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7월
조헌이 전 참봉 조광윤 선비 장덕익 고경우 신난수 등과 함께 청주에서 의병을 모집 1100명에 의병을 모집했다
공주에서 기병한 최초의 의승군장 기허 영규등에 승군 1000명도 합세하면서 2000이 넘는 나름 규모있는
의병부대가 결집하였고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에 정규군 500까지 합세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 조헌이란? 율곡 이이에게 성리학을 배워 충에 정신이 투철하였으며 전쟁이 터지기 전해 일본이 반드시 쳐들어 온다고 판단했고 일본 사신이 와 있을때 대궐에 흰옷을 입고 도끼를 들고나와 사신에 목을 베고 전쟁 준비에 나서라고 울부짖었다 한편 만언소까지 올려 조정읠 잘못을 따지다가 결국 선조가 그를 길주로 유배시켰다가 나중에 다른 선비에 상소로 풀려났다)
첫 목표는 청주성
당시 청주성에는 제5군 후코시마 마사노리 휘하 하치스가 이에마사에 7000에 군사가 지키고있었다
8월 1일 청주성 공격이 있던 날
보초를 스던 왜병에 보고로 조선군을 파악한 왜장은 조선군 무리가 정규군이 아닌
갑옷 입은 관군 승복입은 승군 한복 입은 의병군에 무기도 정규군에 창과 선비에 환도 농민에 농기구등
다양했고 정규군도 소수에다 병력도 2천이 조금 넘는걸 보고
허 ㅋ 재들 미쳤나봄 ㅋ 이라고 판단 공성할 생각을 버리고 성문을 열고 죄다 쏟아져나왔다
근데 그냥 나온것이 아니라 찌는 더위에 훈도시 하나만 걸치고 쏟아져 나온것이 사건에 시작이였다
그걸 본 조선군이 자기들도 옷을 벗기 시작한것..
갑옷은 물론 저고리까지 벗어버리고 바지만 입은 상태에서 싸울 준비를 하는걸보고
조헌이 " 뭐하는거냐! 가죽 갑옷 위에 옷을 입어라!!" 라고 소리지르자
의병군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더니 왜군이 갑옷을 안입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입느냐는 농담까지 나왔다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
그러더니 지휘관에 지휘없이 자신들끼리 뭉쳐서 돌격해 들어갔고
성 앞에서 세계 유일 세게 최초 과거 옷 안입던 시대도 아닌 이 시기에 당시 조선군은 숫자는 물론 무기까지 압도적으로 불리했지만 전투는 박빙으로 치뤄졌고 시간이 조금 흐르더니 밀리는것은 왜군이였다 키작은 루저였던 왜군이 덩치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더 흐르더니 전투는 일방적으로 조선군쪽으로 흐르게됫다 마침내 적군이 성안으로 퇴각하게됫고 그 기세를 몰아 성 내부까지 들어갔으나 갑자기 천둥이 처더니 소나기가 쏟아져 결국 퇴각하게됬다 그러나 적군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봤고 결국 다음날 아침 바로 퇴각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