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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삼성 총장 추천 할당제에 관하여
게시물ID : sisa_484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2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30 07:41:02

Written by 무명논객


삼성이 총장 추천 할당제를 유보했다는 소식이 올라온지 좀 지나긴 했으나, 이미 그들이 물러간 마당에 말을 꺼내는 것이 무슨 의미겠냐마는, 나는 이 문제야말로 정말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의 가장 실질적이고 강력한 위협은 네오파시스트들의 준동이 아니라 바로 자본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냉소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예컨대, "삼성이니까" 라는 조건이 붙은 말들은 한 켠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냉소를 전제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 째는 문제를 향해 냉소적으로 시선을 던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둘 째는 이 문제가 가장 '정치적' 영역으로 전유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던 '대학의 기업화' 현상의 결과물일 뿐이다"라는 말로 봉합하려 하는 듯 한데, 그 말 역시 일리는 있는 말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 균열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붕괴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자본이 공적 영역에 대해 간섭하는 현상이 최근의 것은 아니지만, 삼성의 행동은 자본이라는 사적 권력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조화할 수 있는 보여준 단적인 사례인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날 자본은 단순히 사적 영역에서 자신의 이윤을 확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를 해체-재구조화하며 지배하는 상위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를 인용해보자. 일찍이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테제를 통해 자본과 행정이라는 도구적 합리성을 지닌 '체계'가,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를 주체로 만들어가는 '생활 세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공론장을 붕괴시킨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본은 분명 합리적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합리적인 도구임에는 틀림 없다. 그들은 거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구적 합리성'이다. 이들의 합리성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작용하므로 어디까지나 '도구적'이다. 반면, 공적 영역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우리는 주장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주체로 드러내고, 동시에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고 근거 있음을 호소함으로써 타자와 자신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무너짐으로써, 다시 말해 더 이상 어떤 것이 '공공적인 것'인지 모르게 됨으로써 우리는 공론장의 붕괴를 겪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체성 역시 붕괴된다. 삼성이 보여준 바는 공공 영역이 붕괴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증상'이기도 하다. 객체로 전락한 자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며, 이것은 냉소주의의 출발점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정보화 사회이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인터넷 세상을 탐방하고 모든 정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지만, 정작 그것을 활용하기 마땅한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마땅히 그러한 공간은 '획득'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최근의 사례인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정국은 일시에 대학가를 공적 영역으로 바꿔놓는데 성공한 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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