택하지 않은 나치였지만, 그내부에 가지고 있던 강한 종교적 속성으로 인해,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교회의 강한 견제를 받게 되었죠.더군다나 1939년 발발한 2차대전은 나치의 반 기독교적 성격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화의 대상자로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가 그 정점에 달하긴 합니다만, 1952년 스탈린의 사망, 그리고 이어진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개인숭배비판으로 볼셰비즘의 정치종교적 성격은 비록 사라지진 않더라도 많이 약화됩니다. 


하지만 냉전이 진행되던 20세기 후반기동안 스탈린주의로 대표되는 볼셰비즘의 정치종교적 속성은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모델 중 하나가 한반도 북부에 자리잡아 유지되고 있습니다.

출처:볼셰비즘이라는 종교-20세기 전반기에 볼셰비즘은 어떻게 종교로 인식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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